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1. 18:43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僞善덩어리 조선 선비의 삶!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는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가족, 벗,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 44편을 담았다. 이를 통해 유학과 경전에 익숙한 지엄하고 체면을 중시했던 선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돌아가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선비들의 절절한 슬픔 및 눈물, 아픔을 만날 수 있다
2015.04.24
프롤로그
_ 소리 없는 통곡, 선비들의 곡진하고 절절한 문장과 마주하다
1장 참척(慘慽) _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네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 정약용 | 막내아들 농아를 위한 추도문
아비와 딸의 지극한 정이 여기서 그친단 말이냐
- 신대우 | 둘째 딸의 1주기에 쓴 제문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서 돌아오지 않느냐
- 임윤지당 |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바람은 요란하게 문풍지를 흔드는데
- 이하곤 | 맏딸 봉혜의 무덤을 다시 찾으며
눈물은 수저에 흘러내리고
- 윤선도 | 막둥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다니
- 조 익 | 딸의 장사를 지내며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 조위한 | 아들 의의 죽음에 통곡하며
나 죽거든 너와 한 기슭에 누우련다
- 이산해 | 아들을 곡하다
말보다 눈물이 앞서니
- 정 철 | 딸의 죽음을 전해 듣고
팔공산 동쪽에 아이를 묻고
- 양희지 | 어린 아들 영대를 묻고
봄바람에 떨군 눈물 적삼에 가득하네
- 강희맹 | 아들 인손의 죽음을 애도하며
2장 고분지통(鼓盆之痛) _ 아내여, 아내여
가슴이 무너지고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 김정희 | 아내 예안 이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지니
- 심노숭 | 아내 완산 이씨 영전에 바치는 제문
정녕 슬픈 날
- 혜경궁 홍씨 | 남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
그대 목소리 아직 들려오는 것 같고
- 안정복 | 아내 숙인 성씨 영전에 바치는 제문
뜻은 무궁하나 말로는 다하지 못하고
- 송시열 | 아내 이씨의 부음을 전해 듣고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났으면
- 이시발 | 측실 이씨 영전에 바치는 제문
서러움에 눈물만 줄줄 흐르누나
- 허 균 | 망처 숙부인 김씨 제문과 행장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
권문해 | 아내 현풍 곽씨 영전에 올린 제문
어리고 철없는 두 딸은 누가 돌보며
- 김종직 | 아내 숙인 조씨 영전에 바치는 제문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 강희맹 | 아내 순흥 안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만 줄줄 흐를 뿐
- 변계량 | 아내 오씨를 위한 제문
3장 할반지통(割半之痛) _ 형제자매의 죽음을 곡하며
목이 메어 오열이 터지네
- 정약용 | 둘째 형 약전을 회상하며
어버이 사모하는 정이 더욱 간절하여
- 정 조 |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
너는 이제 영원히 잠들었으니
- 이덕무 | 손아래 누이 서처의 죽음을 슬퍼하며
검푸른 먼 산은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 박지원 | 맏누이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
하늘이여, 어찌 이리도 가혹하십니까
- 임윤지당 | 오빠 임성주의 부음을 전해듣고
한 번 가서는 어찌 돌아올 줄 모르는가
- 김창협 | 동생 탁이의 재기일에 지은 묘지명
눈물이 앞을 가려 글씨를 쓸 수 없고
- 김수항 | 막냇누이 숙인 김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덧없는 인생이 꿈같기도 하여
- 허 목 | 종형 허후의 죽음을 슬퍼하며
무슨 죄로 나를 외롭게 만듭니까
- 신 흠 | 맏누이 임씨 부인을 위한 제문
눈물이 마르지 않네
- 기대승 | 죽은 동생을 위한 만장
떠도는 인생은 한정이 있으나 회포는 끝이 없어
- 김일손 | 둘째형 기손의 죽음에 부쳐
4장 백아절현(伯牙絶絃) _ 벗과 스승을 잃고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 이재성 | 연암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대도 아마 저승에서 눈물 흘릴 것이다
- 이덕무 | 서사화의 죽음을 애도하며
관을 만지고 울면서 이르노라
- 박지원 | 덕보 홍대용의 삶을 돌아보며
거듭 슬픔만 더하게 되니
- 홍대용 | 주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남기신 간찰을 어루만지며 울자니
- 안정복 | 스승 성호 이익의 죽음을 슬퍼하며
좋은 벗을 잃은 외로움이 앞서
- 이 익 | 윤두서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만 봇물처럼 흐를 뿐
- 송시열 | 종형 송준길의 죽음에 곡하며
그대는 사라지고 밤만 깊어가네
- 신 흠 | 이영흥을 기리며
목이 메어 곡소리조차 내기 어렵고
- 정 구 | 김우옹의 장사를 지내며
다시는 인간사에 뜻이 없으니
- 정 철 | 율곡 이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착한 자는 속환된다면 내 가서 그대를 불러오겠네
- 김일손 | 조원의 죽음을 슬퍼하며
원문
원저자 소개
참조문헌
마누라나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뭔 조문을 쓸 맘이 나나?
