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1. 22:02ㆍ발칸반도/스페인 · 모로코
‘신이 지상에 머물 유일한 거처’,
‘미완성인 상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
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교회(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1882년 착공해 130여 년째인 2012년 올해도 여전히 공사 중이고 언제 완공될 지 기약도 없다.
이 건축물을 설계한 이는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Gaudi y Cornet, 1852.06.25 ~ 1926.06.10)다.
1883년 성가족 교회 공사 총 감독에 취임한 가우디는 일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는데,
말년엔 교회에서 먹고 자며 일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1926년 6월 10일, 자신의 일터이자 작품인 성가족 성당 바로 앞길에서 전차에 치여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은 불행하게 끝났지만, 성가족 교회를 비롯한 그의 건축물 중 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그는 현재 20세기가 낳은 가장 독특하고 천재적인 건축가로 추앙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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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로 반죽한 듯한 구불구불한 외형과 척추동물의 몸속에 들어온 듯한 실내.
직선으로 이루어진 반듯한 건축물에 익숙한 이들에겐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의 건축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직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괴테 자연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떤 건축사조에도 속하지 않았던 가우디에게 스승이 있다면 그건 자연이었다.
사실 과학기술은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자연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왔다.
자연은 단순한 재료, 단순한 방식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물을 얻어낸다.
최근 과학계에선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생체모사와 자연을 모방하는 바이오미메틱스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소리를 내지 않고 하늘을 나는 외양간올빼미,
깊은 바닷속에서 소통하는 돌고래,
어둠 속에서 청각을 이용해 길을 찾는 박쥐,
물방울을 이용해 표면 오염을 제거하는 연꽃잎 등
자연은 수많은 공학품에 영감을 주고, 해결책을 알려주고 있다.
가우디는 이러한 생체모사, 모방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가우디의 건물 내부에는 동물의 뼈, 야자수, 곤충, 해골을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성가족 교회 본당 회중석 천장은 식물 줄기를 지지하는 잎사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타일로 장식된 화려한 외관은 짚으로 집을 지은 뒤 조개껍질로 인테리어를 하는 정원사 새를 닮았다.
그는 아무리 아름다운 돔이라도 해골의 내부에 비할 수 없고, 산이 가진 완벽한 안정성을 따라갈 건물은 없다고 여겼다.
가우디 건축은 인간이 만든 어떤 기하학적인 건축보다 동물의 건축에 가까워 보인다.
[생물의 건축학]의 저자 하세가와 다카시는 가우디 건축과 동물의 둥지가 연결 되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
하나는 동물의 둥지를 닮은 내부와 외부다.
동물의 둥지는 자연에서 재료를 끌어보아 조립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옹색하고 기이한 모양이지만,
내부는 둥지 주인의 생활과 재난 대비에 알맞은 공간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역시 겉모습이 낯설고 기이한 것과는 달리 내부는 온화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공학적으로 더욱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가우디의 거대 건축물에 적용된 중력에 대한 고민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건축물은 다양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얹는 방법이다.
하지만 동물의 건축은 이렇게 일으켜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 늘어뜨리는’ 방법을 택한다.
야자수와 바나나에서 섬유를 빼내 집을 뜨개질하는 베짜기새의 둥지가 대표적인 예.
가우디의 건축물에도 이런 늘어뜨리기 기술이 적용돼 있다.
가우디는 구엘 성지 교회의 매달린 사슬 형태를 만들기 위해 설계에만 10여 년의 시간을 바쳤다.
강철이나 시멘트 등의 공업화된 건축재료와 복잡한 구조학 계산 방식도,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
가우디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힘은 모형을 이용한 구조실험에 있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아치형 다리가 거꾸로 매달린 듯한 형태가 보인다.
그는 쇠사슬을 묶는 고정점과 길이, 무게라는 3가지 요소를 고려해 가장 능률적인 아치 형태를 거꾸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천장에 매달린 쇠사슬이 늘어지고 서로 연결돼 하중을 버티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모형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찾았다.
가우디는 긴 와이어로프의 마디마디에 모래자루를 달아 옆으로 당겨 그 견디는 힘의 구조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 모양을 건물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했다.
모래 자루의 무게로 인해 로프가 늘어지는 모양에 따라 건물 전체의 구조가 결정됐고,
그 형태에 대한 압력과 하중을 계산해 기둥의 위치와 숫자를 정해 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험 모델을 180도 돌려보면 이 구축물의 윤곽선은 가우디가 그린 구엘 교회 스케치와 유사하다.
이렇게 늘어뜨린 기법(현수선 기법)은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돼 오던 건축 기법이었다.
계단 등 건축물의 일부 구조에만 사용되던 것을 가우디가 건축물 내부와 외부 전체로 확장한 것이다.
가우디의 늘어뜨린 모델을 재현한 것. 성가족 교회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의 실제 작업 모델은 스페인 내전 중 소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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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자연이 써 놓은 위대한 책을 공부하는 데서 태어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품은 모두 이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이 책은 전 인류에게 주어져 있으나, 이것을 읽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며 또 노력을 기울이기에 합당한 책이다.”
가우디가 남긴 말이다. 우리의 손에도 그 위대한 책이 주어졌음은 물론이다.
[가우디의 작품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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