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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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풀 꽃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중절모가 어울리는 풀꽃 시인 나태주님이 시한부라고 선고받을 만큼 심한 중병을 앓고 있을 때,중환자실에서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몹씨 안쓰러워 썼다는 시(詩)가 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저에게가 아니에요.저의 아내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病)과 함께 약(藥)과 함께 산 여자예요.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
2024.08.10 -
이정하, <길 위에서> 外
길 위에서 이정하길 위에 서면 나는 서러웠다갈 수도 안 갈 수 없는 길이었으므로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너무 막막했다허무와 슬픔이라는 장애물나는 그것들과 싸우며 길을 간다 그대라는 이정표나는 더듬거리며 길을 간다그대여, 너는 왜 저만치 멀리 서 있는가왜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주지 않는가길을 간다는 것은확신도 없이 혼자서 길을 간다는 것은늘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일이었다.
2024.06.05 -
김혜순
김혜순 시인, '날개 환상통',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 수상 '쾌거' 날개 환상통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
2024.03.22 -
기형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티스트 임영웅 앨범 IM HERO 발매일 2022.05.02 출생사망 : 1960 ~ 1989 『입 속의 검은 잎』 아직도 우리는 불가해한 삶의 한복판에서 자주 길을 잃으며, 자잘하게 조각나 있는 부박한 삶의 체험을 손에 쥐고 그것의 의미를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떤 체험의 의미는 쉽게 읽히고 어떤 체험의 의미는 끝내 읽히지 않는다. 읽어낸 의미는 사유의 방향과 행동 양식의 좌표가 되어 우리 의지의 강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잘 아는 것 위에 우리의 삶을 건축하며, 그 위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직업을 갖기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잘 아는 것은 친숙한 것이며, 흔히 일상과 관습이라는 외관을 하고 나타나며, 도덕 · 상식 · 전통 · 풍속 같은 삶의 규범과 체..
2022.12.16 -
마종기
마종기 시 모음 38편 1. 가을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2. 갈대 마종기 바람 센 도로변이나 먼 강변에 사는 생각 없는 갈대들은 왜 키가 같을까. 몇 개만 키가 크면 바람에 머리 잘려나가고 몇 개만 작으면 햇살이 없어 말라버리고 죽는 것 쉽게 전염되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 서로 머리 맞대고 같이 자라는 갈대. 긴 갈대는 겸손하게 머리 자주 숙이고 부자도 가난뱅이도 같은 박자로 춤을 춘다. 항간의 나쁜 소문이야 허리 속에 감추고 동서남북 친구들과 같은 키로 키들거리며 서로 잡아주면서 같이 자는 갈대밭, 아, 갈대밭, 같이 늙고..
2022.12.08 -
결혼에 관한 시
결혼에 관한 시 모음 차례 콩꺼풀 / 유안진 결혼이란 / 안도현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지금 이 땅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 안도현 외할아버지의 결혼 조건 / 하병연 결혼 안한 여자 / 문정희 결혼까지 생각했어(노래) / 후ㅣ성 콩꺼풀 / 유안진 식순이 다 끝났다, 돌아서 하객들에게 절하는 새 부부에게,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지어다 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지어다 색맹(色盲)이면 어때 맹맹(盲盲)이면 또 어때 한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 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일진대 불광(不狂)이면(不及)이라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 이왕 미쳐서 잘못 본 이대로 변함없이 평생을 잘못 볼지어다 잘못 본 서로를 끝까지 잘못 보며 서로에게 ..
202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