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시

2009. 10. 30. 07:49詩.

 

  

 

 

 1.

 

석가는 원래 큰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西天(서천)에 속이고 東土(동토)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

저 한 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 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잎에 夜叉(야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섬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 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 2 3 4 5 6 7 이여

두견새 우는 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이 시는 성철스님이 죽기전에 지은 시 라고 합니다만

진짜니 가짜니, 기독교가 어쩌니 하며 말이 많은가 봅니다. 

  

 

 

 

 

 

 

 

 

 

2.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3.

 

 

出家訟

 

 

彌天大業紅爐雪(미천대업홍로설)

跨海雄基赫日露(과해웅기혁일로)

誰人甘死片時夢(수인감사편시몽)

超然獨步萬古眞(초연독보만고진)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 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내 홀로 걸어가노라.

 

 

 

 

 

悟道訟

 

黃河西流昆崙山 황하서류곤륜산

日月無光大地沈 일월무광대지심

遽然一笑回首立 거연일소회수입

靑山依舊白雲中 청산의구백운중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그름 속에 섰네.

 

 

"한 생각이 역류하니 모든것이 헝클어져버려

뒤죽박죽이며 해와 달도 빛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한 생각 바로하여 한바탕 껄껄껄하고 나니

청산은 그대로 이며 모두가 옛 그대로이다."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은 쉽게 말하면, 논장이며, 선불교중심의 교상판석론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천태지의대사의 오시팔교론이 법화열반을 중시하고, 화엄현수대사의 오교론이 화엄을 중시한다면,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은 중도로 원시불교에서 선불교까지 회통하고, 자성을 깨치는 방법의 수승함에 있어서 선불교가 가장 수승하다는 것을 논증하려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성철스님이 백일법문에서 근본불교, 아함경, 아라한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정립하신 것으로는

1. 근본불교(원시불교)와 소승불교(부파불교)를 분리하여 이해하신 것,

2. 아함경에 대하여 소승경전이라는 삿된 견해를 버리고, 근본경전이라는 정견을 확립하신 것,

3. 불교의 중심은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직접 들은 제자들의 불교라고 하신 것,

4. 부처님의 직제자들은 연기중도를 바로 깨쳐 부처가 된 것 성불한 것이다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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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9가지 말씀중에서 5번째 말씀에 대한 질문입니다.

   

누구든지 지. 관(止觀), 정. 혜(定慧)를 함께 닦아서 중도를 정등각하여 진여법계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보면 무슨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空路)은 없습니다.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중에서

 

 

........성철스님의 이 말씀은 스님의 근본불교 초기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매우 귀중한 말씀입니다.

 

성철스님은 백일법문에서 천태지의대사의 오시팔교론과 화엄현수대사의 오교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함경을 소승경전으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그러한 정견을 확립하신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대승비불설에 대한 스님의 깊은 연구와, 남전대장경(빠알리삼장을 일본에서 번역한것, 우리나라에서는 초기불전연구원과 팔리성전협회에서 디가니까야, 맛지마니까야, 쌍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등으로 한글로 역경하였다.)을 깊이있게 읽으신 후에 내리신 결론입니다. 성철스님은 “아함경이 부처님직설이며, 대승경전은 비록 부처님 직설은 아니지만 중도사상이 있으므로 불설이라고 볼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물론 성철스님은 직설적으로 대승의 단점과 창작불보살이라는 치명적인 맹독에 대하여 비판하고 계시지 않지만, 뜻으로 대승의 단점과 맹독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 관(止觀), 정. 혜(定慧)를 함께 닦아서 중도를 정등각하여 진여법계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보면 무슨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空路)은 없습니다.