1
두터운 정의(情誼)는 차마 글로 쓸 수 없고, 아프고 쓸쓸한 말은 혹시라도 너의 마음을 근심케 할까 두렵다.
너의 사적과 행실 중에 한두 가지 기록해 둘만한 것은 반드시 글로 써서 토광 남쪽에 묻을 것이다.
아아, 스무 해를 아비가 되고 딸이 되었던 지극한 정이 여기서 그친단 말이냐. 슬프고 또 슬프다.
상향.
- 신대우(순조때 승지 벼슬한 사람), 둘째 딸의 1주기를 맞아 祭亡女文
2
養子 신재준의 갑작스런 주금에 슬픈 심사를 적은 것으로 삼년상이 끝나던 1789년에 지어 삭망제에 올린 것이다.
원제는 <제망아재준문(祭亡兒在竣文)>이다.
네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서 한 해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느냐.
내 나이 마흔 넘어 비로소 너를 아들로 삼았으나,
네가 처음 나면서부터 너를 안아 길러 네가 일찌기 나를 어버이로 생각하지 않은 일이 없었고,
나 또한 너를 자식처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네가 젖은 떼면서 내 손에서 먹고 나와 함께 잤다.
네가 가지고 놀던 노리개 등속이 아직도 모두 내게 남아 있다.
네가 놀던 방도 내가 거처하는 방이 아니었더냐.
나는 홀어미의 몸으로 너를 맏고 살아왔다.
............
............
슬프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 어느덧 3년이 되고 보니
너의 궤연(혼백 신주를 모셔두는 곳) 또한 걷게 되고 사당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비록 곡을 하여 가슴속 슬픈 한을 풀어보려 하여도 선왕의 예에 마련된 한도가 있으니 어찌 할 수 있으랴.
............
............
네 능히 자주 꿈에 나타나 조금이라도 이 늙은 어미의 슬프고 원통허여 애달픈 심정을 만분의 일이라도 풀어다오.
슬프고 슬프도다. 어서 와서 흠향하라.
-임윤지당(女), 아들 재준의 죽음을 슬퍼하며
3
아아 슬프다.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네가 죽었을 때는 세속의 금기 때문에 묻어주지 못하고,
올해 한식날에야 관을 바꾸어 네 할머니 무덤 옆에 깊이 묻어주었단다.
인석이도 너보다 며칠 뒤에 죽었단다.
너는 좌우의 봉석이, 인석이와 함께 할머니를 따를 것이니 혼백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 봄바람이 한 번 스치면 만물은 다시 살아나는데,
너의 혼백은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이 아픔에 어디 끝이 있으리오.
감정이 격해져 말에 차례가 없지만 이 모두는 아비의 간장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를 안다면 지하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슬프다. 아아, 슬프구나.
