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8. 21:22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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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림은 무엇인가
나는 1980년 오월 광주를 관통하면서 국가폭력과 싸우는 것을 내 인생의 목적이고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악에 저항하는 것이 내 그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은 나에게 '도구'다.
가난하게나마 나를 먹고살게 만드는 직업이다.
또한 내가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표현하는 도구다.
그림은 나의 '무기'다.
저 무참한 권력들은 항상 법을 앞세우고 뒤에서 우리 등 뒤에 총과 칼을 박았다.
그림은 그들의 음모를 폭로하고,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게 만드는 무기다.
그림은 진실을 파괴하는 온갖 야만에 저항하는 지극히 단순한 내 언어일 뿐이다.
물론 나의 그림이 저 야만을 꺾는 힘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지 이 모멸스러운 시대를 함께 견디어내는 사람들과의 연대와 공감을 추구하는 인간정신을 세우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prologue 중에서
‘세월오월’의 원작 전체를 담아낸 작품집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이후, 전시 불허 결정이 내려졌던 ‘세월오월’의 원작 전체를 담은 책이다. 저자 홍성담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슬픔을 진정으로 치유하려면 그들이 삶과 죽음 경계에서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고 떠올려야 한다며 찰나의 고통 속에서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는 그들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냈다.
사실 풍자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국가의 운명이 파시즘으로, 독재로 흐를수록 풍자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인들을 견제하고 풍자하고 조롱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불가하다고 강조한다. ‘금기사항’으로 소독되지 않은 천부적인 자유, 싱싱한 자연 그 자체의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는 홍성담 화가의 글과 그림이 자유롭게, 때로는 위험천만한 모습으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가 16,800원 15,120원
저자 홍성담
- 목포에서 배로 두어 시간 걸리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80년 광주 오월을 겪은 작가는 꾸준히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해 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광주 오월 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 환경생태 연작그림 [나무물고기],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에 관한 연작그림 [야스쿠니의 미망], 제주도의 신화 연작그림 [신들의 섬], 신문사진 분석법에 관한 연작그림 [사진과 사의], 국가폭력에 관한 연작그림 [유신의 초상], 세월호 연작그림 [들숨 날숨] 등이 있다. 국제 엠네스티가 1990년 ‘세계의 3대 양심수’로 선정, 뉴욕의 국제정치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가 ‘2014년 세계를 뒤흔든 100인의 사상가(thinker)’로 선정되었다.
프롤로그
_ 나에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PART0
민중, 미술, 그리고 걸개그림
- 거대한 서사를 담은, 민중과 함께 숨 쉬다
동학 - 달빛에 바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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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알 바다로부터 유민한 하얀 사람들의 역사 - 까마득하게 먼 옛날의 사람 사는 이야기
PART1
진실: 세월호 3년의 기다림
- 진실의 숨통이 트이고 고통이 사라지다 - 세월호 참사 기억 프로젝트 2.5 [들숨 날숨]
세월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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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
꿈
친구와 마지막 셀카
마지막 문자 메시지 - 에어포켓
내 몸은 바다
내 몸은 바다 3 - 기억 교실
내 몸은 바다 4 - 청와대의 밤
끈
김관홍 잠수사 - 애들아 이제 그만 일어나서 집에 가자
마지막 숨소리
눈물
홍수
나는 매일 아침에 유병언을 만난다
