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8. 18:22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2017.10.25.
저자 김희은
러시아에서 18년째 살고 있으며, 예술을 사랑하며 그림 보기를 좋아한다. 사람들과 소곤소곤 그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해서 예술 작품 소개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15년째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의 도슨트 일을 하며 그림 알리미 일에 열중 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아트 딜러로서 러시아 그림 판매를 하고 있으며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이기도 하다. 전시회를 개최하는 큐레이터 일을 하고, 페이스북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페이지를 통해 러시아 그림 소개를 꾸준히 하고 있다.
러시아 그림과의 아주 사적인 대화
저자는 약18년 전 러시아에 처음 입성하였다. 러시아어도 하나 모르고,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때였다. 부군의 학업을 위해서 입성한 러시아, 모스크바는 새로운 세계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하고도 소통할 수 없는 저자는 심하게 향수병을 앓을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활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활발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았는데 언어를 몰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때 저자는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만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본 수많은 러시아 그림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저자는 미술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림을 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미술애호가의 입장에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의 가치와 평가를 하기에 앞서 그림이 저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는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거의 매주 가면서 그림들을 보고 또 보았다. 한 그림을 몇 시간 동안 본 적도 있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그림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고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그림과 저자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내가 이만큼 알고 이만큼 공부했고 이만큼 경험했다가 아니라 이 그림을 보 고 이렇게 행복했고 저 그림을 보고 이렇게 안타까워했으며 또 다른 사연에 이렇게 눈물지었다 솔직히 얘기하고 여러분의 끄덕 끄덕 공감을 얻고 싶은 그런 책이 바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러시아 그림 읽기
그림이라고 하면 아직도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림은 이제 대중적인 문화가 되었다. 예전에는 보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힘들게 책을 구입하든가 도서관을 가거나 아니면 특별전을 할 때를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보고 싶은 그림을 버튼 몇 개, 키보드 몇 개를 누르면 바로 볼 수 있다. 물론 원작의 생생함은 느낄 수 없지만 그 나름 아주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런 복제본에 대한 쉬운 접근은 오히려 원작을 보면 어떤 느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직접 원작을 볼 수 없다면 누군가 원작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이곳 저곳을 뒤져보기도 한다.
저자는 바로 원작을... 보면 어떤 느낌이 나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전문가적인 놀라운 식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최대치를 저자는 이미지와 말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글에서 우리는 넘쳐나는 감정을 그리고 글로 전할 수 없는 아쉬움의 한숨을 보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의 원본이 된 내용들을 웹사이트를 통해서 시리즈로 글을 실었고, 그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책으로 출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림들을 통해 본 러시아, 러시아인
러시아 그림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몇몇 작가들은 그 사람이 러시아 사람이었어? 하고 되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그림들은 매우 생소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아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처음 접하는 그림들이 대부분일 수 있다. 저자는 그러한 생소함을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일상사를 통해서 없애준다. 아주 간단하고 짧게 언급하고 있지만 러시아 그림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들을 꼭 집어서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독자들의 러시아 그림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20년 동안 러시아에서 생활한 노하우가 보이는 지점이다.
책은 결국 ‘러시아와 러시아인’이라는 커다란 제재를 가지고 꾸며져 있다.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애절해하는 것이 무엇이고, 사랑하고 애착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러시아 그림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러시아인들 자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내 주위에 러시아 사람들이 보이게 되고, 러시아가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이라는 ‘놀라운’ 사실에 기뻐하게 될 것이다.
∠
꿈꾸는 시간이 행복했던 적이 있다. 꿈속에서 판타지 주인공이 되어 하늘을 날고 마법사가 되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순간 이동하기도 한다. 난 활동적인 성격이라 뭔가 정지되고 갇힌 느낌을 싫어한다. 삼십 년을 살던 고국을 떠나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는 타향에서 처음엔 암흑 같았다. 유일한 탈출구가 꿈속에서의 자유. 그때 세상과 소통하던 나의 방법이었다. 늘 꿈속에서 고향을 향해 날아다녔다.
