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9. 19:26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경매최고가' 찍은 다빈치 예수 초상화, 아부다비에 전시
─ 아부다비 정부 4억5천만달러에 낙찰.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대리구입
세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로 화제를 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 구매자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정부로 확인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경매업체인 크리스티를 인용해 아부다비 문화관광부가 ‘살바토르 문디’를 구입했다고 전했다. 크리스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아부다비 문화관광부가 ‘살바토르 문디’를 매입했다”며 “우리는 놀라운 미술품이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일반에 공개된다는 점이 기쁘다”고 밝혔다.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분관인 루브르 아부다비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살바토르 문디’를 전시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면서 “그 작품은 아부다비 문화관광부가 매입했다”고 확인했다. 아부다비는 UAE를 구성하는 7개 에미리트(토후국) 가운데 최대 규모로, UAE의 수도인 아부다비시(市)가 있는 곳이다.
‘살바토르 문디’는 다빈치가 500여 년 전 그린 예수의 초상화로,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서 4억5,030만 달러(약 5,000억원)에 낙찰됐다. 종전 경매 최고가였던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1억7,940만달러 · 1,982억원)과 비교하면 2배를 훨씬 넘는 거액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바데르 빈 압둘라 빈 모하마드 왕자가 아부다비 문화관광부를 대신해 이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크리스티가 구매자를 공개하기 전까지 미술품을 산 사람이 누구인지를 놓고 혼선이 있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보당국 관계자 등을 인용해 구매자가 사우디의 실세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라고 보도한 바 있다.
- 강신우 기자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 초상화 작품>이 2017.11.15일(현지시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0만 달러(약 4977억원)에 낙찰됐다.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으로 경매 사상 역대 최고가 낙찰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전까지 최고가는 2015년에 낙찰된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로 1억7940만 달러에 팔렸다.
이번에 거래된 초상화는 구세주라는 의미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사진)’>로 다빈치가 1505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서 예수는 오른손으로 위를 가리키고 있고, 왼손에는 수정으로 만든 큰 구슬을 들고 있다. 크기는 가로 45.4㎝, 세로 65.6㎝이다.
미술 전문가들은 이 작품을 다빈치가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위해 그린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다빈치가 아니라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림이라는 얘기도 있다. 영국 BBC방송도 낙찰 소식을 전하면서 “이 작품이 다빈치 것이라는 게 전 세계적으로 다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진의가 불분명해 이 작품은 1958년 영국 런던에서 고작 45파운드(약7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작품 전문가이자 예술사학자인 프랑스의 자크 프랑크는 뉴욕타임스에 “살바토르 문디는 레오나르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레오나르도는 뒤틀린 움직임을 선호했다”면서 “(경매에 부쳐진 작품은) 기껏해야 레오나르도(의 요소)를 조금 갖춘 좋은 스튜디오 작품이고, 많이 손상됐다”면서, “이 작품은 ‘남성 모나리자’라고 불려왔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날짜 NYT 별도 칼럼에서 제이손 프라고노프도 작품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했다. 자크 프랑크는 살바토르 문디에 대해 “능숙하지만 16세기 전환기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로부터 나온 특별히 뛰어난 종교적 그림은 아니다”면서 레오나르도 작품과 거리를 뒀다. 그는 특히 지그재그 형태의 수 매듭 등 작품 속 예수의 의상을 거론하며 ‘이슬람교의 터치’가 가미됐다면서 “레오나르도 작품을 기술적으로 분석해보면 의상에 값싼 남동광(藍銅鑛) 색보다는 순 청금색을 사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자크 프랑크는 목 부위로 내려온 예수의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에 대해서도 ‘나선형의 능숙함’이 있지만, 최근에 복원된 레오나르도의 ‘성 세례요한(St. John the Baptist)’이나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에서 만큼 능숙하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살바토르 문디>는 레오나르도가 프랑스 왕가를 위해 1500년경에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프랑스 출신 헨리에타 마리아 왕비가 1625년 영국의 찰스 1세와 결혼하면서 영국 왕실로 넘어갔다. 찰스 1세의 소장품이던 이 그림은 1763년 경매에 처음 등장했다가 1900년께 영국의 그림 수집가 프레더릭 쿡 경(卿)이 구입할 때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그사이 예수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덧칠이 이뤄지면서 어느새 다빈치 본인이 아닌 제자들의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1958년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약 7만 원)에 팔린 것도 이 때문이다. 2005년에도 ‘짝퉁’ 그림으로서 판매됐다. 그러나 해당 그림은 2011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시회를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진품 판정을 받았다.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미술사 명예교수 마틴 캠프는 “다빈치의 제자나 추종자 중에서 아무도 그렇게 그린 사람이 없으며 새로 발견된 레오나르도의 그림”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출처. 국제신문이든가?
2017년 11월 12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장이 있는 록펠러센터에 이른 아침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이 늘어섰다. 쌀쌀한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선 이유는 한 점의 작은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 ‘세상의 구원자(Salvator Mundi·살바토르 문디)’ >라는 제목의 예수 초상화다. 긴 관람객 행렬은 프리뷰 전시 기간 내내 이어졌다. 며칠 뒤 이 작품은 4억5000만달러(약 4850억원, 크리스티 뉴욕 이브닝 세일, 2017년 11월 15일)에 낙찰됐다. 아마도 꽤 한참 동안 이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이 이 그림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든 것일까?
