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5. 19:32ㆍ산행기 & 국내여행
익산 왕궁리 5층석탑
저는 왕궁리 5층석탑이 젤 좋습니다.
탑에 대해서 아는 이들 중엔 기단이 작다고도 하는 모양인데,
거- 뭐- 보기 나름입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사실이 그렇기는 합니다만
뚝 떨어져서 보면 상관 없습니다.
가까이, 멀리, 중간, 모서리, 동서남북으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보십시요.
그럼, 가장 탑이 멋지게 보이는 데는 어디냐?
탑 뒤에 금당이 있었던 자리, 바로 불상이 놓여 있을 자리에서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직접 확인해보셈.^^*
왕궁리 5층석탑은 탑 자체도 좋지만,
일망무제로 확 트인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입니다.
다만, 오른편 앞쪽에 있는 짙푸른 잣나무(소나무)가 눈엣 가시더군요.
“그 나무 당장 베 버려라잉~~! ”
그나저나 왕궁리 발굴작업은 언제나 끝난답니까?
*
익산 미륵사지는 별볼일 없고,
(미륵사지석탑은 어느 하세월에 복원되는 거죠? 하는 걸 보니 답 안나옵디다.)
강경 가서 해물칼국수 먹었습니다. 여전히 손님들 넘치고 여전히 맛있습디다.
제가 옥녀봉을 올라가본 게 35년전? 37년전???
- 행시 합격한 선배가 옥녀봉 밑에 살아서 그때 축하해주러 갔었죠.
내려다 보니, 강경젓갈축제를 하더군요.
강경은 예전부터 교회가 많았답니다.
저 삐쭉삐쭉 솟은 교회들, 100년씩들 된 교회입니다.
저는 읽어보진 못했는데 ‥ 박범신 소설『소금』의 배경이 되었다는 집이라네요.
얼마 전까지도 사람이 살았었답니다.
앞이 훤히 트여서 전망은 참 좋은데 ‥ 겨울에 바람 들이칠 일이 문제겠습디다.
*
부여 장하리 3층석탑
요즘 들녘 나가보세요. 쥑입니다. 소름이 돋게 좋습니다.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네요.
저는 별루던데, 친구는 이 탑이 젤 좋답니다.
뭐, 美感이야 각기 다를 수도 있으니까.
고려 초기에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날렵하지요? 그런데 3층 탑신부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긴 탑 본 적이 있습니까?
친구의 얘기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동의할 수가 없겠더군요.
어떤 학자인지가 무지하게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상찬을 하더라는데,
역시 수긍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 언바란스이지 일탈의 미가 아닙니다.
그리고 돌 색깔이 다릅니다.
그 한 덩어리만 따로 노란 빛이 나잖습니까?
아니라구요? 제가 보기엔 절대로 같은 돌이 아닙니다.
복원할 때,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워다가 맞춘,
나무 기둥을 받쳤던 돌 같습니다.
*
임천 성흥산성 (加林城)
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은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와 장암면에 걸쳐 세워진 산성으로 백제 동성왕 23년인 501년에 세워진 산성이다. 이 지역의 이름이 가림군이었기 때문이다. 부소산성과 부여군(사비)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0km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백제 도성들(부여 및 공주)를 따라 흐르는 금강 하류 요충지로서, 금강 하류 일대를 관측할 수 있다. 이 성은 백제 시대에 확실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위직인 위사좌평이 이 성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 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성을 쌓은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성을 쌓은 후 동성왕이 이곳을 지키게 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동성왕을 죽였다고 하며, 무령왕이 이 반란을 진압했다.
성의 형태는 테뫼식 산성으로 산봉우리를 둘러싸 원형으로 성벽을 구축했다. 성벽 일부는 화강암을 쌓았지만, 동쪽 성벽 등 일부는 흙으로 쌓았다. 2008년 1월 현재까지 확인된 성의 둘레는1,500m이고, 성벽 높이는 3~4m에 달하는데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을 파내면서 석축 안쪽에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안쪽에는 호가 만들어졌다. 남문지는 성루나 성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초석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약 4m 넓이다.
