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0. 16:59ㆍ詩.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인생을 다시 시작한 어머니들.
이 책은 그런 어미니들이 쓴 詩 100편에 김용택 시인이 글을 보탠 시집이다.
글을 쓴 어머니들은 가난해서, 여자는 학교 가는 거 아니라 해서, 죽어라 일만 하다가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
이름 석 자도 못 써보고 살다 가는 줄 알았는데,
황혼녘에 글공부를 하니 그동안 못 배운 恨이 詩가 되어 꽃으로 피어났다.
손도 굳고 귀도 어둡지만 배우고 익혀서 이제 연필 끝에서 詩가 나온다.
어머니들의 詩는 가슴 뭉클하고, 유쾌하고, 희망이 넘친다.
틀에 갇히지 않아 재기 발랄하고 표현이 삶처럼 생생하다.
어떤 시인도 흉내 내기 힘든 감동을 안겨주는 이 시집은 어머니들이 세상에 주는 귀한 선물이다.
김용택 엮음. 2018. 5
지도교사분들(김용택 시인?) 이 글맵씨를 손봐준 티가 나긴 합네다만,
저작권자는 엄연히 作詩한 손과 머리의 주인이므로,
詩 임자는 본인들이 맞스무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아니면 나올 수가 없을 소재들로 인해서
시의 참신성을 돋보이게 하는 수작도 많이 눈에 띕네다.
두고 볼 것도 없이, 날개 돋힌듯 시집이 팔려나가리라 사료됩니다.^^;;
(* 이분들이 한글을 배운 곳은 전국 각지의 제각각입니다.)
아버지 생각
박기화
단발머리 까만 교복 하얀 에리 제쳐입고
아침 일찍 종종걸음 학교 가는 아이들
담장 너머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워서
꼴망태 둘러메고 눈물콧물 흘렸어요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워
말 한 마디 못해보고 논일 밭일 일만 하다
연로하신 아버지께 뒤늦게서 원망하니
마음 아파 슬피 울던 울 아버지 생각나네
그렇게도 메고 싶던 그 책보는 아니지만
더 좋은 가방 메고 문해학교 다니면서
평생 쌓인 한을 풀며 새 인생을 시작하니
하늘 계신 아버지가 새록새록 그리워요
나의 꿈
이분녀
어릴적 나의 꿈은
남의집살이 안하고
배불리 밥 먹는 것이였네
젊은 때 나의 꿈은
새벽부터 일어나 밭일하며
자식새끼 배불리 밥 먹이고
학교 내 힘으로 보내는 것이였다
지금의 내 꿈은
삐뚤거리는 글씨로
죽은 남편 묘 위에
'고맙다'는 글 한번 써서
그리운 남편 옆에서 잠드는 것이라네
나의 보물, 동백 한 그루
조매현
우리 집 앞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
남편이 시장에서 사오신 동백나무
심은 지 2년이 되던 해 먼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동백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그 이듬해부터 해마다 꽃이
탐그럽게 피어 내가 아침마다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잎이 얼어버렸다
그것을 본 내 마음은
남편을 두 번 잃은 것 같았다
다음 해 끝순에서 새싹이 돋아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눈물이 났다
남편이 선물한 나무 한 그루가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아내가 방에 누워 어머니에게 제 詩를 읽어드리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 그대와 이어지던 날들과"를 읽을 때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가만, 가만. 거기가 좋다이. 내 이야기다. 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강 건너 밭가의 감나무만 봐도 나는 네 시아버지가 생각나 밭가에 주저앉아 울곤했단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살아온 이야기를 하셨지요.
마루 끝에 앉아 그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저는 가만가만 강으로 걸어갔습니다.
사무쳐오는 그리움들이 우리 가슴속에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시입니다.
- 김용택 시인
할미 꿈
김생엽
아주 까막눈 때는
공부가 꿈이엇는디
인자 쪼매 눈뜨니
애미 업는 손자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사능기 꿈이요
내 나이 칠십다섯잉께
얼마나 더 살랑가 몰라도
우짜등가 즈그 앞가름까지
잘 거더 매기고 다부지게 살 거시요
그것이 이 할미 꿈이요
새 인생
이명순
세월이 너무도 잘 가요
팔남매 맞지 시접살리*
너무 고달펏다
부모 복도 모 타고 나서
글 모 배운기 원통다
나가 너무 드러* 머리가 둔해
하고 접은 공부도 안 데요
내가 쓴 글 큰아들이
영감님 제사상에 올리따
영감도 잘해다겟지
조은 세상에 더 마니
배우고 시퍼요
* 팔남매 맏이 시집살이
* 나이가 너무 들어
감사해요 희망학교
조미정
나는 지적 장애를 가진 45살 아니 엄마이다
평생 무시와 간난과 불편함 속에 살았다
21살에 엄마를 잃고 우울증이 심해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33살 시각장애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후 3년 만에 하나밖에 없는 윤정이가 태어났다
이때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부부가 장애다 보니 우리 아이도 지적 장애로 태어났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러다 작년 겨울에 인실이를 통해 한글교실에 들어왔다
내 아이 윤정이를 가르쳐주기 위해 왔는데
이제는 내가 너무나 행복하게 수업을 받고 있다
배울 수 있고 행복을 갖다 준 희망학교에 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쓴 조미정님은 진짜 시인입니다. 이 시집을 읽어가며 저는 내내 내가 사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한갓진 글을 쓰고 있구나. 너무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너무 쉽게 글을 쓰고 있구나. 글을 쓰려면 멀었다는 생각들로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곤 했습니다. 글을 쓴답시고, 시를 쓴답시고, 제가 얼마나 시건방을 떨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이맹연
낙엽 떨어지던 가을
그해 가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배우고 익혀
처음으로
막내한테 문자를
써 보냈습니다
문자를 받아본 아들이
전화해 왔습니다
"......."