샤갈 또한 그런 것일까. 샤갈은 고향 하늘을 사랑하는 벨라와 날고 있다. 종교와 같이 성스럽고 아늑한 고향, 비테프스크를 사랑하는 그녀와 자유롭게 떠다닌다
- 95쪽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도시를 배경으로 검은 벨벳 옷을 차려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도도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촉촉한 눈매를 가지고 우수에 젖어 있다. 넘어서는 안 되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걸까 아님 절대 고독의 슬픔에 빠진 걸까? 아찔한 아름다움과 차가운 도도함 뒤로 슬픔에 흠뻑 젖은 아우라가 깊고 깊다. 새침한 듯 유혹하는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제목부터 미지의 여인이라 이름 지워져 여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크람스코이는 이 매력적인 여인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날 때 이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로 검은 벨벳 차림이다. 그러고 보면 지독한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불 사르고 생을 마감하는 매력적인 여성, 안나 카레니나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그림 속의 미지의 여인과 비슷한 느낌 일 거다. 사랑의 폭풍우를 온몸으로 감내하는 여인의 운명이 그대로 느껴진다.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세련된 옷을 입고, 검은색 머리카락, 그윽한 눈빛의 검은 눈동자, 갸름한 턱 선, 새침한 입꼬리, 꼿꼿이 거만하게 앉아 있는 자태, 그리고 인생의 파도를 넘나들며 내면 깊숙이 쌓였을 원숙미까지, 최고의 미녀가 지녀야 할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미지의 여인’이다
-169~170
∈
저 까만 네모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대작이란다.
“도대체 뭐야?”,
“이 정도면 나도 그리겠네. 음…”
“물감도 필요 없이 경제적인 그림이군.”
2차원 화폭에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나열해 놓은 작품 앞에서 ‘뭐지?‘를 조용히 속삭이며 이러쿵저러쿵한다. 그리고, 도통 무슨 뜻인지 몰라 ‘아, 현대미술 어렵구나! 골치 아파!‘가 된다. 추상미술의 아름다움을 처음부터 느끼기는 힘들다. 누군가에게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는 혼란만 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그림은 보인다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말레비치의 추상미술은 그림이 위치한 전후 미술 사 배경과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작품에 다가가 대화할 수 있다. 그렇게 이해된 그림 앞에서 우리는 ‘아하!’ 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결국은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보고, 느끼고..
⊥
고독, 문학, 예술...... 차이콥스키 곡을 들으며 푸쉬킨의 여름을 푸르게 했던 이삭 레비탄의 그림을 생각했다. 암울한 사회적 배경이 빚어낸 눈물과 통탄의 역사와 희망과 자연을 그린 많은 예술작품들은 고요한 눈의 나라, 러시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어릴 적 밤이 긴 겨울날 이부자리에 누워 끝나기 아쉬운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귓가에 소곤거린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로 곡을 바꾸었다. 톨스토이의 <가을 빛 바랜 내 동산 안>의 끝부분을 웅얼거렸다. /아무 말 없이 그대의 손을 쥐고 따스함을 느끼며/눈을 바라보면서 눈물 흘린다./그대를 사랑한다./그러나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
벌써 살갗은 가을을 느꼈다. ‘너도 곧 떠나겠지.’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러시아의 화가가 그린 가을을 떠올렸다.
- 정유림 ( covacoop수석큐레이터, 리더스 포럼 문화예술국장)
러시아 미술 문외한인 제게 눈을 뜨게 해주셨던 고마운 작가님. 여러 각도로 피사체를 돌려서 해석하고 이해를 강요하지 않지만 난해한 그림이 쉽게 다가오고 러시아 이콘에서 사실주의 그림, 모더니즘까지, 그 수준에 놀란 문화적 쇼크. 이분의 해설은 오롯이 그림과 당신만의 조우를 가능케 한다. 다음 러시아 출장 때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려야겠다.
- 최병철 (주)FUSEIMENIX 대표이사
마치 어깨를 맞대고 미술관을 함께 거닐며 그림이 대해 '소곤소곤' 설명해주는 듯한 김희은 선생님의 편안한 글을 통해 러시아의 아름다움, 민중의 삶, 역사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됩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며 러시아 미술을 접하기 된 것은 삶의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더 큰 즐거움으로 안내해 줄 러시아 미술의 가이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 송승호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2등서기관
니콜라이 야로센코(1846-1898), 삶은 어디에나 (1888) 212cm x 106cm 트레치아코프미술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죄수들을 실은 기차가 간이역에서 잠깐 정차한다. 한 평 남짓 좁은 열차 칸에 갇힌 죄수들이지만 잠깐의 햇살을 즐기며 목숨과도 같은 빵조각을 비둘기에게 나눠주며 생명의 귀함과 사랑을 느끼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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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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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4
프롤로그/ 8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3
얄궂은 인생사 한 자락 - 결혼/ 31
찬란한 러시아 사계/ 49
예술이 표정을 품다 ? 일리야 레핀/ 71
그림이 색채를 입다/ 93
마법의 묘약 보드카/ 113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 죽음/ 123
전쟁 그 잔인한 상처/ 139
러시아 소녀들/ 151
러시아 미녀들/ 163
빛과 어둠 진리는 어디에/ 173
세상은 변혁을 원한다/ 183
고독한 악마 인간과 사랑에 빠지다/ 213
헛되고 헛되노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223
추상미술의 선구자 말레비치/ 251
신화와 전설/ 273
찾아보기/ 292
부록/ 러시아 트레챠코프 미술관 100배 재미있게 즐기기/ 298
1
화폭에 담긴 인간사가 절절하다.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그림은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고,
민중들의 눈과 귀가 되어 러시아의 아픈 시대상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는다.