성내에는 우물 3개와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초석 등이 남아 있으며, 성 중앙에는 고려 개국공신 중 한 명인 유금필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 세워져 있다. 성흥산성 동남쪽에는 대조사가 있는데, 이곳에는 고려 초기 천연암석을 이용하여 만든 높이 10 m의 대조사 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이 세워져 있다.대조사는 백제가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는 천도에 관한 설화가 얽힌 곳이다. 가림성은 백제시대 부여천도에 대한 설화뿐만 아니라 부여지방을 수호하는 수도경비의 역할을 담당했던 주요 산성이었다.
부여 여행을 계획한다면 대개는 낙화암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궁남지 등 옛 사비성 안쪽의 유적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의 부여읍을 감싸고 있던 옛 사비성 밖에도 숱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그래서 사비성 안쪽의 유적만을 둘러본다면 백제의 절반, 부여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비성 밖에서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임천면의 성흥산성과 대조사다. 두 곳은 웅진(공주)시대에서 사비(부여)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백제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동성왕은 사비로 세 차례 사냥을 나갔다. 이때 웅진 도성에서는 괴이한 일이 잇따랐다. 동성왕이 부여로 사냥을 간 것을 두고 후대 사가들은 ‘부여로의 천도를 모색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동성왕은 부여 땅에 성흥산성(당시 가림성)을 쌓고 위사좌평인 백가를 성주로 내려보냈으나, 지방 전출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살해하고 만다. 결국 백제는 동성왕 이후 무령왕을 거쳐 성왕 때 사비로 도읍을 옮긴다.
성흥산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해발고도가 250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오르면 옛 백제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성에 오르면 장대한 느티나무가 먼저 눈길을 끈다. 수령이 400년쯤 됐으니 백제의 역사와는 비견할 수 없는 나이지만, 보기 드물게 늠름하고 잘생겼다. 우람한 이 나무둥치와 그 아래 옛 백제 땅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성흥산성은 가급적 해질녘에 찾는 게 좋다. 맑은 날 붉은 노을이 반원 형태의 느티나무 가지 아래 걸리는 이색적인 해넘이를 만날 수 있다.
부여=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요만큼 올라와서도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이 있다니!
진짜로 전망이 끝내줍니다.
제가 여길 어떻게 알고 오겠습니까. 모두가 이 친구 덕분이죠.
문화재에 관한한 모르는 게 없는 친구랍니다.
성흥산성의 느티나무는 드라마 촬영으로 많이 유명해졌다. '대왕세종(KBS)'에서도 자주 촬영지로 이용되었으며 마지막 편이 여기에서 촬영되었다. 신윤복과 김홍도를 중심인물로 그린 '바람의 화원(SBS)', '천추태후(KBS2)'에서도 촬영장소로 활용되었다.
성흥산성에는 산 꼭대기임에도 우물이 몇 개 있습니다.
지금도 물이 가득 고여 있어요.
그러니까 성(城) 역할을 한 것이겠습니다만.
여기서 도토리 많이 주웠네요. ^^*
성흥산성 대조사
성흥산성 바로 아래 자리한 대조사(大鳥寺)에는 이름 그대로 커다란 황금새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노승이 이곳의 큰 바위 아래서 참선 중 잠이 들었다가 꿈속에서 황금새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성왕은 ‘사비 천도의 시기가 왔다’고 판단해 이곳에 대사찰을 짓도록 했다. 그 바위가 불상으로 변했다는 전설도 내려오지만, 현재 남아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은 고려시대 불상이다. 15년 전쯤 이 미륵보살 앞에 용화보전을 세웠는데, 전면에 투명유리를 들여 실내에서도 미륵보살을 향해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했다.
은진미륵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같은 시기에 만든 것이 아닐까?
대조사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인《원통보전》이 있고,
그 위 석조미륵보살입상 밑에《용화보전》이 있는데
원통보전은 남향으로, 석조미륵입상과 용화보전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용화보전에는 불상이 없고 방석만 있습니다.
큰 유리창으로 밖에 있는 미륵보살상을 치켜올려 보면서 절 해라, 그런 뜻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적멸보궁)과 같은 식인 거죠.
음악 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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