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2024. 3. 22. 15:01詩.

 

 

 

김혜순 시인,  '날개 환상통',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 수상 '쾌거'

 

 

 

 

날개 환상통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던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밖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김혜순, 「별을 굽다」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속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김혜순(1955~ )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등이 있다.


낭송_ 선정화 - 배우. 연극 '김영하의 흡혈귀', '아 유 크레이지' 등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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