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9. 21:28ㆍ詩.
2012. 1.
저자 최영미
- 저서(총 18권)
-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일간지 1면 6단 통광고를 내는 파격을 보이며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역시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오십 만 부 이상이 팔려가며 그 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
-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이미 뜨거운 것들》. 산문집 《시대의 우울》 《길을 잃어야 여행이다》 《우연히 내 일기를 보게 될 사람에게》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미술에세이 《화가의 우연한 시선》. 장편소설 《청동정원》 《흉터와 무늬》. 번역서 《화가의 잔인한 손》 《그리스 신화》.
제1부
일요일 오전 11시
종이 울리고
어느새
중년의 기쁨
다시는
아파트를 꿈꾸며
내 집
2007년의 사포
10월의 교정
11월의 낙엽
내일을 위한 기도
제2부
나무가 깡통에게 - 난지도를 지나며
Love of My Life?
글로벌 뉴스
세계는 지금
나무는 울지 않는다
손의 여행
활주로
얼음처럼 낯선
4월은 잔인한 달
사계절의 꿈
여기에서 저기로
한가한 오후
광장을 지나며
2008년 6월, 서울
지상 최대의 쇼-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일상의 법칙들
제3부
온종일 집에서
허기와 객기
가장 쉬운 길
동시를 읽고
동시를 읽은 다음날
타인의 시
한여름, 부엌에서
지루하지 않은 풍경
행복
아이에게
똑똑한 아이
극장
자연의 합창
하늘의 소리
?
청개구리의 후회
그 여자
보낸 편지함
청동정원
제4부
아름다움이 너희를 자유롭게
교토의 바위정원
나의 여행
4월의 알리칸테
파리의 지붕 밑
발굴 현장
철길, 핏줄
사교적인 저녁식사
나쁜 평판
서투른 배우
어떤 동문회
1977년 12월 7일
나는 시를 쓴다
해설 | 사가와 아키 글로벌 시대의 세련된 지성
시인의 말
일요일 오전 11시
유럽인들이 버린 神을
아시아의 어느 뭉툭한 손이 주워
확성기에 쑤셔넣는다
Love of My Life?
너무 맑아
낚시꾼도 포기하고 돌아서
아무도 놀지 않는 연못.
깊은 물을 두려워 않던……
그는
나의 열린 문으로 들어온
날쌘 물고기.
노를 젓지 않아도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기술을 알던
능숙한 바람개비.
어느 겨울 아침, 황금비늘을 자랑하며
그는 떠났다.
그가 휘젓고 다닌 구석구석이
흉터와 무늬 되어,
그가 일으킨 물결 밑에
꼼짝 않고 얼어붙어
비가 와도 나는 흐르지 못한다.
4월은 잔인한 달
그것을 하지 않고
팔 년 만에 돌아온 봄이었다
금욕에 길들여진 정갈한 방.
화분에 물을 주고 밖을 내다보니
벌레처럼 들끓는 봄볕.
범람하는 꽃가루 때문인가
쉽게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던 육체가
바위처럼 뻣뻣한 가슴을 열고,
뜨거웠던 용암의 분화구를 추억한다
사교계의 꽃이 되고 싶지 않아
무대에서 내려운 배우가
길게 누워 봄을 앓는다
소문만 무성했지 자신을 불사르지 못한
생애의 마지막 연기를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고 립스틱을 칠한다
(취미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겠지?)
질겨진 가죽에 향수를 바르면
육식동물이 될까?
가장 쉬운 길
옛날에 나는,
침대 위에서
소파에서
차 안에서
텐트 속에서
지저분한 흙 위에서
미지근한 바위에 누워
흐르는 강물에서
흐르지 않는 물에서
욕조의 비누거품 속에서
차가운 이불 밑에서
있지도 않은 행복을 찾아, 눈을 감았다.
지금 나는,
식탁에서
눈을 크게 뜨고
날마다 찾아오는 쾌락을
잘게 부수어
구멍으로 밀어넣는다.
싱싱한 고기의 피 묻은 입술.
여기에서 저기로
올해도 님을 만나지 못한 분홍빛 벽지를 팔고
한번 펼치지도 못한 화사한 이불을 빨고
이삿짐을 싸고 베갯잇을 바꾸었지
아침에 빠져나온 잠자리를
밤에 들어갔을 뿐인데,
여행의 끝이 보이네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 않은 삶.
