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9. 19:52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꿈에서 술을 마시던 자가 아침이면 일어나 슬피 哭을 하고,
꿈에 슬피 哭을 하던 자가 아침이면 일어나 즐거이 사냥을 한다.
바야흐로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줄 알지 못한다.
꿈속에서도 또한 그 꿈을 점치다가 깨어난 후에야 비로소 꿈임을 안다.
또 크게 깨달은 후에야 이것이 큰 꿈이었음을 안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깨어 있다고 여기면서 아는 체 한다.
(그러면서) 군주라고 뽐내고, 목동이라고 천대한다.
구(丘)나 자네 역시 모두 꿈이다.
내가 자네에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꿈이다.
이런 말을 괴이한 말이라고 이름 짓는다.
萬歲 후에 大聖을 만나서 그 해답을 아는 것은 아침 저녁의 일이다.
장오자(長梧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대상이 꿈과 같이 일시적인 것이며,
꿈이라고 말하는 자신 역시 꿈이라고 말한다.
자신 역시 실체성 없이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그물코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꿈꾸고 있으면서 깨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라고 여기며 집착하고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또 자기가 아는 것이 옳고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일 것이다.
장오자는 그것이 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옛날의 진인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장자는 말한다.
요컨대 장오자의 말을 연역하면,
<나비의 꿈 이야기>의 나비도 꿈이고, 꿈을 꾸고 깨어난 장주도 꿈이며,
나비와 장주를 혼동하는 것도 꿈이고, 꿈이라고 아는 것도 꿈이다.
이 꿈의 은유를 통해 장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아는 세계는 실체성이 없으며,
동시에 실체성 없는 세상을 자각하는 우리의 '자아' 역시 실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체성 없이 오묘하게 변화하면서 얽혀 있는 것이 존재의 실상, 곧 물화(物化)라는 것이다.
X X X
세계는 내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만물은 내 마음과 하나로 연속되어 있다.
이미 하나로 연속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언어가 드러내는 것은 존재하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의해 파악된 표상일 뿐이다.
언어는 변화하는 세계를 고정시켜 표현하는 데 그 시작부터 문제가 있지만,
나아가 언어는 그렇게 표현된 세계에 대해서도 항상적인 자기 동일성을 갖지 않는다.
언어를 통한 지시란 그 기준이 되는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되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를 독립적으로 세우면서 '타자' 혹은 '세계'가 대상화되어 마주하는 것처럼,
'이것'을 정하면서 '이것 아닌 저것'의 경계가 발생한다.
예컨대 '좌'를 정하면서 '좌'가 아닌 것, 즉 '우'의 경계가 생긴다.
나아가 '이것을 옳은 것'이라 하면서 '저것을 옳지 않은 것'이라는 시비 판단이 생겨난다.
장자의 입장은 이런 언어적 개념들은 존재론적 실체를 갖지 않는 허구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 없이 사고할 수 있는가.
장자에 따르면 우리는 객관적인 세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매개로 하여 해석된 세계에 존재한다.
이러한 언어에 의한 세계의 고정화는 실상에 반하는 것이고,
언어를 사용하여 세계를 고정할수록 우리는 실상에서 멀어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식'과 그 의식을 세계와 매개해주는 언어밖에 없는데,
언어를 버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소통하는가.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의식을 해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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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선『장자의 해체적 사유』에서 발췌)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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