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니시하라 미노루 著

2019. 9. 17. 21:34음악/음악 이야기



책소개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  무대 밖으로 뛰쳐나온 음악의 거장들
2009. 2. 20



지은이. 니시하라 미노루
1952년 야마가타 현에서 태어났다. 음악사회사를 전공했으며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토호가쿠엔 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음악가와 음악 작품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음악가의 사회사》, 《성스런 이미지의 음악》, 《‘악성’ 베토벤 탄생》, 《피아노의 탄생》 등이 있으며, 감역 《옥스포드 오페라 대사전》과 공역서 《베토벤 사전》, 《금색 소나타》 등이 있다.

옮긴이. 이언숙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동양사학과(일본사) 및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국사학과(일본중세사) 연구생 과정을 수료했다. 우리말로 옮긴 책에 《읽기의 힘, 듣기의 힘》, 《멸망하는 국가》, 《대단한 책》, 《만들어진 나라 일본》,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에도의 패스트푸드》, 《사건과 에피소드로 보는 도쿠가와 3대》 등이 있다. 현재 외교통상부,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통역, 한일 역사교사 교류회 심포지엄 등 한일 학술문화 교류 관련 통역 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감수의 말
머리말

1장 역사의 뒤안길에서 회생한 바흐


바흐 발견의 충격!
바흐는 돈 되는 사업?
바흐에 미친 남자, 포르켈
네겔리의 집요한 바흐 수집

2장 바흐를 들어야 하는 저주?


바흐를 즐기는 취향들
체르니의 공로
바흐에 심취한 음악가들
바흐로 회귀하라!

3장 바흐 주변의 음악가들


마르첼로, 법률가와 작곡가 사이에서
플루트 연주가, 프리드리히 대왕
명성만큼 위작도 많은 페르골레시
빨강머리의 사제, 비발디
잘못 알려진 헨델의 〈수상 음악〉

4장 모차르트는 정말 신의 아들인가?


경박한, 너무도 경박한 신의 아들
모차르트 신화는 만들어진 이미지?
모차르트 사후, 명성을 가져다준 음악은?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5장 모차르트 주변의 음악가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독살했을까?
아들 크사버는 살리에리의 제자였다!
〈레퀴엠〉을 보완, 완성한 제자 쥐스마이어

6장 베토벤 신화의 탄생


베토벤의 다채로운 얼굴
비서 쉰들러의 베토벤 이미지 메이킹 작업
〈합창〉 교향곡은 인류애의 상징인가?
시대를 비추는 무게감의 미학

7장 베토벤 주변의 음악가들


프로 음악가 루돌프 대공
음악산업에 매진한 비즈니스맨 클레멘티
발명가 멜첼은 사기꾼인가?

8장 로시니는 왜 펜을 꺾었을까?


37살에 펜을 꺾다
미식가 로시니 전설
요리 때문도 질투 때문도 아닌
오페라 창작을 그만둔 이유는?

9장 슈베르트는 정말 가난했을까?


영화 〈미완성 교향악〉 속 얼굴
영원한 청년 슈베르트?
슈베르트의 수입

10장 낭만파 시대의 음악가들


쇼팽의 살롱 성공기
음악비평가 슈만의 천재 남발?
다재다능한 호프만

11장 베를리오즈는 과대망상증 환자?


왜 거대 편성 작품을 만들었을까?
베토벤 교향곡을 최초로 전곡 해석하다
혁명기념식의 음악가, 베를리오즈

12장 프랑스의 낭만파 음악가들


피아노 제조업자가 된 작곡가 프레이엘
오펜바흐 선풍에 춤추는 파리

13장 브람스의 다양한 얼굴들


과거 속에 살던 브람스?
브람스는 진정 베토벤의 후계자인가?
브람스의 자기 연출
대중음악가, 브람스의 또다른 얼굴
브람스는 정말 오페라를 싫어했을까?

14장 바그너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한슬리크의 〈탄호이저〉 추억
슈만의 〈탄호이저〉 비판
알 수 없는 슈만의 적대감
바그너와 마이어베어
...