- 이하곤, 맞딸 봉혜의 무덤을 다시 찾으며
4
미아(尾兒)는 나의 첩이 낳은 사내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매우 영특해서 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기묘년 2월, 영덕 유배지에서 사면을 받고 돌아오던 중 20일 아침 경주 요양원에 이르렀을 때,
미아가 마마를 앓다가 이 달 초하루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너무 아파 어떻게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에 말 위애서 다음의 시를 지어 슬픔을 토로하였다.
귀천의 구분은 다르다해도
부자의 정이야 어찌 다르랴
내 나이 마흔여섯에
슬하에 아이 두어서 기뻤나니
생김새가 참으로 내 자식이요
타고난 지능 또한 비범하였어아
겨우 서너 살이 되었을 적에
행동거지가 내 뜻에 맞았나니
종이와 붓을 좋아할 줄 알고
배나 밤은 삼갈 줄 알았으며
이따금 간단히 가르쳐주면
얼른 알아듣고 잘도 기억했지
..................
..................
..................
지금 또 네가 나를 저버리니
인생이 잠깐임을 더욱 느끼겠다
길고 짧음은 실로 명이 있는 것
생을 해친다면 도를 모르는 것
어찌 부질없이 슬퍼만 하겠는가
이견(理遣)할 수 있기만을 내가 바라노라
* 이견 - 이성적으로 사리를 살펴 이해함으로써 슬픈 감정을 해소하는 것.
- 윤선도, 막둥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悼尾兒)
5
조선중기 문신 조익은 병자호란 당시 예조판서로 있었는데 종묘를 강화도로 옮긴 후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려다가 여든의 아버지가 사라지자 며칠 동안 아버지를 찾느라 임금을 호종하지 못했다. 이에 병자호란 후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를 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효심에서 비롯된 일이고 아버지를 무사히 강화도로 도피시킨 후 경기지역의 패잔병들을 모아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있는 적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참작되어 그해 12월에 석방되었다.
아, 슬프다. 내가 너를 낳고 기를 때 소망은 단 한가지였다.
네가 아름다운 배필에게 시집을 가서 두 내외가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화목하게 살고,
많은 자손을 낳아 기르며 세상의 온갖 복을 다 누리며 살기를 바랐다.
그런 내 염원과도 같이 너는 좋은 남편을 만났고 집안도 화목하였으며 잘생기고 영리한 아이도 낳았다.
그래서 나는 내 유일한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네가 사랑하던 두 아이가 연달아 죽고, 수개월 후 남쪽으로 갔던 네 남편마져 죽고 말았다.
내가 바란 것은 너는 꼭 죽지 말고 네 뱃속의 아이를 낳은 뒤 그 아비의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해 9월 다행히 너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네 어미와 나는 물론 너 역시 매우 기뻐하며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애가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네가 죽고 네가 죽은 지 한 달 만에 그 아이 또한 죽고 말았다.
너와 네 가족이 모두 안개나 연기처럼 사라져버려 다시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구나.
세상에 어찌 이렇게 참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아아, 슬프고 애달프다.
- 조 익, 딸의 장사를 지내며 (祭女文)
6
발자국 소리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지고
인기척이 있는 듯하여 내 아이인가 했더니
일어나보니 쓸쓸할 뿐 아무도 없어
달빛만 뜰에 가득하고 산새 구슬피 우네
- 이산해, 「밤에 일어나(夜起)」
7
아, 절통하고 슬프다!
이 해 팔월 열엿새에 팔공산의 동쪽 기슭에 남향으로 아이를 묻으니,
이 아이 성은 양(楊)씨이고, 아버지는 이름이 희지(熙止)로 홍문관 교리인데
사천 현령으로 자청하여 임지에 있다가 어떤 일로 인해 체직되었으며,
어머니는 이씨다.
- 양희지, 어린 아들 영대를 묻고
8
자식이 죽었는데, 리듬 갖춰서 노래까지 한 선비놈도 있군요.
조선 중기 문장가라는 강희맹이란 작자입니다.
아들 두니 아들 두니 나이가 열세 살이라
육친이 안고 끌며 선남이라 일컬었지
스승 따라 글을 읽고 의리를 깨달으니
.............
