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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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딸
오척 단신에 금테가 둘러진 모자를 쓰고 거의 땅에 닿을듯한 장검을 옆에 차고 외가의 안방벽에 걸려 있던 빛바랜 사진속 모습은, 너무나 무섭고 낯설어 어린 내겐 생게망게한 일이었지만 내 외조부님의 모습이었다. 통나무를 엮어 만든 엉성한 다리 위에서 무서워 걸음을 떼지 못하던 나를 업어주셨..
2008.06.19 -
백조의 호수
십수년전 나는 배가 남산만큼 불렀을때 언감생심 자연분만을 해볼 요량으로 운동을 많이 하면 쉽게 낳을 수 있다는 친구들의 말에 힘입어 배를 앞으로 있는대로 내밀며 신나게 으시대고 다녔는데, ...... 그 배를 해가지고도 내 딴에는 태교를 한답시고 미술 전시회니 음악회니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
2008.06.17 -
아부지
친구가 저거 아부지 모시고 서울나들이 여행기를 올렸는데, '홀로 여행은 불가능이겠더라.' 이 한마디에 눈물이 솟구치고 내 불효가 통탄스러워 아침 댓바람에 전화를 했다, 홀로 되신 친정아부지께. - 아부지, 접니더.. - 오이야~ 우짠 일이고.. (방가움과 놀람이 짙게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아버지의 체..
2008.06.15 -
그녀 와 나
몇년전 어느 동네에서의 일이다. 같은 층, 마주보는 앞집에서 하루 걸러 오밤중에 전쟁이 벌어지는 통에 만만찮게 괴로웠는데, 어느날 다급한 발소리에 이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자길 포기하고 거실에서 짜증을 삭히고 있던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문을 열었다. 맨발로 뛰어든 앞집 아줌마는 간간히..
2008.06.15 -
고향생각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내 고향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신작로 가로수로 심어놓은 키 큰 포플라 손짓하듯 바람에 살랑이고 매미가 여름 한낮을 더욱 뜨겁게 달구던 그때 동무들과 참외 복숭아 한개씩 들고 수건도 없이 동네 앞 냇가로 수영을 간다. 물속에 오래 앉아있기 물구나무서기.. 재..
2008.06.15 -
친구
몇년만인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 물어물어 드뎌 찾았네, 은둔이여 칩거여, 왜 이리 길어, 이젠 좀 나와라, 다들 보고싶어 하잖냐... 국어시간에 졸기만 했는지 띄어쓰기 무시하고 쉼표조차 아랑곳없는 거친 억양이 속사포처럼 수화기 저쪽에서 튀어나온다. 목소리도 잊어 누구쇼? 물었을만큼 오..
200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