15장 스메타나의 〈몰다우〉 뒤에는?


쇼팽과 슈만의 영향
무명의 체코 음악가와 리스트의 만남
빼앗긴 ‘프라하의 봄’을 위해

16장 푸치니는 가로채기의 명수인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열린 귀를 가진 유연한 감성

17장 근대 이탈리아 음악가들


독일을 싫어한 베르디
독일 음악을 모범으로 삼은 마르투치
무솔리니에게 충성을 맹세한 마스카니

18장 러시아 국민악파는 아마추어인가?


음악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축성학의 권위자, 세자르 큐이
생화학자, 보로딘

19장 생상스는 왜 사랑받지 못했을까?


수학을 사랑한 생상스
고리타분하고 천박한, 그러나 잘도 쓴
왜 생상스는 비판을 받았는가?

20장 에피소드 넘치는 20세기 음악가들


카바레 악장이었던 쇤베르크
학자의 얼굴을 가진 베베른
재즈 애호가, 스트라빈스키와 쇼스타코비치
대중음악과 쿠르트 바일의 풍자성
재즈 음악이 국회 문제로 비화되다
바르토크의 민요 수집
생명보험회사 경영자, 아이브스
외교관의 비서관을 지낸 미요
버섯 캐는 존 케이지
메시앙의 취미는 탐조




후기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바흐, 그를 둘러싼 열기는 점차 대작곡가들로 퍼져갔을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까지도 움직였다. 바흐라는 이름만으로도 기사가 되었다. 이와 같은 붐의 배경에는 작품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 말해 바흐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측면보다는 일종의 돈 되는 사업, 즉 ‘비즈니스’로 떠오른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바흐’에 이제는 많은 출판사가 앞다투어 시장 쟁탈전에 나섰다. ― 39쪽

초기 낭만주의자의 상상 속에서 바흐는 공포와 전율의 대상이었으며, “오싹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담”으로 여겨졌다. 바흐에 대한 ‘기괴하다’는 인상은 그후 19세기 후반까지 이어졌으며, 〈마태 수난곡〉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감상과 비평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바흐의 숭고하고 장중한 이 작품은 일반 청중에게 음의 기하학이자 잡다한 집합체로만 들렸던 것이다. ― 57쪽

쉰들러의 가장 큰 죄는 베토벤의 대화 수첩을 수정하고 파기한 점이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아 대화를 할 때 ‘대화 수첩’을 사용했다. 쉰들러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이 대회 수첩 속 베토벤과 자신의 대화를 날조하고 자신의 발언을 첨부했다. 1819년과 1820년의 베토벤과 쉰들러의 대화는 모두 조작된 것으로, 쉰들러는 아마 자신이 베토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역사에 새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현재 쉰들러가 덧붙여 적어넣은 부분은 모두 밝혀졌으나, 더 심각한 문제는 파기된 대화 부분이다. ― 112쪽

최고의 요리와 최고의 미주(美酒)를 인생의 가장 큰 낙으로 삼았던 로시니는 미각의 개혁자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미식가 퀴르논스키는 저서 《미식의 기쁨》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마카로니 요리를 만들려면 로시니의 천재성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밖에 로시니는 육수를 이용한 요리와 토마토 퓌레, 파르메잔치즈 종류 등 요리의 재료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요리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요리를 잇달아 만들어냈다. 로시니는 확실히 요리에 재능이 있었으며, 그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만든 요리는 사람들의 감탄과 찬사를 자아냈다. ― 133쪽

슈만이 천재라는 평가를 내린 최고의 작곡가는, “모두 모자를 벗어라, 여기 천재가 있다”라는 놀라운 말로 평가한 〈‘손을 주세요’에 의한 변주곡〉(작품 2)의 쇼팽과 〈새로운 길〉이라는 비평을 써서 세상에 크게 알린 브람스뿐만이 아니다. 슈만은 ‘천재’라는 평가를 즐겨 사용했다. 그는 ‘천재’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해서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 153쪽

