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영수 / 기도서

2009. 10. 25. 22:35詩.

 

 

 

 


기도서



 



주여,
바우 옆에 꿇어 앉아
바우로 굳는
저는 무엇이옵니까?


겨울 나뭇가지 옆에 끼여
생명 잃은 나뭇가지로
바람에 시달리는
저는 또 무엇이옵니까?


주여,
빛 바랜 잔디 위에 엎드려
나를 모르는
저는 또 무엇이옵니까? 





주여,
오늘도 저는
생선가게 좌판 위에서
토막친 생선이 되어 누워있었습니다.



오늘도 전
고삐 매인 염소새끼가 되어
몰잇군의 뒤를 따랐읍니다.


오늘도 전
무거운 짐을 이고 땀흘리며 가는
박물장수의 등에 엎힌
애기가 되었읍니다. 





주여,
수없이 병들어 죽는
저를 보았습니다.



수없이 달리는 차와 함께 딩구는
저를 보았습니다.


수없이 검은 손을 흔들어
간교히 제 목숨만 빠져나가는
저를 보았읍니다.


주여,
저의 참 영혼을 불러주시옵소서.
저의 참 영혼을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 먼 길 떠나
어느 만큼이나 왔습니까?



설움이 흘러 넘칠세라
내 항아리 싸안을
노을빛 마음자락은
얼마만큼 익어가고 있습니까?


돌팔매 던져도
감싸안고
잔잔히 흐르던 강물은
또 어디만큼 흘러갔습니까?



이제금 외줄에 매달린 광대인양 흐느껴도
목숨은
아직도 다하지 않았습니까?


울음 그친 하늘이
저만큼 물러서선
또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주여,
비워 주시옵소서.
당신의 빛항아리 만큼이나
온전히 비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뵙게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담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에게 물들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노래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참 나를 보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참 나를 알게하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참 내 여정을 짐작케 하여 주시옵고 


 



주여,
창밖
마른 나뭇가지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물기를 되찾듯
메마른 내 영혼에
생수를 내려주시옵소서.


겨울나뭇가지에 매달려
감동이 말라버린
생명 잃은 고엽(枯葉)이외다.
관 속에 안이(安易)로 눈 감은 시신(屍身)이외다.


주여,
오뇌하게 하시옵소서
이 평안의 꽃방석에서
바늘방석의 고행을 절감케 하시옵고
근시의 백태를 베껴
눈뜨게 하시옵소서.

 


내 이웃의 설움을
함께 나누고
내 이웃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뻐하게 하옵소서.


주여,
육교 위에 엎디어
나를 향해 벌리는
때묻은 손목을 잡고
애통하는 순수를 주시옵소서.



찢어지는 가슴을 주시옵고
각혈로 흘려버리는
내 피를 나누어 갖는
끊는 가슴을 주시옵소서.


우리들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동정을랑 거두어 주시옵소서.

 

 


주여,
진심으로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또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본래의 나를
되찾게 하시옵소서.

 

 


               詩 : 추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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