그림의 힘으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스토리텔러가 되어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고발한다,
그러면서 삶에 지친 마음들을 두루 어루만진다.
바실리 막시모프, <모든 것은 과거에> 1889
레오니드 솔로마트킨, <경찰의 찬송>’ 1882 / 상트 페테르부르그 러시아미술관
2
싸움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때에는 두 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
바실리 푸키레프, <불평등한 결혼> 1862
블라드미르 마코프스키, <안녕히 잘 지내세요> 1894 / 99 ×115 / 상트페테르부르그 러시아미술관
3
"사람이 행복한가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가 즉, 자연을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라고 톨스토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기능은 카타르시스이다. 늘 함께하는 자연이라 일상적 무관심 속에 흘려버리지만 화폭 속에 재탄생 되는 위대한 자연을 보며 누구나 감동받고 매혹된다. 예술활동이 대중과 소통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러시아 무드 풍경화'는 사브라소프의 <까마귀가 날아옴>을 시작으로 이삭 레비탄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룬다.
레비탄 <봄 - 홍수> 1897
The Golden Autumn
알렉세이 사브라소프, <까마구 날아옴> 1871
4
샤갈 예술의 원천은 고향 비테프스크, 하시디즘 유대교, 그리고 성서로 구분할 수 있다. 하시디즘은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동물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믿는 신앙으로 사람이나 인간의 영혼을 품고 있는 동물이나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샤갈의 그림 속에 동물들이 마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근원이기도 하다.
"예술과 인생의 완벽함은 성서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평생을 통해 성서 이야기를 화폭에 남긴다.
피카소는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저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 뿐이다."고 말했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아직 그려지지 않은
아직 칠해지지 않은 희망을 품고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이젤에 못 박힌다.
끝난 걸까?
내 그림은 완성된 걸까?
모든 것이 빛나고 흐르고 넘친다.
저기에는 검은색, 여기에는 붉은색, 파란색을 뿌리고
나는 평온해진다.
5
니코 피로스마니(1860-1918), <마르가리타> 1909
그루지아(조지아)에 니코 피로스마니라는 아주 가난한 화가가 살았다. 원시주의 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살아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현재는 조지아 최고의 화가로서, 앙리 루소 버금가는 화가로 대우받고 있다.
피로스마니의 사랑 이야기는 러시아 로망스로 다시 태어난다. <백만 송이 장미>.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쓰고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노래한다.
옛날에 한 화가가 살았네
작은 집 한 채와 그림이 전부였네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화가는 집을 팔았네
모든 그림을 팔고 동전 한 푼 안 남았다네
그 돈으로 바다도 덮을 만큼의 장미꽃을 샀다네
밸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 놓았다오.
아침에 당신이 창문가에 서게 되면
어쩌면 당신은 정신이 아찔할 지도 모르지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자가 이렇듯 꽃을 장식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짧았네
밤에 기차가 그녀를 데려가 버렸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6
필립 말랴빈(1869-1940) <회오리 바람> 1906
F.A.말랴빈(1869-1940)은 이 그림을 1905년에 구상하여 1906년 ‘예술세계’전시회에서 공개했다. 제목은 <회오리(whirlwind)>다. 강렬한 붉은 빛으로 가득한 대작인데다 러시아 혁명기여서 사람들은 그림의 주제를 혁명과 연관 시키기도 하였다.
넓게 퍼져 둥그렇게 펄럭이는 치마와 머리에 둘러 쓴 숄, 흥겨운 손동작의 율동감으로 작품 전체가 정열로 가득 차 있다. 황토 빛으로 햇볕에 그을린 춤추는 농촌 아낙네들의 상기된 얼굴들 역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다. 굵직굵직한 강한 붓의 터치가 현란하다. 널름대는 화염 같기도 하고 만개한 꽃 같기도 하다. 이미 탄력이 붙은 춤사위에 몸을 그대로 맡겨버린 농부(農婦)들에게서 강한 생명력과 삶의 환희가 느껴진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에서 성장하고 있는 민중 봉기의 전조를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붉은 색으로 상징되는 러시아 영혼의 힘을 느낄 수도 있다.
