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

2018. 4. 9. 20:19책 · 펌글 · 자료/ 인물

 

 

 

 

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

2017. 7. 19. 혜곡 최순우 기념관 엮음.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를 널리 알린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혜곡 최순우(1916~1984) 전 국립박물관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혜곡 선생과 인연을 맺은 지인들과 후학 33명이 선생에 대한 추억과 경험을 다양한 형식으로 작성한 글 35편을 오는 글모음 책이다.

 

 

 

 

 

목차

 

 

여는 글


최순우, 최순우 옛집 - 김홍남 (9대 국립중앙발물관장)

 

성북동 한옥은 120평 대지, 경기도 양식의 '튼 미음'자 한옥이다. 이 집의 백미는 뒤뜰이다. 작은 사랑방이 딸린 본채의 큰 방 창틀을 통해 내다보면 뒤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소나무, 키 작은 대나무, 산수유, 자목련들이 여기저기 갖다놓은 석물들과 어우러져 있어 그 사이를 소요하며 작지만 아담한 정원을 만끽할 수 있다.

 

"진정한 건축이란 우리의 생각을 담는 것, 그래서 후대의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 문화가 되고 문화를 이어주는 것..... 촉감과 시각과 이야기로 어루만지게 되는 집, 대화가 가능한 집" - 『세상에서 가장 큰 집』(최순우유고집)

 


혜곡 선생의 그날 - 정양모 (6대 국립중앙발물관장)


우리 가슴에 영원히

 
혜곡 선생과 검정 양말 - 지건길 (7대 국립중앙발물관장)
따뜻한 인간미 - 이건무 (8대 국립중앙발물관장. 제4대 문화재청장)
우리 문화의 정수 -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멋모르고 만난 그분 - 이성낙 (의사. 미술사학 박사)
만남과 가르침 그리고 인간적인 - 박영규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박물관원들의 아버지 - 이준구 (女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역임) 
두터운 은혜 - 이형구 (선문대 교수, 동양고고학연구소) 
비 오는데... 빈대떡이나 먹으러 갈까 - 나선화 (8대 문화재청장)
박물관인, 혜곡 최순우 선생 - 이원복 (부산박물관장)

 

 

한국 도자사 연구의 대부 정양모, 불교미술 및 진경산수 연구의 최완수, 불교 조각사의 강우방, 중앙아시아 미술사연구의 권영필, 문양사의 임영주, 목공예의 박영규, ……

 

 


그의 길을 따라 걸으며


최순우 선생의 두 눈 - 김수근 (건축가)
혜곡 최순우 그리운 정분 -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
부드럽고 멋스러운 그윽한 예술적인 향기 - 전영우 (간송미술괸장)
한 송도인의 문화재 사랑 - 윤장섭 (성보화학 · 성보문화재단 · 호림박물관 설립.) 
고문화 크게 펼치신 혜곡 최순우 관장 - 유상옥(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제9대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
우리 미술에 대한 기대 - 이구열 (미술기자. 미술평론가.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


한국미의 샘터


혜곡 최순우 선생의 미적 삶과 한국미론 - 권영필 (미술사학자)

 

 

1. 혜곡의 초기 논저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는것은 素朴美論이다. "한국 美의 전통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회화보다는 조각이, 조각보다는 건축이, 건축보다는 공예작품이 한층 성숙된 우리 美의 전통을 보여 주었으며, 이 공예작품 중에서도 조선조의 목공예품과 더불어 조선의 자기는 정말 착실하고 의젓하며 또 소박하게 아름답던 조선의 마음씨 그대로 였던 것"이라 정의한다.

한국의 미를 공예에 비중을 두어 풀어낸 것은 야나기 무시;요네 이래의 시대 미학의 경향으로 인식되며, 한편 民衆美論에의 경도를 의미한다 하겠다.

 

2. "백자의 흰 빛깔과 공예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라면서 "달항아리으 무심스러운 아름다움과 어리숭하게 생긴 둥근 맛"이 돋보인다 하였다. 또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신선하게 성공적으로 표현된 것이 조선시대 초기의 분청사기"라고 전제하고, "잘생긴 분청사기는 때로 무지한 듯하면서도 양식이 은근하게 숨을 쉬고 있는 듯 싶은 매력이 있으며, 조략한 유태와 지나친 치기 같은 것이 일면에서 결점이 될 수 있지만, 무아의 경지와 같은 禪美, 또는 생동하는 서민적인 의지를 느끼게 한다."

 

3. 한국 도자기와 목공예의 특징을 '단순과 질박미'로 압축했다. 특히 목공예는 재료의 속성을 가려서, 있으면 있는 그대로 적절하게 이용한다는 소위 '적재적소주의'가 지배하고 있음을 특질로 내세웠다. 건축도 실질미와 단순미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회루를 예를 들어, "째째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라고 극찬한다.

 

4. 최순우의 미론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 그 색채나 의장이 담소하고 순정적이며 아첨이 없다. ㉡ 그다지 끈덕지지도 기름지지도 않으며 그다지 나약하지도 거만스럽지도 않다. ㉢ 표현이 정력적이라기 보다는 온전 素直하고, 호들갑스럽다기 보다는 은근해서 꾸밈새가 적다.