브람스는 자신에 관한 전기가 후세에 집필되리라는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감추고 싶은 부분의 흔적을 제거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이나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가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습작이나 스케치,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철저히 파기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현악 4중주곡을 20곡이나 파기했다고 스스로 말한 적이 있으며, 이렇게 파기한 작품 수는 방대했다. 게다가 완성이 되기 전의 악보도 파기하여 창작 과정을 전혀 살펴볼 수가 없다. ― 182쪽

러시아 5인조 중 한 사람인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일찍부터 음악에 강렬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음악 교사로서 음악을 배웠으며, 발라키레프를 소개받고 큰 자극을 받아 작곡가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음악가는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양친의 반대에 부딪혀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사관생도로서 원양 항해에 나섰다. 이 항해는 2년 8개월간 계속되었는데, 이때 받은 인상이 〈세헤라자데〉에 고스란히 담겼다. ― 228쪽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이해한 생상스였건만, 이번에는 바그너 음악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반동적인 존재라는 딱지가 붙어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프랑크와 그 주변의 작곡가들이 프랑스에서 바그너의 반음계적 화성을 지지하면서 생상스를 비난한다. 그에 대한 비판을 열거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형식주의적이다.” “절망적으로 고리타분하다”, “대단할 것 없는 천박한 작품의 대가”, “졸렬한, 그러나 잘도 쓴 음악” 등등. ― 237쪽

1901년, 쇤베르크는 베를린의 위버브레틀이라는 예술 카바레의 악장으로 취임했고, 그 결과 카바레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다. (……) 〈분수를 아는 애인〉의 가사는 이렇다. “우리 애인은 검은 고양이를 기른다오. 부드럽고 보슬보슬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검은 고양이를. 그리고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 반짝반짝, 반질반질, 은빛.” 쇤베르크의 이 음악은 어려운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지극히 대중적인 음악이다. 가사도 보다시피 가볍기 그지없다.



출판사서평

미식가로 소문난 로시니가 37살에 은퇴한 진짜 이유는?
대작곡가 푸치니는 가로채기의 명수인가?
베를리오즈는 과대망상증 환자, 브람스는 자기연출의 대가였다?
베토벤은 정말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을까?

지금은 대음악가로 존경받는 바흐,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그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바흐의 아들들은 경제적 궁핍을 겪으며 아버지의 작품을 헐값에 팔아넘겨야 했다. 사후 곧바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바흐는 오늘날 어떻게 대가의 지위로 다시 올라설 수 있었을까? 바흐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는 대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생전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거나, 당대에는 명성을 떨쳤지만 사후에 역사 속으로 묻힌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가의 위상은 당대와는 차이가 많다.
이 책은, 바흐가 오늘날 대가로 거듭나기까지의 숨은 에피소드부터,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와 바그너를 거쳐 푸치니와 베르디, 그리고 현대의 쇼스타코비치와 존 케이지까지 역사를 관통하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으로 살펴본다.
악성 베토벤 신화의 탄생 배경,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의 진실, 가난한 음악가로 알려진 슈베르트의 실제 수입, 음악비평가 슈만의 많은 ‘천재 탄생’ 평론, 자기 연출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브람스, 수학을 사랑한 생상스, 대가들의 이색적인 직업과 독특한 취미생활 등 음악적이거나 음악외적인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들의 묻혀 있던 인생 이야기들을 통해 무대 뒤에 가려진 대가들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바흐에서 존 케이지까지 대가들의 색다른 얼굴 들여다보기
쇤베르크는 카바레 악장, 찰스 아이브스는 생명보험회사 경영자였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로시니는 37살에 〈윌리엄 텔〉을 마지막으로 돌연 오페라 창작의 펜을 꺾었다. “매일 마카로니와 굴 없이 지내는 일이 없도록 기도한다”고 말했을 만큼 미식가로도 유명한 그는 요리와 미식, 그리고 돼지 사육에 몰두하느라 창작활동을 접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로시니는 정말 마카로니와 굴 때문에 은퇴한 것일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를 모토로 삼아 ‘가로채기의 명수’라는 오명이 뒤따르기도 하는 〈나비부인〉의 푸치니는 실제로 드뷔시, 바그너, 스트라빈스키 등 다른 작곡가의 양식과 서법을 즉각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에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푸치니는 가로채기의 명수일까, 유연한 감성의 소유자일까?
베토벤은 5번 교향곡 〈운명〉에 대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에피소드는 날조된 것일까, 진실일까? 베토벤의 비서로 자처했던(사실은 팬이었다) 쉰들러는 대체 어떤 행동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까?
또한 음악의 대가들 중에는 이색적인 직업을 가진 인물이 꽤 많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만 해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무소르크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 ...포함된 ‘러시아 5인조’를 비롯해 차이코프스키, 찰스 아이브스 등의 많은 음악가들이 본업을 따로 갖고 있었다. 보로딘은 생화학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쇤베르크는 카바레 악장, 찰스 아이브스는 생명보험회사 경영자였다.

