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식 著,『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2018. 11. 26. 20:40미술/미술 이야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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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2018. 3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_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당신에게 보여주고픈 그림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기 전에는 전혀 실감이 가지 않는 말이지만

세상 단 하나의 진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픈’ 사실이다. 

방금 ‘아프다’고 했다.

늙어 노인이 되는 게 뭐가 그리 아픈 일이겠냐마는,

누구나 짐작하고 상상하고 실감하는 대로

몸은 예전 같지 않아 불편하고

마음은 과거에 대한 회한과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아쉬움으로 고통스럽다.

영원할 줄 알았던 주변도 변하고 사람도 떠난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떠나보낸 육체도 이제 버겁다.
이래서 옛날부터 사람들은 젊음을 칭송하고 늙음을 두려워했나 보다.
그런데 또 한편

이 모든 건, 아직 덜 늙은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그냥 짐작이다.

누구도 본인이 직접 늙어보기 전에는 노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건지 알지 못한다.
실제로 집단심리를 연구할 때

노인 집단은 일반화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개인의 특성이 크기 때문이다.

백지 같은 유아동기 만큼이나 개인차가 큰데,

잔뜩 쌓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노인은, 노년의 삶은 대충 넘겨짚듯 단순하지가 않다.
의외로 다양하고 모순적이며, 복잡하고 일탈적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앞으로 특별하게 늙어갈 노인들이다.




저자 이연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우키요에를 조금씩 알아보다 본격적으로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우키요에 세계에 발을 들인 ‘마니아’이기도 하다. 우키요에와 양풍화(洋風畵)에 대한 논문을 썼다.

『유혹하는 그림, 유키요에』『눈속임 그림』『아트파탈』『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괴물이 된 그림』『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와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를 썼고, 무서운 그림』과 『맛있는 그림』,『다케시의 낙서입문』『마리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모티프로 그림을 읽다』를 번역했다.





책 속으로


이 책에 대한 구상은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집을 적잖이 봤다. 작품은 대체로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 예술가들은 초반의 미숙한 시기를 거쳐 중년에 스타일이 만개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작품이 점점 이상해졌다. 왜 예술가는 가장 좋은 순간에 멈추지 못하는 걸까? 왜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지지 않는 걸까? 노년의 예술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작품에 딸린 비평이나 해설을 봐도 분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나이들어 작품이 이상해지는 양상에는 묘하게도 어떤 공통점이 있다. -6쪽

한때 서유럽의 모든 군주가 탐내던 화가 티치아노가 같은 주제를 두 번 그린 그림은 종종 서로 비교된다.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다. 한 점은 50대 초반인 1540년대 초에, 또 한 점은 나이 여든이던 1570년에 그렸다. 젊을 때 그린 산뜻하고 정돈된 그림과 달리 나이들어 그린 그림에서는 윤곽선이 무너지면서 세부가 뭉개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그림 속 인물들은 광채와 어둠에 휘감긴 모습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장면에 대한 비감은 더욱 깊어진다. -7쪽

미켈란젤로는 오래 살았다. 거의 90년을 살았으니 오늘날 기준으로도 장수한 셈이고, 당시로서는 경이적이었다. 오랫동안 대체로 건강하게 살다 보니 작품도 많이 남겼다. 그는 노년으로 갈수록 마무리에 신경을 덜 썼다. 작업과정을 거의 마치고도 표면을 깨끗하게 다듬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언제부턴가 미켈란젤로의 마음속에서는 회의가 일었다. 형상을 끄집어낸다는 생각은 그럴싸했지만, 점점 돌 속의 형상이 내는 목소리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피렌체의 피에타’라고도 하는 〈반디니의 피에타〉는 늙은 예술가가 겪은 혼란과 좌절을 보여준다. -25쪽

렘브란트가 20대 초반과 중반에 그린 놀라운 그림들과 30대와 40대에 그린 그림들을 비교하면, 20대 때 그림은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30대와 40대 때 그림들은 편안해지면서 느른해진다. 서른이 넘어서 대충 40대 초반까지는 그림들이 밋밋하다. 그런데 40대 중반 무렵부터, 그러니까 1650년대 들어서면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색다른 조짐을 보인다. 렘브란트가 자신과 친했던 부르주아, 얀 식스를 그린 그림은 이런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45쪽