비정상의 혼 1
비정상의 혼 2
욕조 - 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 2
똥의 탄생
PART2
폭력: 동아시아, 그 통한의 역사
- 동아시아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세 개의 섬
제주 4ㆍ3 고
가화
신몽유원도
아바타 2
오키나와 야스쿠니 - 벼랑의 출산
타이완 야스쿠니 - 우상의 숲
치란의 밤
야스쿠니의 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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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야스쿠니’의 어둠 속을 걷고 있다
봉선화 1, 여름
봉선화 2, 가을
봉선화 3, 겨울
봉선화 4, 5
야스쿠니와 군위안부
야스쿠니와 유슈칸
일본 군복을 입은 자화상
간코쿠 야스쿠니
야스쿠니와 히로히토
천황과 히로시마 원폭
야스쿠니와 마츠이 히데오
PART3
예술가의 사명: 직설인가, 풍자인가
- 소독되어진 표현의 자유를 거부한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말춤
백비(白碑)
바리깡이 지나간 길
산업화의 아버지
부자 되세요
대한민국 대문이 몽땅 타버린 날
향불
뜸뜨기
검은 장막
새
검은 눈물 1
검은 눈물 2
고무장갑
장화와 군화
용산에서 불바다를 보다
던지다
보다
나누다
소잔등
해와 달
사대강 레퀴엠 - 삽질 소나타
우먼 록밴드 [어쩔시구]
김기종의 칼질
골든타임, 출산 그림에 관한 비망록
꽃노리
PART4
파괴: 불편한 진실을 찾으려 길 위에 서다
- 파괴는 부조리와 함께 자란다
안개를 뿜다
괴물을 만나다
별똥별이 떨어지다
인간이다
날개를 찾고 싶다
어둠이 깔리다
새하얗게 되다
쓰레기 벽을 만나다
한을 풀어주다
날개를 덮고 잠들다
도시에 들다
거대한 눈은 분노한다
다시 눈을 뜨다
날개를 찾아 떠나다
모두 떠날 때가 되었다
소리를 찾다
돌아오다
포구에서 만나다
사라지다
애국심이 빗나가다
그날 이후
핵 - 거룩한 식사
PART5
촛불: 광장에 모인 사람들
- 하나의 촛불이 모여 세상이 변하고
낳을 생(生)
환경의 위기와 평화의 위기, 그 대안으로서 농경문화
사람이 하늘이다 - 북한 공작원 김평원
새
합수 윤한봉
아스팔트
참여시대
촛불 1
촛불 2
촛불 3
출판사 서평
2017년 현재 그보다 더 처절하고 진지하고 적나라하게
세상의 아픔과 상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표현하는 화가는 없다!
“예술가에게 가장 비굴한 순간은 자존심을 버리는 순간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이후 전시 불허 결정이 내려졌던 [세월오월]의 원작 전체가 3년 만에 돌아온 세월호와 함께 드디어 대중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오월]은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비통에 빠지게 만들었던 세월호 사건 후 한 달간의 작업 끝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해 주목받은 동시에 유형ㆍ무형의 탄압을 받으며 줄곧 원작 전체가 공개되지 못하고 부분 이미지만 잘려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를 쇠사슬로 채운 블랙리스트 사태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슬픔을 진정으로 치유하려면 그들이 삶과 죽음 경계에서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고 떠올려야 한다며 찰나의 고통 속에서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 존엄성의 깨닫게 하는 그들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청년 시절, 1980년 오월 민중항쟁에 직접 참여했고 ‘광주학살 진상 규명’에 청춘을 다 바친 그의 모든 경험은 세월호 사건을 더욱더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국가 폭력과 싸우는 것이 그 인생의 목적이고 약속이라며,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악에 저항하는 것이 자신의 그림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풍자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국가의 운명이 파시즘으로, 독재로 흐를수록 풍자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인들을 견제하고 풍자하고 조롱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불가하다고 강조한다. ‘금기사항’으로 소독되지 않은 천부적인 자유, 싱싱한 자연 그 자체의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는 홍성담 화가의 글과 그림이 자유롭게, 때로는 위험천만한 모습으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술가는 항상 사회적 금기와 터부를 마음껏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나에게 ‘도구’다.
가난하게나마 나를 먹고살게 만드는 직업이다.
또한 내가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표현하는 도구다.
그림은 나에게 ‘무기’다.
저 무참한 권력들은 항상 법을 앞세우고 뒤에서 우리 등에 총과 칼을 박았다.
