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192)
-
이정록,「참 빨랐지 그 양반」外
참 빨랐지 그 양반 이정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팽개치더라고. 자갈..
2012.01.02 -
고정희
고정희(高靜熙, 1948년 ~ 1991년[1])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였고,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다. 《현대시학》에 〈연가〉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목요시’동인으로 활동했다. 1983년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을 탔다. 1991년 지리산 등반 도중 ..
2011.12.10 -
한승원 / 김수영 /
시계 -열애일기 1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내는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
2011.11.09 -
다시,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 푸른 산빗을 깨치고 단풍나무숩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거러서 참어 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 꽃가티 굿고 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微風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의 追憶은 나의運命의 指針을 돌너노코 ..
2011.10.19 -
모듬시-가을
가을의 시 강은교 나뭇가지 사이로 잎들이 떠나가네 그림자 하나 눕네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정거장에는 꽃 그림자 하나 네가 나를 지우는 소리 내가 나를 지우는 소리 구름이 따라나서네 구름의 팔에 안겨 웃는 소리 하나 소리 둘 소리 셋 無限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
2011.10.11 -
이문구
단풍 이문구 우리 동네는 웬일인지 동네에 든 단풍은 여겨보지 않고 건넛마을 단풍도 바라보지 않고 해마다 드는 단풍에 웬일인지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 또 어느 산 텔레비전 앞에서만 단풍 단풍 한다. 산 너머 저쪽 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201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