바흐부터 20세기까지 대가들의 진짜 얼굴을 만난다!
눈이 번쩍 뜨이는 에피소드 음악사

음악사 전체를 딱딱한 교과서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하고 굵직한 음악가들을 엄선해 일화 위주로 살펴보는 이 책은, 단순히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당대 음악의 조류와 판도까지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당대에 어떻게 비쳐졌고 이후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의 시각으로 그들을 만나보고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역사란 획일적인 견해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평가와 비판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힌 집합물이다. 서로 복잡하게 뒤얽히면 얽힐수록 음악가와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생명을 얻게 된다. 사망한 뒤에도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평가나 비판 또는 재평가 등이 끊이지 않는 작곡가는 역시 대가인 것이다.”
음악의 대가로서의 얼굴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 음악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클래식 초심자가 처음 접하기에 좋은 교양서일 뿐 아니라, 음악적 깊이도 함께 지니고 있어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1

살리에리는 名敎師로 명성이 자자하여,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훔멜, 리스트 등이 그에게 사사했으며, 모짜르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도 살리에리에게 음악을 배웠다. 사리에리의 지도는 정평이 나 있었다. 교육자로서 큰 존경을 받았으며 음악가나 음악교사로서의 공적이 매우 높았다.



2

베토벤의 비서 가운데 쉰들러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비서라기보다 팬으로서 스스로 비서 역할을 자원한 인물로 베토벤이 발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베토벤의 생생한 증인이라 자부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꾸며내, 비서로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김과 동시에 이상적인 베토벤 像을역사에 남기고자 했다.

쉰들러는 1814년부터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는 1827년까지 베토벤과 교류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가 무급 비서와 같은 잡무를 본 시기는 1822년부터 1824년 5월까지와 1826년 말부터 1827년 3월까지일 뿐이었다.

그는 베토벤에게 직접 들었다는 식으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는 유명한 이 말의 출처도 바로 쉰들러이다. 쉰들러의 가장 큰 죄는 베토벤의 대화 수첩을 수정하고 파기한 점이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읺아 대활 할 때 '대화수첩'을 사용했는데,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이 대화수첩 속 베토벤과 자신의 대화를 날조하고 자신의 발언을 첨부했다.


※ 베르하르트 마르크스는 베토벤의 소나타 <월광>에 대해 특이한 해석을 내놨다. 이 피아노 소나타는 <월광>보다 <소녀의 기도>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3

쇼팽의 파리에서의 생활은 하루가 달리 빈곤해져 갔다. 날마다 돈을 벌어야 했던 고단한 상황에서, 쇼팽의 일생은 로스차일드 家의 피아노 교사로 들어가면서 한순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쇼팽은 귀족이 주최하는 살롱에 출입하면서 부유한 귀족과 안면을 익히게 되었고 살롱 출연이나 음악 지도 일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빈곤에서 벗어나 고급 가구로 가득한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오펜바흐가 대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살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기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다가 빈혈로 쓰러진 것을 계기로 유력자의 후원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