그림은 그들의 음모를 폭로하고,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게 만드는 무기다.
그림은 진실을 파괴하는 온갖 야만에 저항하는 지극히 단순한 내 언어일 뿐이다.
제주 4ㆍ3 사건, 광주 오월항쟁, 유신 독재 시절, 세월호 사건, 위안부 문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촛불집회 등을 이야기하며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은 이 시대를 함께 견뎌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빠져들게 할 것이다.
책속으로
걸개그림 [동학-달빛에 바랜 눈물]은 북접(北接)을 중심으로 동학의 사상적 배경과 남접(南接)을 중심으로 동학 농민 혁명을 씨와 날로 직조했다. 걸개그림 양식의 모본이 된 [감로탱화]에서 보여주는 시간과 공간의 배치를 ‘사상’과 ‘행동’으로 교직하면서 동학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조선왕조는 일본군을 끌어들여 동학 혁명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동학 혁명군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본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재판을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제자가 한강 모래밭에 효시된 정봉준의 목을 몰래 거두어서 대나무 석작에 넣어 고향 정읍 어느 고갯길에 묻었다. 1980년대의 농민 운동가들에게 따스한 쌀밥 한 끼 지어주기 위해서 녹두장군이 다시 살아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동학 잔당으로 제자들과 떠돌다가 후천개벽을 위해 천지공사를 외치던 조선의 마지막 지식인 증산 강일순은 금산사 미륵불 배꼽에 들어가 머물다가 개벽된 세상과 함께 오겠다며 1909년 음력 6월 24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p.16
“지지와 맹신은 다르다. 맹신은 사이비 종교다. 맹신적인 지지자를 갖고 있는 정치 지도자는 파시스트 독재로 변한다. 특히 박정희 유신 독재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온통 행복으로 각인된 기억을 갖고 있는 박근혜 후보는 결국 새로운 형태의 국가주의를 부활시키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내가 예언을 한다고들 말하는데, 그런 능력은 없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저 말이 결국 사실을 관통하고 말았다. 이와 비슷한 그림들, 즉 세월호 사건과 국가 권력과의 관계를 그린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그중에서 이 그림은 부정한 권력과 화가 자신의 얼굴을 오버랩 시켰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릴 때에는 항상 자기성찰의 의미가 강하게 작용한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저런 오만과 불통이 혹시 나에게도 있는 것 아닐까?” - p.80
“야! 너!” 일단, 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무조건 달아나야 했다. 이즈음에 가수 송창식이 [왜 불러]라는 노래를 만들었지만, 곧 금지곡이 되었다. 경찰들이 젊은 장발들을 사거리에 세워놓고 바리깡으로 정수리 한가운데에 고속도로를 냈다. 우리는 고속도로가 난 머리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냥, 그대로 돌아다녔다. 단속과 금지가 난무하던 시대에 복장이나 머리 길이라도 내 마음대로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는 것은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항심이었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이러한 작은 반항심마저도 용인하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 정권이었다. 박정희 유신 독재를 가장 시각적으로 잘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젊은이들의 정수리에 낸 ‘고속도로’다. 이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산업화의 상징이 되었고, ‘빨리빨리! 더욱 빠르게’ 문화와 ‘대충대충 두루뭉수리’ 습관과 ‘모난 돌이 정 맞는’ 환경을 한국인들의 뇌에 영원히 문신하였다. - p.151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것이 생명의 본질인데 상식과 다른 현상들이 점차 일상적으로 발견된다. 죽음 없는 생명, 이는 두말할 것 없이 환경의 위기라고 보아야 한다. 오로지 인간을 위해 ‘소’에게 ‘소’를 먹이다가 광우병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인간을 위해 산을 황폐화하고 강을 병들게 하고 바다를 오염시키다가 결국은 그 모든 재앙을 인간이 받게 되는 것도 이젠 이미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인간을 위해 환경도, 평화도, 생명도 종속시키는 위험한 삶은 환경 위기를 넘어 인간 생명의 위기가 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벌어진 4대강 죽이기는 ‘4대강 살리기’라는 언어로 회절되어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거두어버렸다. - p.200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들었다. 