첫째는 이 그림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년)의 작품이란 사실이다. 그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화가의 인지도다. 기왕이면 누구나 아는 대가의 작품을 수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인 다빈치의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 전 세계 미술관에 걸린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모나리자(Mona Lisa)’를 그린 화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유명한 화가의 완성작이 몇 점 되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해부도와 설계도 등 많은 양의 드로잉을 남겼지만 다빈치가 완성한 회화는 20점이 채 되지 않는다. 공사다망의 아이콘이라 할 정도로 그는 평생 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실험을 감행했다. 유기된 시체를 허가 없이 해부하다 경찰에 쫓기기 일쑤였고, 자신이 발명한 잠수복 때문에 사기꾼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넘치는 호기심과 왕성한 도전정신을 가진 그가 진득하게 그림에만 매진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시대 상황도 다빈치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예술의 꽃이 핀 르네상스 시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예술가와 장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모든 그림은 교황이나 귀족들 의뢰에 맞춰 그려졌는데 이들의 주문은 옷 색깔, 등장인물의 수, 배치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세부적이었다. 이처럼 의뢰자에게 일일이 간섭받는 창작 환경이 다빈치 같은 개성 넘치는 천재 예술가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이런 제약 역시 그로 하여금 그림에 전념하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다빈치에게 아주 특별한 예외가 바로 ‘모나리자’와 이 ‘살바토르 문디’다.
두 그림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다빈치가 수년에 걸쳐 남다른 노력 끝에 완성했다는 점이다. 어린애처럼 호기심 많고 싫증을 잘 내던 그는 한 작품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이 두 점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상하리만큼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흔적이 남아 있다.
두 점 모두 다빈치의 고향인 이탈리아가 아닌 타국에 남겨진 것 또한 공통점이다. 모나리자는 1503년경에 시작한 작품이지만 1517년경까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다빈치는 1516년부터 151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을 극진히 대우해준 프란시스 1세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으며 프랑스에서 일했다. 모나리자는 완성 당시 다빈치의 후원자이자 친우가 된 프란시스 1세의 손에 넘겨졌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프랑스 국왕의 소장품으로 전해지다가 훗날 국고로 귀속되면서 오늘날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게 된 것이다.
살바토르 문디 역시 프랑스 국왕 가족을 위해 그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625년 찰스 1세에게 시집을 간 마리아가 자신의 애장품으로 이 작품을 영국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이 작품이 찰스 1세 왕가의 소장품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1644년까지 이 작품은 마리아 여왕의 개인 침실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곧 화가 이름도 잊힌 채 여기저기를 떠도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영국 왕가 소유의 다빈치 작품이 어쩌다 헐값에 팔리는 처지가 됐을까?
1642년 시민전쟁이 발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마리아 여왕은 급하게 본가인 프랑스로 돌아간다. 애장품도 남겨둔 채로 말이다. 1649년, 찰스 1세는 참수형을 당하고 만다. 기록에 의하면 1651년 10월 23일에 살바토르 문디를 포함, 몰수된 왕가 소장품 판매가 이뤄졌다.
9년 후 찰스 2세가 다시 왕좌를 탈환하고 아버지의 소장품을 되찾아온다. 이때 살바토르 문디도 궁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다시 개인의 손으로 넘겨진다. 그가 애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작품을 선물로 준 것이다. 이후 18세기 말까지 이 여자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작품이 종적을 감추게 된다. 1900년 이 그림이 다시 세상에 등장했을 때는 미숙한 솜씨의 두터운 덧칠로 인해 다빈치의 섬세한 손길은 전부 가려진 채, 왕가 소장품이었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힌 상태였다. 호두나무 패널에 그려진 예수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나무의 손상을 메꾸는 과정에서 본래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덧칠이 돼 있었다. 구를 들고 있는 손바닥과 엄지손가락의 위치마저 누군가에 의해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은 다빈치의 제자나 추종자가 그린 그림 정도로 세상을 돌게 됐다. 그나마도 1958년 영국의 한 작은 경매회사에서 58파운드에 판매된 후 또다시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가 2005년 미국의 작은 경매회사에 다빈치의 모사품으로 출품되면서 다시 세상에 출현했다. 이를 눈여겨본 미국 재단이 미화 1만 달러도 되지 않는 헐값에 이 작품을 구매했다. 이때부터 이 그림은 자신의 명예를 되찾을 기회를 얻는다. 이 재단은 다빈치의 주요작을 소장한 런던내셔널미술관과 함께 진위 여부를 집요하게 조사했다. 또 권위 있는 복원 전문가들을 동원해 덧칠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6년여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드디어 2011년 복원을 마친 살바토르 문디가 다빈치의 이름으로 런던내셔널미술관 전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8세기 영국에서 사라진 후, 파괴된 것으로 여겨졌던 다빈치의 작품이 예수처럼 부활한 것이다. 전 세계 대중매체가 대대적으로 이 작품에 관해 보도했고, 전시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했다. 성공적인 미술관 전시 직후, 한 화상이 발 빠르게 이 작품을 7500만달러(약 800억원)에 재단으로부터 구입한 후 러시아 부호에게 1억2750만달러(약 1400억원)에 판매했다.
이 작품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건 이처럼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배경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그림 자체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이 더 크다. 다행히 머리카락의 일부, 옷의 주름, 투명한 구 등은 본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된 축도하는 손은 다빈치의 손길을 잘 보존하고 있다. 발전된 과학기술과 전문가들의 노력 덕분에 본 형상으로 대부분 복원된 그림은 다빈치의 특징인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놀라운 존재감을 되찾게 된 살바토르 문디는 관객에게 답 대신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다빈치만의 천재적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처럼 이 그림의 재발견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귀환을 축하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비싼 그림’이란 기록으로 누군가 걸맞은 대가를 치룬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6호 (2017.12.06~12.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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