어제는 아이들이 동각에 가득 모여
앞 다투어 호명하며 해학 잘도 하더니만
.............
아이 살고 내가 죽으면 내가 죽지 않은지라
가문 명성 안 끊겨서 오래도록 빛나지만
내가 살고 아이 죽으면 내가 바로 죽은 것이니
형영만 남아서 쓰러질 뻔하였다네
............
싹이나서 꽃 못 핀 게 천명이 아니라고
소동파의 그 말이 옛날부터 전래됐지
............
아, 일곱 번 노래하기 이 무슨 인연인고
천명을 어이하랴, 천명을 어이하랴.
- 강희맹, 아들 인손의 죽음을 애도하며
9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된 지 3년째 되던 1842년 11월 13일 아내 예안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갑작스런 부음을 받는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자나 깨나 지아비를 위해 찬물(반찬거리)을 보내던 지극정성한 아내였다. 추사는 그런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자주 보내곤 했다.
이번에 보내온 찬물은 숫자대로 받았습니다.
민어는 약간 머리가 상한 곳이 있었으나 못 먹게 되지는 아니하여 병든 입에 조금 개위(開胃)가 되었고,
어란(魚卵)도 성하게 와서 쾌히 입맛이 붙으오니 다행입니다.
여기서는 좋은 곶감을 얻기가 쉽지 않을 듯하니
배편에 4, 5접 보내주십시오.
이렇게 수도 없이 보냈던 편지를 다시는 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하 절망과 슬픔 속에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이라는 글과 가슴에 사무치는 제문을 남긴다.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찬리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10
흔히 조선 최고의 로맨티스트로 효전 심노숭을 꼽는다.
그야 말로 그는 애처가요, 그는 아내를 위해 시를 짓고, 화공을 불러 아내의 초상화를 그릴만큼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젊어서 죽고만다.
이에 벼슬에 나가지도 못해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그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에 빠지게 된다.
이에 한 달이 지나도록 잠을 이룰 수 없자 급기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짓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 눈물의 근원을 밝힌 누원이 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또 "죽으면 알지 못할 텐데 뭐 하러 계속 시를 써대느냐"는 벗들의 충고에
"죽으면 아무 것도 모르다는 말은 내가 정녕 견딜 수 없는 말이다"며 항변하기도 했다.
그의 망실문(亡室文)은 아내 완산 이씨가 삼청동 집에서 죽었음을 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여기서 아내의 목소리와 얼굴이 저점 멀어지는 것을 슬퍼하고,
꿈속에서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음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유세차 임자 5월 27일 망실유인 완산 이씨가 집에서 죽으니 나는 그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짐을 슬퍼한다.
이제 꿈에서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 애통한 마음에 한을 새기고 뱃속에 아픔을 담아두노라.
그대 죽음이 진실로 슬플진대 살아 있은들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
멀고 아득한 시간들이 한바탕 꿈이로다. 그대 먼저 먼곳을 구경하오 . ‥(중략)‥
당신의 성품은 참을성이 강했고 관상은 후덕했으며 기운 역시 강건하였네. 그래서 병을 이겨내리라 여겼었는데,
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떠나고 말았네.
그것이 다 내 마음이 어질지 못해서 일어난 일 같아서 슬프기만 하네.
당신의 병이 어찌하여 생겼는지 그 원인을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듣기 싫어할 것이네.
가난 탓에 시래깃국조차 배부르게 먹어본 적이 없는 당신에게 인삼이나 복령 같은 약재는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춥고 눈 내리던 겨울, 밤새 굶주림에 아이는 울어댔지만 나올 것이 없었네.
그 아이를 강보에 감싸 따뜻하게 해주고서 밝게 웃으며 당신은 말했네.
"나중에 오늘의 이 일이 추억이 되어 웃으며 얘기 할 날이 다가올 테지요."
하지만 전생의 업보가 있어 받아야 할 벌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병이 고질이 되었네.