 

........스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헛된 길(空路)이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이 말씀은 성문아라한과 대승보살에 대한 우열을 논한 대승경전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원래 부처님의 원음인 니까야와 아함경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과 아라한의 차이는 있지만, 번뇌를 멸하고 깨달음해탈열반을 증득하고, 윤회를 종식한 것에 있어서는 부처님과 아라한이 같다라고 설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대승은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아라한의 깨달음이 아니라 부처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오랜 겁의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론에 의해 아라한의 깨달음은 소승이라고 규정되고, 대승보살의 깨달음은 수승한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성철스님은 바로 이러한 대승의 분별심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대승의 그러한 생각이 헛된 길 즉 공로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래의 법문을 보면 위의 말씀이 대승보살의 성불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알수 있습니다.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원시경전이란 아함경 그리고 율장을 말합니다. 성철스님은 대승비불설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아함경이 부처님직설이며, 대승경전은 후대에 만들어진 경전이라는 견해를 확립하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철스님은 아함경을 소승경전으로 보는 천태지의대사와 현수대사의 교판을 잘못된 교판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셨던 것입니다.

 

성철스님은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부처님원음에 나오는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의 수증의 점차는 있지만,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삼아승기겁을 통한 52위 성불론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성철스님이 화엄경같은 대승경전의 52위 성불론이 부처님직설이 아니며, 또한 둘러가는 헛된 공로일뿐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신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성철스님이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깨침이란 성철스님의 의미로는 성불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백일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라한이란 말은 중도를 깨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꺠친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는 아라한이라 하든지 보살이라 하든지 부처라 하든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중에서 “바로 깨치고 나서...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선불교의 용어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불교에서 깨침은 견성이고 인가함은 견성성불하였음을 인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은 교진여존자가 깨치고 나서 아라한이 되신 것을 선불교식으로 말하면 견성성불한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부처님원음의 입장에서 보면 꼭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부처님 재세시에 대승과 소승이 있었고, 성문아라한제자들은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왜곡한 대승불교 대승경전의 삿된 견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라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일부 선불교 수행자들이 말하는 “마하가섭은 대승아라한”이라는 분별심 차별심에 대하여서도 강력하게 비판하신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 '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라는 말씀에서 '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하는 말씀은 초전법륜경에 나오는 “이러한 가르침을 설하시어 마쳤을 때 꼰단냐(교진여) 존자에게 청정한 때없는 진리의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조건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라는 진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일어난 것이다....이때에 세존께서 찬탄하여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다(aññāsi).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다.’ 이로 인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 꼰단냐(깨달음에 이른 꼰단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이라는 경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조건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라는 경문을 '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라고 하신 것은 대승불교에서 성문아라한이 생사와 열반을 분리하여, ‘아라한은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즐기나, 보살은 생사를 싫어하지 않고 열반을 즐겨 집착하지도 않는다’라는 알음알이로 인한 분별의식을 강력하게 비판하신 것입니다. 성철스님은 부처님직제자들의 깨침은 그 무슨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집착하는’ 그러한 것으로 사량분별하여 왜곡된 비판을 해선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성문아라한의 깨침은 대승이 왜곡하고 있는 분리가 아니라 원융무애한 것이라고 바르게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부처님의 직제자들은 수행에 있어서 당연히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증득하였으나, 열반을 증득한 후에 이기적인 적멸에 빠져있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성문아라한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바르게 깨달음해탈열반을 증득하시고, 신들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 부처님과 함께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전법하는데 위없는 실천을 행하신 분들입니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말로만 ‘생사즉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이라고 성철스님께서 바로잡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철스님은 부처님의 성문아라한들의 깨침이 원융무애한 것이었음을 밝히시고, 오히려 대승의 이승 삼승 분별의식 삼아승기겁에 걸친 성불론이 둘러가는 헛된 공로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성철스님의 이러한 견해는 전적으로 대승비불설에 대한 공부에서, 아함경이 그동안 알려진것과 달리 부처님직설임을 아신것, 부처님재세시에 대소승이 없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신 것, 대승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 삼아승기겁에 걸친 성불론으로 달려간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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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입니다.

 

누구든지 지. 관(止觀), 정. 혜(定慧)를 함께 닦아서 중도를 정등각하여 진여법계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보면 무슨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空路)은 없습니다.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라는 성철스님의 말씀은 어떠한 의미를 가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