여기에서 저기로,
이 남자에서 저 여자로 옮기며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 젊은.
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네
한가한 오후
406동에 사는
세준이 어린이는 지금 즉시
큰엄마네 집으로 가기 바랍니다.
?
관리실에서 내보내는 우리말을 이해하고
웃음의 꼭지가 터져 책상이 뒤집힌다
엄마도 아니고 왜 하필 ‘큰엄마’인가?
내게 웃을 힘이 남아 있으니
허망하게 죽지는 않으리
오 ─ 인생, 너는 엉뚱한 곳에 시를 감춰두고
실패한 자의 오후를 위로하는구나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너를 보기 전에 나는
내가 얼마나 아름다움에 굶주렸는지 몰랐다
- 최영미 시,「일상의 법칙들」 중에서
서투른 배우
술 마시고
내게 등을 보인 남자.
취기를 토해내는 연민에서 끝내야 했는데
봄날이 길어지며 희망이 피어오르고
연인이었던 우리는
궈도를 이탈한 떠돌이별.
엉키고 풀어졌다.
에고된 폭풍이 지나가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는 너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
우리 영혼의 지도 위에 그려진 슬픈 궤적.
무모한 비행으로 스스로를 탕진하고
해발 2만 미터의 상공에서 눈을 가린 채
나는 폭발했다.
흔들리는 가면 뒤에서만
짐을 내려놓고 우는 피에로.
추억의 줄기에서 잘려나간 가지들이 부활해
야구경기를 보며, 글자판을 두드린다.
너는 이미 나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만
지금 너의 밤은 다른 별이 밝히겠지만……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시를 쓴다」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예술가에게도 도청 공무원의 품성을 요구하고
시인도 지방 면서기의 충성심을 보여야
살아남는 한국사회에서
내 자신도 예측하지 못하는 불안한 자아.
기우뚱거리는 배에 투자하려는 船主는 없다고
누군가 내게 충고했다
- 「나쁜 평판」중에서
보낸 편지함
내 수첩에서 지워진 이름들. 지워지지 않았으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
살아 있지만 죽은 이들보다 멀어진,
싸늘해지기 조금 전의 미지근한 애정.
두 번 세 번 고친 형용사들. 정중함이 지나치거나 모자라
전문적인 양념을 뿌린 의례적인 인사들.
우정이 끝났는데도 찍지 못한 마침표.
상대를 잘못 고른 문장들.
웃음거리가 되었을 지나친 솔직함.
그녀의 전화기를 뜨겁게 달구고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배달되었을 스캔들.
항의한는 편지들.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재판 냄새가 나는 문서.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그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밤에 쓰고 아침에 검열한
기다리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잔뜩 게획만 세우고 떠나지 못한 여행들.
어머니 앞으로 보낸 편지는 없다!
한 번뿐이었던 완벽한 하루는 저장되지 않았고
뚜껑이 열리면 걷잡을 수 없어
두 번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그 여자
분위기가 어색하면 삼십 분도 참지 못하고
지루한 인간과 차를 마시면 하루가 불편하고
맛없는 식사를 하면 사흘쯤 기분이 나쁘고
모임에 나가면 불안해.
추워도 숄을 어깨에 걸치지 못하고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면 일주일이 불행하고
싫은 사람과 술 마시면 일주일이 지나도 불쾌하고
좋아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다 않는
?
언제 시를 쓰세요?
─ 내가 시인임을 잊었을 때
어디서 시를 쓰세요?
─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왜 자꾸 이사 다니나요?
─ 왜 한곳에 계속 살아야 하지?
같이 사는 사람이 있나요?
─ 지난날의 수많은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더불어
왜 혼자 식사하나요?
─ 남들과 어울리면 음식의 맛을 모르니까
무슨 재미로 혼자 마셔요?
─ 술 마시는 재미로
누구와 자느냐고.
그들은 내게 감히 묻지 않았다.
글로벌 뉴스
유프라테스 강과 홍해가 마르고 닳도록
죽음의 행진이 멈추지 않는다
강한 자는 강자의 방식으로
약한 자는 약자의 방식으로
신의 이름으로 사형을 집행한다
에수와 마호메트가 태어나 묻힌 곳에서
에언자들이 평화를 설교했던 성지에서
왜 매일 총질이 끊이지 않는가
예언자들이 틀렸거나, 당신들이 틀린 거야
(......)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고
배아를 복제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인류의 자기 파괴를 막지 못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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