터너가 스스로 단단하게 일구어간 확신은 중년에서 노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예술가가 지니게 된 힘을 보여준다. 주변에서는 터너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저 괜찮은 예술가가 나이들어서 이상해졌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겪어온 예술가 본인은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음을 깊이 느끼고, 그런 확신을 바탕으로 묵직한 걸음걸이를 보여준다. -83쪽


젊었을 적 드가는 수목과 하늘을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동료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풍경을 그리는 걸 비아냥댔다. 헌병대를 동원해서 그런 화가들을 성가시게 했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했다. 그랬던 드가가 정작 노년이 되자 점점 풍경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드가가 그린 풍경은 모네나 르누아르, 시슬리가 그린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크게 다르다. 차갑고, 으스스하고, 우울하다. 비관적이고 멜랑콜릭한 드가의 기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95쪽

1910년대 전후로 모네는 수련을 자신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앞서 1880년대 말에 수련을 두어 점 그리다가 말았는데, 한참 뒤 괜찮은 거 없나 하고 앞서 그린 작품을 뒤적이다가 수련을 발견하고는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에 썼던 메모나 노트를 우연히 다시 보고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처럼 말이다. 모네는 일찍부터 물에 비친 풍경을 좋아했다. 수면이 햇빛을 받아 일렁이는 모습, 실체가 아닌 허상이 만들어낸 리드미컬한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수련은 그런 매혹을 되살릴 좋은 주제였다. -128쪽





____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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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_ 나이든 예술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노년의 특징은 뭘까? 이거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노인은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젊은이는 노년을 이해하기 어렵다.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노인의 입장에서도 아랫 세대들에게 스스로의 처지와 감정을 납득시킬 수단이 별로 없다.


예술가에게 있어 노년에는 뭔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년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예술에서도 온후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이든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걸 찬찬히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노년을 통과하면서 예술가들은 곧잘 궤도에서 이탈하는데, 그렇게 이탈하는 양상이 매우 흥미롭다. 지리멸렬하다고도 할 수 있고 달리 보면 자유롭고 허허롭다고도 할 수 있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티치아노,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1545년. 오른쪽: 티치아노,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 1570년





티치아노의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를 보자. 한 점은 50대 초반에, 또 한 점은 나이 여든이던 1570년에 그렸다. 젊을 때 그린 산뜻하고 정돈된 그림과 달리 나이 들어 그린 그림에서는 윤곽선이 무너지면서 세부가 뭉개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그림 속 인물은 광채와 어둠에 휘감긴 모습니 되었고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장면에 대한 悲感은 더욱 깊어진다.


노년의 예술가들이 새로이 내놓는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악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윌리암 터너는 얼핏 미완성에 가까운 작품들을 연달아 내보이면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렘브란트가 네덜란드 시민의 취향을 조금만 더 고려했더라면 말년이 평안했을 것이다. 왜 나이든 예술가들이 이처럼 판을 그르치는가?


나이든 예술가는 작업을 더 많이 한다. 쾌락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 자리에 창작에 대한 욕구가 채워진다. 정작 노년에 작품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반면에 젊은 예술가는 기운이 좋은데도 이것 저것 처리할 일이 많고 놀거리도 많아서 나이든 예술가만큼 작업을 하지 못한다.


예술은 축적된 문화의 관례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 활동이다. 이런 점 때문에 예술은 노년과 연결된다. 노년은 저마다 이어온 관례와 쌓아온 경험이 마침내 답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노년은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기엔 너무도 복잡하고 제각각이며 모순적이기도 하다.




1장 나이들어 맞닥뜨린 혼란과 절망 - 미켈란젤로
2장 외면받는 거장의 힘과 자존심 - 렘브란트


렘브란트가 40대 이후에 그린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20대와 30대에 그렸던 그림들을 다시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중년과 노년에 그린 그림의 심오한 표현에 비하면, 젊을 적에 그린 그림은 과장되어 보이고 치기어린 느낌이 든다. 그가 노년에 그린 인물들은 조용하고 초연하기에 더욱 강렬하다. 하지만 이런 예술적 성취도 그의 몰락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Terugkeer van de Verloren Zoon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미완성작을 제자가 마무리했다는 설이 있다.


