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3. 12:19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Forever / Steve Rainman
지리산
저 놈의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
저 놈의 준공탑만 보면
피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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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장섭, 강연균, 임옥상 같은 호남의 화가들이 풍경 속에 그리는 시뻘건 들판이 남도의 역사적 아픔과 한을 담아낸 조형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 보니 그것 자체가 리얼리티였네요. 정말로 강렬한 빛깔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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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화단에 수많은 산수화가 풍경화가가 있는데 왜 월출산을 그리는 화가가 없나요? 혹시 있습니까?”
-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월출산의 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무덤덤한 풍경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기에 아직껏 이 명산의 화가는 없는 셈이다. 그것은 호남화단의 고루함과 매너리즘을 말해주는 물증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호남 화가들은 관념과 전통의 인습에 파뭍혀 있을 뿐, 현실과 현장은 외면하고 있다.”
- “남도의 황토와 아름다운 산등성, 너른 들, 야생초, 동백꽃, 월출산 같은 그림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래도 남도의 화가들은 아니라고 우길 것인가. 호남의 화가들이여! 예술은 관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지기 대상에 대한 사랑과 감동에서 시작함을 다시 한번 새길 일이다.”
- “나는 우리 시대의 화가들에게 단호히 말한다. 남도의 봄빛을 보지 못한 자는 감히 색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남도의 봄,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이고 우리의 원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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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王仁)을 추앙할 사람은 일본인이지 우리가 아니다. 식민지시절 당했던 아픔의 정신적 보상을 이런 식으로 찾으려 했던 애처로운 작태를 거대하게 치장된 왕인의 유허지에서 일종의 '역설의 변증'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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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다니는 일은 길을 떠나 내력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가서 인간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옛날의 영광과 상처를 되새기고
나아가서 오늘의 나를 되물으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 땅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확인하는 일이다.
답사를 올바로 가치 있게 하자면 ─-
1)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2)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하고,
3)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으셔져라 껴안기던 그대의 몸
숨가쁘게 느껴지던 그대의 입술
이 영역은 이 좁은 내 가슴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고운 모습들을 싸안은 세월이
뒷담을 넘는 것을 창공은 보았다잖아요.
- 일엽스님, 「그대여 웃어주소서」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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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절집 자리는 하나같이 기막히게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트이면 시원한 눈맛이 좋고 막히면 아늑한 운치가 좋다. 절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은 부처님이 앉아서 내다보는 경관이다. 어느 절을 가든 대웅저 기둥을 등에 대고, 또는 댓돌에 앉아서 앞에 있는 탑과 함께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 황당한 찬사로 씌어진 문화재 안내문을 따라 보는 것보다 몇천 곱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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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가장 사랑스러운 절집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무조건 영주 부석사, 청도 운문사, 그리고 서산 개심사부터 생각할 것 같다. 개심사에 간 사람들은 흔히 경내의 고요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신각까지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산신각에서 경내를 굽어보는 맛이 개심사 답사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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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차보다 고속버스를 좋아했다. 편하기로야 기차가 월등히 편하지만 주위가 산만해서 싫다. 모처럼 갖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데는 고속버스가 훨씬 좋다. 기차를 탔다가 만약 앞이나 뒷자리에 수다스런 여자 둘이 앉거나 칭얼대는 어린애가 곁에 있는 날에는 망해도 보통 망하는 게 아니다. 그런 위럼부담은 고속버스도 마찬가지이지만 달리는 버스 속에서 사람들이 곧잘 잠들기 때문에 수다도 소란도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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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답사하는 방법은 코스를 몇 개로 나누되 그것을 문화사적 단계로 더듬어보는 것이다.
제1코스는 서라벌의 향기라 할 고분시대의 유적으로 반월성과 왕릉을 순차적으로 답사하는 것이고,
제2코스는 고신라문화의 전성기인 황룡사터, 분황사, 첨성대, 삼화령 애기부처, 감실부처, 진평왕릉 등 선덕여왕시절의 유물,을
제3코스는 신라가 통일국가 건설에 국가적 국민적 총력을 기울이던 때의 힘찬 기세의 유물을 보아야 한다.
감은사탑, 고선사탑, 황복사탑, 불국사 석가탑, 영지(影池) ㄷ,ㅇ.
제4코스는 8세기 중엽 전성기 통일신라 문화의 조화적 이상미를 살펴보는 불국사, 석굴안, 안압지, 에밀레종 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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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학 학생들은 뭐든지 한참 생각해보고 나서야, 또는 내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한 다음에야 감탄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대학 학생들은 슬라이드가 넘어가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탄성도 나오고 웃음도 쏟아진다. 대체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감성적 반응이 빠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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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어디일까?
1) 남원에서 섬진강을 따라 곡성 구례로 빠지는 길,
2) 양수리에서 남한강 줄기를 타고 양평으로 뻗은 길,
3) 풍기에서 죽령 너머 구단양을 거쳐 충주댐을 끼고 도는 길,
4) 경주에서 토함산 북동쪽 산자락을 타고 황룡계곡을 굽이굽이 돌아 추령고개를 넘어서면 대종천과 수평으로 뻗은 넓은 들판길이 나오고 길은 곧장 동해바다 용당포 대왕암에 이른다. 이름하여 '감포가도'다. 30km의 길이지만 산과 호수, 고갯마루와 계곡, 넓은 들과 강, 그리고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길이다. 11월 중순에 오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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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코스를 보면 그것 자체에도 급수가 있다. 같은 절집이라도 경주 불국사, 합천 해인사, 승주 송광사 정도라면 당연히 초급반 과정이 될 것이고,, 남원 실상사, 안동 봉정사, 강진 무위사 등이라면 중급과정이라 할 만하다. 초급과 중급의 차이는 대중적 지명도와 인기도, 사찰의 규모, 문화재 보유현황, 교통과 숙박시설의 편의 등을 고려하여 분류될 수 있겠는데,,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절은 초급, 입장료 없이 들어가는 절은 중급이다. 돈을 내도 많이 내야 하는 불국사, 화엄사 등은 생초보 코스이고, 적게 내고 들어갈 수 있는 부안 내소사, 영천 은해사 같은 절은 비교적 중급에 가깝다. 그러면 고급과정은 어떤 곳일까? 그것은 절도 중도 없는 폐사지이다. 심심산골에 파묻혀 비포장도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다가 차에서 내려 다시 십리길, 오리길을 걸어서야 당도하는 폐사지. 황량한 절터에는 집채란 오간 데 없고 절집 마당에 비스듬히 박힌 주춧돌들이 쑥대 속에 곤히 잠들어 있고, 덩그러니 석탑 하나가 서 있어 그 옛날의 연륜을 말해주는 폐사지의 고즈넉한 정취는 답사객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을 전해준다.
어느 스님이 제자들을 보고 “얘들아, 앉아서 죽었다는 사람 보았느냐?”고 물으니 “예 있습니다”고 답하자, “그러면 서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고 묻자 “들어보진 못했으나 있을 법은 합니다” 한다. 그러자 스님은 “거꾸로 서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였더니 제자들이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그 스님은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는 죽어버렸다고 한다.
내 친구 어머니는 노인학교에서 재밌게 강의를 듣다가 눈을 감았으니 주위에서 모두 복받은 운명이라고 했는데, 내 친구 아버지는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다가 광 팔아 선불 받고 잠시 쉬는 사이에 운명을 했으니, 세상엔 함부로 ‘최고’란 말을 쓸 게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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