콩알만 한 불로 천지에 가득 덮은 어둠을 밝히려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촛불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을 어떤 이는 머릿속 가득 들어찬 욕망을 누구는 자기를 짓누르는 두려움을 태우고 있다. 그렇다. 초가 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태우는 것이다.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한 줌 남김없이 태워버리고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모판에 뿌린 불씨(火種) 같다.’ 2003년 광화문 ‘촛불시위’를 광각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고 언뜻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다. 한밤중 대한민국 도심을 수놓은 촛불 시위 현장을 불꽃의 모판으로 그렸다. 내가 그린 촛불의 모습은 다양하다. 종이컵에 든 촛불, 촛농이 녹아내리며 바람에 몸을 낮추는 촛불, 눈에서 타오르는 촛불, 가감 없이 손이 불타는 화염, 제각각이지만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다. 민주주의를 향한 ‘온기가 스민 희망’이 그것이다. - p.303
홍성담 작품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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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_바리깡Ⅰ-우리는 유신스타일!, 194×130.5cm, 캔버스에 유채, 2012 ⓒ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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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_바리깡Ⅱ-우리도 유신스타일!, 162×130.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2 ⓒ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
광주시립미술관, <세월오월>전서 24점 전시
2014년 특별전서 무산된 걸개그림도 선보여
31일 개막식..제작 과정 다큐 영상도 상영
[한겨레]
세월호 창문 밖을 보며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물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홍성담 화백은 <4월16일 오전 10시20분>이라는 작품을 통해 먹먹한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홍씨가 그린 작품이다. 홍 작가는 지난 28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제1·2전시실에서 열리는 <세월오월>전에 세월호 관련 회화 작품 24점을 전시하고 있다.
바다 밑 깊숙한 곳에 들어가 손길을 내밀었던 고 김관홍 잠수사는 <김관홍 잠수사>라는 작품으로 부활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책임을 방기한 자리에 한 ‘의인’의 사투가 눈물겹게 다가온다. 세월호를 물 밖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을 형상화한 <꿈>은 마치 세월호 인양을 예측한 것처럼 느껴진다. 홍씨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됐다. <내몸은 바다-4-청와대의 밤>이라는 작품엔 청와대 주변을 서성이는 세월호 넋들의 ‘분노’가 스며 있다.
홍 작가는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에 의해서 물속에서 아이들과 승객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흘간에 걸친 물고문으로 죽어간 대 학살극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고 말했다. 광주시립미술관 쪽은 “홍씨가 세월호 관련 그림들을 통해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 어떤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갔는지, 아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를 서성이고 있는지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회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해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돌 특별전에 전시하려고 했으나 전시가 허가되지 않았던 홍씨의 걸개그림 <세월오월>도 3년 만에 선보이고 있다. <세월오월> 작품을 확대 실사 출력한 대형 걸개그림이 미술관 외벽에 설치됐다. 이번 전시는 5월11일까지 이어진다. 2014년 걸개그림 <세월오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제작 조재형 감독) 영상도 상영된다. 개막행사는 31일 오후 5시에 열린다.