 

5. 「한국의풍아(風雅)에 대하여」- 진리, 풍아, 미를 같은 위상에 놓고 있다고 할 때, 풍아를 善의 경지로 해석한 것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이러한 점은 "아름다움이야말로 한국미의 본바닥을 흐르고 있는 善과 美의 음률"이라고 한 그의 논저와도 통한다. ( …… )

 

 


최순우 선생 영전에 바치는 강연 - 강우방 (국립경주박물관장 역임) 
우리들의 영원한 국립박물관장 - 유홍준 (3대 문화재청장)

 

 

'세상에는 민요(民窯)의 탄생을 무지의 소치, 또는 빈곤의 소치, 실의의 소치로 돌리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욕심 없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잔재주 안 부리는 손길이 그대로 무지 속에 묻혀야만 될 것인가. 흥겹도록 운치가 얼룩져서 내배인, 그리고 땅에서 돋아난 버섯처럼 자연스러운 손길이 정말 무식하기만 한, 조방하기만 한 무딘 손의 소치이기만 할 것인가.

나는 믿고 싶다. 도공들은 만드는 즐거움에 살고 있다고, 무어라고 조리 있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릇을 빚어내는 즐거움이 바로 그 아름다움을 보는 마음이라고. 이제 조선의 아름다움은 이미 5백 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해묵은 그릇들은 오늘도 아예 늙을 줄을 모르고 있다.

 


실사구시의 그 안목 -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 


따스한 숨결


말 없는 격려 - 김희진 (1934~ . 중요무형문화재 매듭장) 
참 공예의 모습 - 김익영 (1935~ . 도예가)

 

 

급월당(汲月堂)은 당신의 스승 고유섭의 아호인데, 좋은 아호는 대물림하는 것을 옛사람의 풍류로 알았던 최순우가 나에게는 급월당으로 김수근 건축가에겐 급월루라는 아호 겸 당호를 전해 주었다.

"원숭이가 물을 마시러 못가에 왔다가 못에 비친 달이 하도 탐스러워서 손으로 떠내려 했으나 달이 떠지지 않아서 못의 물을 다 퍼내어(汲)도 달은 못에 남아 있었다"는 고사였다. 학문이란 못에 비친 달과 같아서 생명이 다하도록 노력해도 이룩하기 어렵다는, 다시 말해서 학문에 대한 외경에서 선생이 그 아호를 지은 것이라고.

 

 


내 반복이 되어준 혜곡 - 윤광조 222
매화나무를 심고 - 노경조 231
선비의 풍아 - 송영방 236
나의 문화재사진 입문기 - 한석홍 242


조용한 아름다움


백악을 맴돈 최순우의 서울생활 - 이경성 (1919~2009.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 9-11대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평론가) 
성북동, 그 뒤뜰의 매향-최순우 선생 단상 - 이흥우 (1927-2003 언론인) 
최순우 옛집과 산골 소년 - 한선학  (僧 . 최순우집 하숙)
백자 원과 나뭇가지의 선 - 김은영  (간송 며느리 / 김광균 딸)

 

 

최순우 선생의 이름은 희순(熙淳)이셨는데 시아버님인 간송께서 아들의 항렬인 비 '우(雨)'자를 순에 붙여 순우라는 필명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가족처럼 생각하셨으니 돌림자를 붙여주신 것 같다.

 

 


고택 현판에 숨은 뜻은 - 우찬규 (1957~ . 학고재 대표)

 

 

강산의 정취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아

비가 오든 개이든 하나같이 신기하다네

문 닫고 시구 찾는 건 시 짓는 법이 아니지

길을 나서면 저절로 시가 되는 것을

 

- 宋 양만리, 「하횡산탄두망금화산」

 


최순우 씨 - 김광균 

 

 

최순우 씨*

 

갑자년섣달 그믐날

성북동에는 아침부터 눈이 나린다.

장미와 촛불을 끄고 나리는 눈을 내어다보며

얼마 전에 돌아가신 최순우씨를 생각합니다.

 

나는 산밑의 동네에 살고 최순우씨는 아래동네에 살아

아침에 출근길에 만나면

최씨는 미풍같이 웃으며

삼청터널을 지나 우리는 헤어졌다.

 

최순우씨와 나는 조용히 술을 마시며

이따금 함께 자란 고향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 주위는 그와 함께 산다는 것으로

조금은 평화로웁고

그는 우리 등뒤에 늘 원광을 띠고 있었다.

어느 해 그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더니 눈발 날리던

섣달 보름날 황혼에 쇠잔한 육체에 켜져 있는 마지막

촛불이 꺼졌다.

 

廣州땅 공원묘지 산비탈에

그의 새로운 무덤 위에도 이 눈은 나리겠지.

죽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엔 어두운 강물이 있어

서로의 소식이 끊어진 채 세월이 그 위로 흘러간다.

새봄이 와서 그의 무덤가에 잔디가 돋아나면

나도 몇 친구와 함께 성묘를 가야지.

그런 생각에 잠겨 마당의 눈발을 내어다 본다.

나리는 눈은 석등 우에 쌓이고

그 너머 소나무 우에 까치가 서너마리 우짖고 있다.

 

 


편집의 글


선량하고 조용한 아름다움 - 송지영·심지혜 286
한국 미학의 전령사 최순우를 말한다 - 김형국 288


혜곡 최순우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