 


3장 미래를 가리키는 거인 - 터너


터너의 작품에서 오늘날 터너의 성격을 잘 드러낸 것으로 여겨지느느작품은 대부분 40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터너는 나이가 들수록 배, 건축물, 인물 등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 관심이 없어졌다. 물감덩어리와 붓질이 뒤엉킨 그의 그림들은 무성의한 미완성작으로 취급되었지만 오늘날 그 그림들은 오히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초년에는 관례를 잘 따르는, 다소 수줍어하고 겸손한 예술가였던 그가 왜 이렇게 바뀌게 되었을까? 터너는 뒷날 등장하는 혁신적인 예술가들 보다도 오히려 더 혁신적이었는데, 한편으로 그에게는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주는 동료나 비평가가 없었다. 터너는 철저히 혼자였으며 보수적인 영국 미술계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4장 과거를 거듭 정리하고픈 욕망 - 드가
5장 기억에 의지한 분투 - 모네
6장 질서와 분방함 사이에서 찾아낸 대답 - 르누아르



La Grenouillereㅡ모네 1869 

 

La Grenouillereㅡ르누아르 1869

 

 

르누아르는 모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모네를 존경했고 모네에게 배운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모네의 모습을 많이 그렸지만 모네는 르누아르를 그리지 않았다.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파리 근교의 행락지인 라 그르누예르를 모네도 그리고 르누아르도 그렸다. 모네의 그림에서는 물결과 바람이 주인공이다. 필치는 단단하고 냉정하다. 붓질 하나하나가 화면 속에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르누아르의 주인공은 인물이다. 르누아르 그림의 풍경과 배경, 그리고 붓질이며 터치 풀어져버린듯 지리멸렬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르누아르의 그림은 안일해 보인다. 마네는 르누아르의 이런 점을 무척 싫어했다. 마네는 벽에 걸린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모네에게 속삭였다. "이 자는 자질이 없어. 당장 포기하라고 하게."







7장 갈등을 이겨내고 일군 위대한 종합 - 칸딘스키


칸딘스키는 그림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그림의 내용이나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색채와 형태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훨씬 이전에도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며 인물이나 ㄱ사물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은 그림도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었다.

칸딘스키는 바그너를 열렬히 신봉했다. 바그너의 <로엔그린>에 깊이 감명받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색을 보는 이른바 '공감각'을 경험했다. 그리하여 음악과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회화를 만들려 했다. 이를 위해 각각의 음을 색채와 대응시켰다. 그런데 공감각은 아주 특별한 자질 혹은 성향이다. 관객은 여기서 완전 유리되어버린다. 음악과 같은 미술을 만드는데 성공했는지 어땠는지 관객의 입장에서는 알쏭달쏭할 뿐이다. 






8장 번민의 롤러코스터와 갑작스런 추락 - 폴록



명성의 이면에는 공포가 도사린다.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작품이 환영받는다는 것에. 하지만 환영받는 방향으로 계속 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언젠가는 알아볼 것 같다. 자신이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을. 자신이 비열한 사기꾼이란 것을. 내가 왜 이지경이 된 거지? 하지만 대중의 갈채를 뿌리칠 자신은 없다. 예술가는 명성의 노예가 되고 대중은 예술가를 노예로 부린다. 광대처럼.







9장 모든 게 거짓이라는 자기부정 - 로스코



예술가는 짐짓 초연한 척한다. 하지만 실은 지위와 명성에, 그러니까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몹시 예민하다. 예술가가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능 때는 명성이 따라붙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명성을 누리는 예술가는 내부적으로 이미 하락세를 타고 있다.

로스코의 작업에 담긴 어둠이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것인가, 아니면 그 어둠을 작업으로 극복하는 데도 실패한 것인가.  로스코의 삶과 작품은, 예술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고 위로하지도 못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그림은 명상적이고 종교적이고 비극적이며 연극적이다.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으니까 보는 이가 무든지 투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림에서 감정과 예술가가 그림에 담은 감정이 같은 지는 결코 알 수 없다.







10장 인생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마지막 수수께끼 - 뒤샹



뒤상은 애초부터 전통적인 기법을 존중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다. 대랸생산의 시대를 맞아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미술은 의미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1912년 항공공학 박람회를 관람하면서 뒤샹은 친구인 조각가 브랑쿠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회화는 끝났네. 저 (빙빙 돌아가는)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나?"






그럼에도 다루지 않은 작가들



"내게 10년이나 15년을 더 준다면 조각을 온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인데"..... 90세의 미켈란젤로

"하늘이 내게 5년의 수명을 더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될 수 있을텐데"..... 89세의 가쓰시카 호쿠사이




나오며│참고문헌 75권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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