아들은 목이 메어 말을 못하고
나도 덩달아
목이 멥니다
영감 보고 있소?
김금준
못 배워서 받은 설움 어찌 말로 다 할까
그중에서 우리 영감한테 받은 설움
지금도 잊지 못하네
내가 못 배운 것을 알고는
성질만 나면 날 보고 은행에 가서
돈 찾어오라고 시켰지
그러면 나는 은행에 가서 땀을 쩔쩔 흘리며
2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오곤 했지
글 모르는 죄로 남편한테 대들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며 평생 살았네
하얀 종이에 글씨 써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글을 배워 은행 가는 것은
일도 아니라네
지금 영감이 살아 있다면
떵떵거리며 자랑을 할 텐데......
영감,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소?
이제는 나 무시하지 마소
이제는 글도 척척 쓰고
은행은 한숨에 갔다 온다오!
사랑해 말한 날
이순자
가족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기 숙제
내 평생 사랑한다 말을 안하고 살아서
이 나이에 쑥서러 어떻게 말해
숙제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남편 눈치만 보고 있다가
밥상 들어주는 남편에게
때다 싶어
고마워요 사랑해요
말해버렸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는데
당신 무슨 일 있나 하고
남편이 웃고 있었다
밥맛이 씹을수록 좋다
어쩔겨
이제 시작해버렸으니
매일 사랑해요라고 말해야지
엄마의 웃음
고예순
학교는 아들만 다니는 거라고
그때는 그게 좋았지
동생은 학교 가고 난 집에서 놀아쓰니까
언잰가 동생이 책을 보며 공부를 하네
까만 글씨 먼지 몰라도
하나씩 읽고 있으니 엄마는 동생 보며 웃네
나는 엄머 보며 웃는대 엄마는 동생만 보네
모두 잠든 밤
동생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조심조심
까만 글씨만 보인다
에이! 아무것도 모르겠네
나는 이재 경노당 학교에 감니다
그때 책에 있던 글씨가
'ㄱ'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운다
나도 이재 책 읽을 수 있는대
책 읽는 내 모습 보고
우리 엄마가
하늘에서 날 보며 웃고 게시겠지?
내 인생의 시작
임화자
어린 시절 글을 못 배운 나는
이 세상에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나는 이양복씨 아내다
나는 상현이 엄마다
나는 유림이 할머니다
나는 지경집 며느리다
일평생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강릉시 문화센터에 공부하러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 불러주고
친구들이 내 이름 불러주고
출석부에 내 손으로 이름을 쓰니
나도 이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름다운 내 이름을 찾았다
내 나이 70에 새 인생을 시작했다
▒
자식들 기르며 앞만 보며 살아왔는데
나이 들어 친구들과 함께 간 노래방
글씨 모르는 걸 들킬까 봐
마이크도 한 번 잡지 못했다
- 김종윤 「행복」 중에서
평생 부끄럽고 슬픔 속에 살아왔어요
나가면 수많은 글자와 숫자가 보였으나
눈길을 돌리고 고개를 숙이고 살았어요
팔십 나이 넘어 새 세상을 만났어요
눈이 열리니 마음이 기뻐지고
간판도 버스도 묻지 않고 탈 수도 있고
고개를 들고 살피니 내 눈이 바빠졌어요
- 양소환 「내 눈이 바빠졌습니다」 중에서
오, 홍천!
한미숙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어
혼자서는 어딜 가본 적이 없었어요
글을 배우고 익히던 중
강원도 홍천에 다녀올 일이 생겼지요
평택에서 수원, 수원에서 홍천
홍천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
혼자서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건 아닐까?
두근두근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누르며
천천히 글자를 보고 버스를 탔어요
드디어 눈에 들어온 '홍천시외버스터미널'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며 생각하니
하루가 정말 꿈만 같았지요
자신감을 안겨준 첫 나들이길
홍천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문자 보내기
김복남
띠링~~ 문자 왔다는 소리
볼 순 있어도 답장은 못한다
행여 글자가 틀릴까 봐
바빠서 못 봤다 둘러대며
목소리로 답한다
더 이상 핑게가 없어 글공부 시작했다
매일매일 쓰고, 읽고, 쓰고,
문자 당장 하리라 밤낮없이 공부한다
띠링~~
'내일 모임 7시 행복식당입니다.'
난 이제 문자로 답한다
'김복남 참석합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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