당신은 어린 아이를 더 걱정하고서 제수씨에게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었네.
하지만 아청(아이의 이름)이 당신보다 앞서 저승으로 갔다고 말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아이를 고복한 뒤 그날 새벽에 처제가 꿈을 꾸었다네.
당신은 곱게 단장한 옷을 입은 채 서 있고 아이는 당신 곁에 서 놀고 있어서 그 뒤를 따라 가려고 하자
뒤를 돌아다보며 전송을 하였다 하네.
동기감응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오히려 가슴의 슬픔이 더 해서 간장이 다 녹는 것만 같았네.
아직 어린 송이는 영문을 모르기 때문에 통곡할 줄을 모르네.
심노숭은 죽은 아내에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 넷을 낳아 일찌감치 셋을 잃고 하나만 남았다는 것,
아이가 아내를 빼 닮은 것을 아내가 기뻐하였다는 사실, 아이가 영특해서 가르쳐주는 대로 다 따라 배웠다는 것,
그리고 아내가 병이 심해진 후로는 멀리 나가지 못하고 곁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 한 말을 기억해낸다.
"공연히 지아비 잠 깨우지 마세요." 이 얼마나 지극하고 가슴 절절한 사랑인가.
특히 임종하기 전 말하기가 힘에 부치고 혀가 이미 굳어져 갈 때 했다는 말은 듣는 이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가군께 인사를 못 드리니 죽어가면서도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그의 가슴 절절한 망실가는 계속된다.
파주에 새 집을 짓고 살고자 했던 오랜 계획을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네.
사묘를 봉안하고, 어머니를 마저 모셔놓은 뒤,
나는 남아 있다가 결국 관속에 잠든 당신과 더불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네.
당신을 보내고 난 뒤 , 새벽에 잠이 깨면 배개에는 온갖 상념들이 줄을 이어 찾아드네.
어디 그것 뿐인가. 불도 켜지 않은 가운데 낙숫물 소리만 들려오네.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니 문득 한 소식을 한 스님과도 같네.
진실로 슬퍼할 만한 것이 죽음이지만 살아있다고 한들 도대체 어떠한 즐거움이 있을 것 인가.
한 세상 사는 것이 유장한 세월 속에 한바탕 꿈과 같으니. 당신 먼저 멀고 먼 그곳을 구경하기 바라네.
지난해의 오늘을 회상하니 가슴이 아릿하네.
남산 아래 있던 집에서 쟁반에는 떡이 가득 담기고 마루위엔 웃음소리 가득했네.
어린아이는 찹쌀떡을 내어놓고, 당신은 나를 위해 술 한 잔을 따라주었네.
술에취한 나는 시를 읊었고, 그러다 보니 밤이 다 지나갔네.
덩그렇게 큰 집에 혼자서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데도 나는 길 가는 나그네 같네.
당신 혼령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이런 나를 내려다보고 깊이 슬퍼할 것이네.
지금도 피어 있는 꽃들과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위에 선 매미들이 울어대네.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땅에는 저렇듯 푸른 강물이 흐르네.
임이여, 부디 이곳으로 임하게. 상향.
- 심노숭, 아내 완산 이씨 영전에 바치는 제문
이거 하나 제대로 썼구만.
11
연암은 생전 많은 사람들의 제문과 묘지명을 지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도 짓지 않았다.
연암은 자신을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광달하기는 장자와 같고, 불공하기는 유하혜와 같고,
술을 마시는 것은 유령과 같고, 책을 쓰는 것은 양웅과 같고,
스스로 견주기는 제갈량과 같다.”
박지원이 쓴 홍대용의 묘지명도 진실되군요.
홍대용의 삶의 발자취를 순차적으로 서술한 뒤, 살아생전 중국 학자들과 교류했던 내용과 후일담을 담담히 써 내려간 후에
'그 해 12월 8일 청주 모 땅에 장사를 지냈다'로 끝냅니다.
'이런 저런 내 얘기들 > 내 얘기.. 셋'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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