까잔의 한 마을, 형제 많은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던 말랴빈은 16세 때 그리스의 한 정교회 수도원으로 보내져 성상화를 6년간 수학하였는데 거기서 만난 유명한 조각가 V.A.베클레미세프의 추천으로 1892년 뻬쩨르부르크의 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일리야 레삔을 만나 그의 후계자들 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기 시작, <웃음>(1899)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고대 성상화가들 이후 말랴빈의 그림에서 최초로 ‘붉은 색’이 완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의 붉은 색도 이콘에서 많은 부분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말랴빈은 1922년 전시회 개최를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가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고 1930년대에는 유럽 여러 도시들에서 전시회를 개최 하여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때 브류셀에 머물렀는데 독일군에게 스파이로 몰렸다가 풀려났지만 70세 고령으로 그의 집이 있던 니스까지 걸어 도착한 후 건강 악화로 곧 사망하게 된다.
7
니콜라이 야로센코 첫 아이의 장례 Funeral of Firstborn / 1893
바실리 페로프 / 마지막 여행, 1866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45.3 x57cm
8
알렉산드로 이바노프, <민중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그림 왼편의 눈을 감고 현실을 외면하는 듯한 표정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그는 <죽은 혼> <검찰관> 등을 쓴 고골이다. 이바노프는 왜 고골을 그려 넣었을까? 고골은 현실 구원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한 작가이다. 하지만 참혹한 러시아 현실에 좌절하여 모든 희망을 접어버라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림에서도 고골을은 눈 감고 외면하고 있다. 고골 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은 참혹한 현실에 맞서서 싸우기보다는 외면을 택했다.
1825년 12월 러시아에는 최초의 근대적 혁명운동인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일어난다. 그 일로 주동자 다섯 명이 처형당하고 1000명이 넘는 젊은 지식인들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러시아 사화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혁명의 불씨를 심는 게기가 된다. 푸시킨도 데카브리스트의 난에 대한 황제의 처사에 분놀을 느끼며 <시베리아에 보낸다>라는 시를 쓴다.
시베리아에 보낸다
시베리아 광산 저 깊숙한 곳에서 의연히 기다려주게
참혹한 그대들의 노동도, 드높은 사색의 노력도 헛되지 않을 것이네
불우하지만 지조 높은 여인도, 어두운 지하에 숨어 있는 희망도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나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은 곧 오게 될 것이네
사랑과 우정은 그대들이 있는 곳까지 암울한 철문을 넘어 다다를 것이네
그대들 고역의 동굴에 내 자유의 목소리가 다다르듯이
무거운 쇠사슬에 떨어지고 감옥은 무너질 것이네
그리고 자유가 기꺼이 그대들을 입구에서 맞이하고
동지들도 그대들에게 검을 돌려줄 것이네
이바노프는 당시에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황실 후원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있었지만 참담한 조국의 현실을 두고볼 수 없어 황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그림으로 인해 이바노프는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미술 아카데미 교수였던 아버지조차 학교에서 쫒겨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 굴하지 읺고 꿋꿋하게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완성한다.
러시아의 구원을 갈망하는 자신의 의지를 화폭에 당당하게 담는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몸소 실천한 이바노프는 살아 생전에는 매우 고달픈 삶을 산다. 하지만 그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현재 라시아 최고의 그림으로 손꼽힌다.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 그림의 위용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바노프는 살아서 누리지 못한 최고의 영예를 죽어서 얻게 된다. 이바노프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러시아 미술계 최고의 작가로 칭송받는다.
10
"그림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소장하여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국립미술관을 남기고 싶다" - 1832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명한 상공인이자 트레챠코프 미술관을설립한 파벨 트레챠코프(1832-1898)가 한 말이다.
파벨 트레챠코프의 미술품 수집 역사는 1854년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ROOM10)를 사들이며 시작된다. 아카데미 화파에 속하지 못한 가난한 화가들(이동파)의 그림을 사들이고 1970년 자신의 집에 미술관을 열어 일반인들의 관람을 허용한다. 그렇게 시작한 미술관 관람인구ㅠ가 1885년 한 해에만도 3만 명 이상으로 늘어 모스크바 최고의 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파벨 트레챠코프는 "러시아 그림들은 모두 민중에 속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1892년 동생 세르게이 트레챠코프가 수집한 서유럽 미술품과 함께 자신의 미술관을 국가에 기증한다. 그렇게 1893년 8월 15일에 '파벨과 세르게이 트레챠코프 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현재 매년 15만 명 이상이 찾는 모스크바의 명소가 되었다. 현재 공식 명칭은 '국림트레챠코프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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