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2017. 8. 28. 21:11책 · 펌글 · 자료/ 인물

 

 

 

버지니아 울프 (英)

1882. 1 - 1941. 3

대표작《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 의식의 흐름 기법을 시도한 작가로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던 빅토리아 시대에 당당히 문학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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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소설가로,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녀는 여성의 교육 및 사회 진출이 제한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남성
중심의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적, 경제적, 자아의 측면에서 여성의 독립을 주장했다. 또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탄생시키고 완성한 작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의 페미니즘적 메시지는 물론, 그녀의 명성 그 자체로 말미암아 여성의 지위에 대한, 특히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지위가 새로이 조명되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본명은 아델린 버지니아 스티븐이며, 1882년 1월 25일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 게이트 22번지에서 레슬리 스티븐과 줄리아 덕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저명한 문예 비평가로 《영국 인명사전》 및 잡지 〈콘힐〉의 편집장을 지냈다. 레슬리와 줄리아는 둘 다 재혼이었는데, 재혼할 당시 각자의 자녀들을 둔 상태였고, 두 사람 사이에서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10여 명의 대가족을 이루었다. 버지니아는 두 사람 사이의 셋째 아이였다.
어린 시절 버지니아는 부유한 환경에서 가정교사와 함께 공부하고,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를 이용하는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자랐다. 그러나 레슬리 스티븐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여서, 딸들은 최소한의 교육만 받고 현모양처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교육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지는 않았다. 남자 형제들이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버지니아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자신만의 지식 세계를 쌓아 올렸다.

보통 버지니아 울프라고 하면 예민하고 우울한 얼굴의 여류 작가, 헌신적인 남편을 저버리고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애를 마감한 작가를 떠올린다. 예민한 성격과 우울증은 아버지 쪽의 유전인 듯도 한데, 레슬리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두문불출했으며, 두 번째 아내 줄리아가 죽었을 때는 더욱 심각해져 딸들에 대한 집착으로까지 발전했다. 버지니아는 13세 때 헌신적이고 천사 같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애증 관계에 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두 번째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등 평생 정신질환으로 괴로워했다. 또한 어머니 사후 자전적인 고백에 따르면 유년 시절 의붓오빠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도 하는데, 이 사건과 아버지에게 억눌린 경험이 남성 혐오 증세와 후일의 동성애적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버지니아는 언니, 오빠와 함께 런던의 블룸즈버리로 이사했다. 1899년부터 오빠 토비를 중심으로 케임브리지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지적 토론을 하던 '한밤중의 모임'이 이곳에서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 그룹은 후일 '블룸즈버리 그룹'이라고 불린다. 버지니아는 이들을 접대하면서 그룹의 일원이 되어 미학,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토론했으며, 지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가디언〉 지와 〈타임스〉 지 등에 무명으로 서평을 실으면서 작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1912년에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평론가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다. 오빠 토비가 죽고 정서적으로 밀착 관계를 맺고 있던 언니 바네사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자 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레너드 울프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언니 바네사에게 보낸 편지에 '스물아홉 살이 되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작가도 아니다'라고 쓴 것을 보면 일종의 위기의식이 그녀를 위협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일반적인 부부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버지니아는 남녀 관계를 거부했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중요시 여겼다. 또 결혼 생활 내내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그럼에도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죽을 때까지 30여 년간 아내의 정신질환과 자살 기도 등을 감내하며 그녀를 보살폈고, 불편함 없이 작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버지니아의 작품들을 출간하는 등 헌신했다.


결혼한 이듬해 버지니아는 《출항》의 원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신경쇠약 증세와 건강 문제로 요양소에 들어갔고, 그곳에 있은 지 두 달 만에 자살을 기도했다. 1914년,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건강을 위해 리치먼드 교외로 이사하고 버지니아를 데리고 왔다. 이 집이 호가스 하우스이다. 이곳에서 레너드는 1917년 버지니아의 기분 전환을 위해 인쇄기를 사서 작게 출판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호가스 출판사이다. 이후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들을 비롯해 캐서린 맨스필드, T. S. 엘리엇 등 유수의 작품들을 출간하면서 호가스 출판사는 오늘날 영국의 저명한 출판사 중 하나가 되었다.


1915년, 버지니아 울프의 첫 작품 《출항》이 출간되었다. 《출항》을 쓰기 시작한 지 9년 만이었다. 1919년에는 두 번째 작품 《밤과 낮》이 출간되었다. 이 두 작품은 일반적인 소설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때까지도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소설을 쓰는 방식을 계속 모색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점차 실험적인 기법의 소설들을 습작했고, 1919년에는 자신의 소설실험에 대한 주의가 담긴 문학 비평 에세이 《현대소설론》을 펴내면서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이론 및 울프의 비평 원칙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한다.


1922년에는 호가스 출판사에서 《제이콥의 방》을 펴냈다. 버지니아 울프를 유명하게 만든 실험적 소설의 첫 작품으로, 형식과 내용 모두 기존 소설 작품에서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소설이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통해 대도시의 원자화된 인간들의 생활과 존재, 일상의 덧없음을 그리고 있다. 이런 독특한 기법은 1925년에 출간된 《댈러웨이 부인》에서 완숙의 경지에 이른다. 그녀는 1924년에 출간된 비평서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에서는 새로운 실험적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논하는 한편, '모더니즘 수법을 구사하여 여성적 가치관을 보이겠다'라는 페미니즘 문학 노선을 확립했는데, 《댈러웨이 부인》은 이에 대한 실행인 셈이라 할 수 있다. 《댈러웨이 부인》이 비평가와 대중을 모두 사로잡으면서 울프는 작가로서 명성을 확립했고, 특히 페미니즘 운동가로서 목소리를 많이 내게 되었다. 1929년 출간된 《자기만의 방》은 케임브리지 대학 뉴넘 칼리지에서 했던 강연을 토대로 한 에세이로, 역사적으로 여성을 배제해 온 남성 중심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여성이 독립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을 역설하고 있다. 이후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꾸준히 여성의 직업이나 독립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강연들을 했다.


1927년에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시간과 진실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제시한 《등대로》를 발표하면서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28년에는 이 기법을 보다 발전시킨 《올랜도》를 발표했는데, 장난삼아 쓴 것이라고 한다. 1931년에 출간된 《파도》는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까운 작품으로, 이기적인 자아 때문에 이타적인 이상의 세계가 붕괴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자아를 탈피함으로써 삶의 덧없음을 초월해 나갈 수 있다는 그녀의 사상이 담겨 있다.


1937년에는 《세월》, 1938년에는 《3기니》를 출간했다. 특히 《3기니》는 《자기만의 방》과 함께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생전에도 작가, 여성운동가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으나 그녀 자신의 개인적 삶은 힘겨웠다. 예민한 성격에 평생 불안 증세와 신경쇠약에 시달렸는데, 여기에는 남편의 끝없는 사랑과 헌신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1941년 2월 마지막 작품 《막간》을 탈고한 후 우울증이 심해진 버지니아는 3월 28일 남편에게 편지를 한 통 써 두고 산책을 나갔다.

"여보, 나는 내가 다시 미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우리가 또다시 그러한 지독한 시간을 극복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당신이었을 겁니다. 당신의 호의에 대한 확신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이 나를 떠났습니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두 사람도 우리들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울프는 우즈 강에 투신해 자살했다.

 

 

 

[Daum백과] 버지니아 울프 – 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이한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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