-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윤상원, "사람 죽이는 총알이 왜 이리 따뜻하냐?" | ||||||||||||
[인터뷰] 홍성담과 `오월 예수 십자가의 길 14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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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지내는 민중미술 작가 홍성담(55세)씨의 마음은 언제나처럼 새삼스럽다. 중학생 시절에 영세를 받았으나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은 그동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본인이 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5.18을 겪으면서 언젠가는 광주학살을 다룬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싶어했다. 5.18 당시 홍성담 씨는 광주 현장에 있었다. 주로 프랭카드를 제작하고 대자보를 쓰는 선전업무가 그가 맡은 역할이었다. 광주5.18을 떠올리면서 잊지못할 한 장면이 있었다.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을 앞둔 5월 26일, 몇몇 동지들은 도청에 남고 홍성담 씨는 작업을 마무리한 뒤 총기를 반납하러 도청엘 갔다. 도청에 가서 '형'뻘인 윤상원 씨를 불러냈다. 윤상원 씨는 '담배 있냐'고 물었다. 물품반입이 차단된 광주에서 담배가 무척 귀했고, 홍성담 씨는 뒷골목을 뒤져 담배꽁초를 여러개 주워왔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배워낸 실력대로 담배찌꺼기를 털어 곱게 두 개피를 말았다. 쪼그리고 마주 앉아 담배를 태우고, 돌아서 가던 홍성담은 문뜩 자신이 총기만 반납하고 총알은 그대로 호주머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선전요원이라서 총탄은 따로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을 깜빡한 것이다. 다시 돌아가 윤상원 씨에게 총알을 건네주었는데, 그때 윤상원 씨가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사람 죽이는 총알이 왜 이리 따뜻하냐?" 그동안 홍성담의 호주머니 속에서 체온으로 덥혀진 총알이었다. 예리하게 반짝이는 금속성의 총알도 사람에게 닿으면 이렇게 따뜻해지는 것일까? 윤상원이 남긴 그 마지막 말 때문에라도 홍성담은 광주를 떠날 수 없다. 그 민중의 마음을 배신할 수 없다. 이렇게 광주는 홍성담 씨에게 '삶의 방향을 가리켜준' 원체험이 되었다. 홍성담 씨가 5월 예수를 그린 십자가의 길을 그리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멜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였다고 한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고백하듯이 예수가 우리 대신 고통을 받고 신이 되는 과정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연한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상상해 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손톱 밑의 가시조차 못견디면서, 예수의 고통을 일반화된 고통으로 치부하고 만다." 광주학살을 경험한 그에게 예수의 고난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대로 전이되어 느껴져 오는 아픔이었다. 그는 "기억은 투쟁"이라고 말한다. 5월에 겪은 국가폭력에 의한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14처'를 그렸다고 홍성담 씨는 말했다.
그가 2006년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의뢰로 남동 5.18기념성당에 걸 십자가의 길을 그리게 되었다. 계엄군에 짓밟힌 광주를 예수의 고난과 연관지어 그린 5.18 성화(聖畵)는 남동성당에 설치된 지 단 하루 만에 철거되었다. 이 성화는 그해 5월 12일 설치를 마쳤으나, 13일에 담당사제로부터 "14처 그림을 떼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작품이 전통적인 성화의 이미지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1년 가까이 혼신을 기울여 80호 크기(145㎝×97㎝)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 성화는 곧바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작업실의 수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2005년 5월에 남동성당을 '5.18 기념 성당'으로 지정했으며,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홍성담 씨에게 "십자가의 길 14처 그림에 광주 오월 예수를 형상화해 달라"고 의뢰했다. 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된 지난 17일처럼 남동성당에선 해마다 5월 영령들을 위로하는 추모미사를 봉헌해 왔다. 그 역사성을 살리자는 뜻에서 시도된 일이 어그러져 홍성담 씨는 "안타깝다." 이 성화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홍성담 씨의 작업실 수장고 속으로 들어간 채 몇년 째 봉인되어 있다. 홍성담 씨는 무등산 중턱에 5.18을 통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홍성담 씨는 1955년에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태어나 1979년 2월 조선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해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다. 1983년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해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 왔고, 1987년에는 반(反)고문전과 한국민중판화전에 참가했다. 1989년에는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이 공동 제작한 걸개 그림 '민족 해방 운동사' 사진을 북한 평양축전에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유포) 혐의로 구속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의 구속 이후 독일.영국.미국 등지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판화전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시대 30대의 기수전' '오월 미술전' '민중미술 15년전' '동학 100주년 기념전' 등에 참가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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