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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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콧구녕 쑤시고 있지 말고....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
2010.03.23 -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외 3편
나는 '문학적'이라는 말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 속에서 고리타분하고 촌스러울 뿐이라는 비아냥거림과, 과도하고 거추장스러운 수사를 쓰고 있다는 은근한 폄하의 눈치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주와 변산반도를 표현함에 있어, '문학적'이라는 말 이외에 그 두 지역을..
2010.03.09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 만원이면"
시 한 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 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
2010.02.25 -
최승자,「백합의 선물」 外
백합의 선물 언젠가 한 점쟁이가 내게 말했었죠. 당신은 전생에서 이생으로 내려올 적에 길가에 난 백합꽃을 꺾었어. 백합꽃 꺾은 죄로 이생에서 고생을 하는 거라구. 가끔씩 힘들 때마다, 내려오다 백합은 왜 꺾어 이 고생이누, 아니 하필이면 내가 내려오는 그 길에 백합은 왜 피어 있었누 라고 생각했지만, 그 참 이제 보니 그건 아름다운 상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니 상징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하필이면 거기에 백합이 피어 있었던 것도, 어쩌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고통들이 정화된 그 자리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나, 이제 비로소 그 존재를, 그리고 용도를 내게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의 힘을 빌려 내 무수한 전생들, 그리고 이생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을 폐지해..
2010.02.23 -
성철스님 시
1. 석가는 원래 큰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西天(서천)에 속이고 東土(동토)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 저 한 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 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
2009.10.30 -
추영수 / 기도서
기도서 주여, 바우 옆에 꿇어 앉아 바우로 굳는 저는 무엇이옵니까? 겨울 나뭇가지 옆에 끼여 생명 잃은 나뭇가지로 바람에 시달리는 저는 또 무엇이옵니까? 주여, 빛 바랜 잔디 위에 엎드려 나를 모르는 저는 또 무엇이옵니까? 주여, 오늘도 저는 생선가게 좌판 위에서 토막친 생선이 되어 누워있었습..
2009.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