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2008. 6. 15. 20:15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친구가 저거 아부지 모시고 서울나들이 여행기를 올렸는데, 
'홀로 여행은 불가능이겠더라.' 
이 한마디에 눈물이 솟구치고 내 불효가 통탄스러워 
아침 댓바람에 전화를 했다, 홀로 되신 친정아부지께.
- 아부지, 접니더.. 
- 오이야~ 우짠 일이고.. 
(방가움과 놀람이 짙게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아버지의 체취마저 담겨있어 달려가 이제는 윤기 사라진 그 가슴에 파묻히고 싶다..) 
- 우짠일은, 아부지 보고싶어 전화했지예.. 
- 와..? 몬일 있나, 얼라가 안 존나.. 
(태어나 이날까지 병원과 집을 반반씩 살고있는 딸아이, 
그 외손녀 때문에 울 아부지 식구들 몰래 참.. 많이도 우셨다.. 
이제는 왠만하면 좋은 소식만 전하는데, 
그래도 꿈을 핑계로 가끔 걱정 전화를 하신다..) 
- 은제예, 아임미더, 가는 좋아예.. 
아부지.. 누가 카는데예, 70대 아저씨가 경로당엘 몬가겠다 카더랍니더. 
90, 100 형들이 자꾸 심부름 시키는데, 실타카믄 때리고 욕해서 
몬가겠다 투덜대더랍니더.. 
- 허허허허.. 그렇게들 오래 살어야...? 
- 야.. 세월이 글타 아임미꺼. 
아부지 스스로 내는 노인이다, 카는 생각 마시고예
우야든동 건강 지키셔야 함미더.. 
- 오이야~ 내 걱정은 말거라, 알아 들었다.. 
니도 건강 조심하고.. 고만 들가거라. 
그래도, 목소리 듣는 거 만으로도 조금 해갈은 된다. 
사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사범학교 졸업을 앞두고 엄마를 만나 
까까머리로 결혼을 하셨고 우리 사남매을 얻으셨다. 
기타와 섹소폰, 바이얼린과 아코디언..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아버지는, 
자유당때 불어닥친 정치바람에 민주당 지지자로 찍혀 
오지중 오지로 발령받으신후 
산이 좋아 거의 산골의 초등학교에서 평생을 사셨다. 
그후 
혈압으로 서둘러 떠나신 엄마의 빈자리를 지키며 
홀로 사신지 십여년이 넘었는데, 
퇴직금마저 아이 치료에 보태라고 선듯 내놓으실 만큼 
자손 사랑이 지극하시다. 
한군데 휜 데 없어 뒷모습 보기 좋은 아부지께 멋진 양복 한벌 사드리고 
고궁에 모시고 가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자.. 
날을 잡자, 아직은 걸음 정정하셔서 휄체어 없어도 될때 모시고 가자.. 
이 아침 괜한 설움이 밀려와 한바탕 눈물을 쏟는다.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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