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25. 10:00ㆍ여행/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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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기취리히 남서쪽, 루체른 호의 북서부로부터 발원하는 로이스 강을 끼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8세기에 세워진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장크트루시아리아 수도원에서 유래했다. 아마도 근처의 어촌이 시로 발달하여 1178년경에 자치시로 인가를 받은 것 같은데, 주민은 원래 그 수도원의 농노들이었다. 1230년경에 생고타르 수로가 개통된 후, 라인 강 상류와 롬바르디 지방 사이의 중요한 교역 중심지로 발달했다.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독일의 루돌프 1세)는 독립을 원했던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1291년 수도원과 시를 사들였다.
루돌프의 뒤를 이은 계승자들의 치하에서 발생한 정치적 불안 때문에 이곳은 1291년 우리 · 슈비츠 ·운터발덴 주들이 결성한 동맹에 1332년 가입했다. 이 동맹은 합스부르크 군대와 싸운 젬파흐 전투(1386) 후 독립을 얻었다. 1415년에 이르러 루체른 시는 조약, 무력 점령, 또는 매입에 의해 현재 루체른 주의 영토 대부분을 얻었다.
이곳은 종교개혁 때 가톨릭교를 따르는 주들의 주축이었고, 1579~1874년에는 로마 교황 대사의 주재지였다. 1798년에 이 시의 귀족 정권은 나폴레옹군의 맹렬한 공격 때문에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헬베티아 공화국의 수도였다가 1803년 주도의 지위를 되찾았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곳 중의 하나로, 로이스 강에 의해 2부분으로 나뉘며 강 위로 7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다리보다 더 오래된 저수탑의 곁에 있는 카펠 다리(1333)와 슈프로이어 다리(1407)는 가장 오래된 2개의 다리로, 지붕이 덮여 있고 17세기 패널화로 장식되어 있다. 강 오른쪽 언덕에 있는 옛 도시는 잘 보존된 14세기 도시 성벽으로 유명하다. 이 성벽 안에는 9개의 저수탑, 예스럽고 멋있는 골목길들, 중세·르네상스·바로크 풍의 집들이 있는 광장 등이 있다.
중요한 건물로는 역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시청(1602~06), 암린하우스(1617),장크트페터 교회(1178, 1750 개조), 8세기 대성당이자 장크트레오데거 대교회인 호프트키르헤(1633 이후 재건), 마리아힐프 교회(1676~81) 등이 있다. 호프트키르헤에는 성가대원들의 집, 토스카나 양식의 묘지, 2개의 탑(1504) 등이 있다. 그밖의 유적으로는 1792년 파리의 튀를리 궁전을 수호하다 전멸한 스위스 호위병들을 추도하는 베르텔 토르발드젠 작(作)의 〈루체른의 사자〉 기념비, 1872~75년 발굴된 빙하시대의 유적인 빙하 정원, 대규모의 스위스 교통박물관(1959), 우텐베르크 스위스 민속의상박물관 등이 있다.
강 왼쪽에는 주정부 건물인 레기룬크스게베우데(1557~64, 1577~1804 예수회대학), 로코코 양식의 성모실과 도서실이 있는 주립 고문서보관소(1729~31), 고전(古錢)·자연유물·헬베티아 소장품들을 갖춘 중앙박물관(1951), 생프라시스그자비에 예수회 교회(1667~77), 로코코 양식의 수랑(袖廊)이 있는 14세기 고딕식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교회, 시 자치 청사(1675), 새 시청(1913), 리처드 바그너 박물관(1933), 현대적 장크트안토뉘 예배당(1954), 화랑, 의사당(1932~33) 등이 있다.
여러 주립·시립 학교 외에도 중앙 스위스 고등학교, 스위스 가톨릭 종교음악학교, 중앙스위스기술대학, 스위스 제과학교, 스위스 호텔관리학교 등이 있다. 또한 주대법원· 상사재판소· 형사법원· 소년심리원· 연방보험법원 등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훌륭한 주위 경관, 온화한 기후, 철도 및 도로를 이용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점들 때문에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주요한 관광중심지가 되었다.
호수에서 운행되는 증기선이 산지의 여러 철도 및 공중 케이블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계 스포츠 요충지인 엥겔베르크와는 협궤 철로에 의해 직접 연결된다. 카지노, 해변시설이 있고, 노젓기 및 배타기 경기대회, 경마 및 장애물 경기, 매년 열리는 국제 음악제, 사순절 전의 전통적 축제 등의 행사가 열린다. 이곳의 상업과 산업은 대부분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주민은 독일어를 쓰며 대체로 로마 가톨릭교도들이다. 인구 59,496(2000).
루체른에 들어왔습니다.
그 유명한「빈사의 사자상」보러 갑니다.
19세기 초의 걸작품으로 유명한 "루체른의 사자"는 1792년 파리에서 영웅적인 전투를 하다 최후를 맞은 스위스 경비병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피 비린내 나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 일인 8월 10일 혁명의 폭풍은 튀러리(Tuileries) 왕궁을 덮쳤다. 스위스 용병 경비연대는 루이14세의 명령에 따라 무기를 버렸고 결과적으로 잔악한 폭도들에게 살육당하고 말았다. 사자는 언제나 용맹과 힘의 상징이었으며 작가에게는 최후까지 싸웠던 비극적인 사건의 형상화가 되었다. 창으로 심장을 꿰뚫렸음에도 사자는 아직도 부루봉 왕가의 문장인 백합꽃이 새겨진 방패를 앞발로 감싸고 있다. 기념물의 건립은 다른 연대의 전우들과 친구들의 기부금과, 특히 육군대령 칼 파이퍼(Pfyffer)의 주도로 이루어 졌다. 또 빈사의 사자(dying lion)를 상징물로 한것도 그의 착상이었다. 모델은 유명한 덴마크의 조각가 베르텔(Bertel)(1770-1844)의 작품이었으며 1820/21년 알호른(Alhorn)에 의해 바위에 조각되었다. 본래의 모델은 빙하의 정원(Glacier Garden)에 전시 되어 있다. 암벽의 벽감은 43 휘트, 사자는 30휘트 이다.
기념물 위의 암벽에 새겨진 라틴어의 내용은 "충성스럽고 용감한 스위스인 에게" 그 밑에는 튀러리를 사수하다 순직한 26명의 장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중국사람들 몰려갑니다.
한국관광객, 일본관광객, 중국관광객,, 딱 보면 표가 납니다. ^^
스위스 전통가옥 형태가 이렇답니다.
낚싯배입니다. 물고기가 많습니다.
배 타고 한 시간정도 돌아오는 것인데,
오스트리아「잘쯔감머굿」을 생각했었는데, 배 타고 보는 경치가 그보다 퍽 못합니다.
비추입니다.
물이 맑고, 티끌 하나 떠다니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먹어도 된다는군요.
저놈자식! 이 차거운 물에 개가 뛰어들게 훈련시키네!
바그너가 머물던 집이라네요.
튀어나온 섬 있지요? 호수 운항료를 거기서 뜯었다는군요.
희한하데요?
루체른 호수는 수온이 차서 수영을 못합니다.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몇 해 전에 경찰대 4학년생이 여기서 물에 빠져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는 유일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일부러 모래를 퍼와서 조성한 것인데, 온천수라도 솟아나나 봅니다.
루체른 뮤지엄입니다. 매년 세계적인 음악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가 다 온답니다.
이 건물은 음악회 말고도, 현대적 뮤지엄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꽤 유명한 호텔이 있고 카지노가 있습니다.
카펠교가 보이는군요.
Tadaaki Ohno - The Flower of Pat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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