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2020. 8. 14. 08:31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아카세와 겐페이가 쓴 『名畵讀本』의 아래 내용과 아주 똑같다.

 

 

시슬레, <생 마메 풍경> (1885년) 20호 유화 / 히로시마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을 보고 그 맛에 빠지면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공간이었다. 색감의 맛, 물감이 번지는 정도의 맛, 붓놀림의 맛이 그림을 보는 순간 빨려들어와 머릿속을 채운다. 특히 멀리까지 느껴지는 거리감이 좋다. 가장 앞쪽에 있는 부정형의 지저분하고 덥수룩한 잡목 너머로 멀리 가지런히 이어져 있는 집들까지의 거리감에서 비롯된 기막힌 멋. 그곳에 있는 공기의 투명함이 여실히 전해져 온다.

 

 

 

                    

1

 

그림은 감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그리는 것이다. 따라서 직접 그려보지 않으면 완벽하게 감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림을 잘 그렸나 못 그렸나와 관계없이 일단 물감을 사용해 보면, 아, 저 감촉이 여기에 있다, 하는 식으로 화가의 입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감촉뿐이 아니다. 하늘색을 만들어내는 어려움, 나무의 생생한 느낌을 표현해내는 어려움 등을 체험했을 때 비로소 그림의 묘미를 알 수 있다. 저것은 좋다, 저것은 좋지 않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꼭 그려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릴 필요는 없다. 캔버스의 탄력과 유화물감의 감촉 등 어떤 명화이든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최초의 관문이 준에 들어올 것이다. 그림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손에 잡히지 않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진짜로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으로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

 

 

 

 

 

2

 

그림을 그리는 원천은 묘사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묘사한다.

묘사는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설명해버리면 더 이상 그림이 아닌 것이 된다.

단순히 설명한 그림이 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A군이 B마을에 가서 C했다, 라는 설명이 기본이다.

설명을 들으면 도움이 되지만 재미 있지는 않다.

소설은 전하는 말이 아니라 읽는 것을 즐기고 언어를 음미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

미국영국의 모더니즘과는 다른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서 프랑스와 독일 중심으로 전개된 상징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표현주의를 아울러서 말한다. 아방가르드는 19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예술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예술경향이나 그 운동을 뜻하는 예술용어로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