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낭여행자

2012. 4. 3. 09:06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일곱번째의 사표.

‘2년을 일하고 1년은 나를 위해서’ 라는 스스로의 규율도 무너졌다.

꼭 1년만에 나는 사표를 다시 썼다.

잘했다는 생각만 가지고 남은 자에게는 상투적인 미안함을 표하면 된다.

떠나는 자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어디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희망하지 않고 약속하지 않는 삶.

약속 없이 길을 나선다.

몇 년이라는 숫자만 있을 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도록

약속 없는 여행을 하고 싶다.

희망 없이도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결과도 없고 과정도 없이,

그냥 시간만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 욕심내지 않겠다고약속하고 싶다.

그렇게 비울 수 있는 마음을 터득하고 싶어서이다.

 

- 변종모,『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몇 줄 읽다 말았는데 그만 읽으려고 합니다.

이 분, 자기가 말한 것처럼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여행병 환자인 거죠. 

제 큰집의 큰형님이 이 비슷한 병에 걸렸습니다. 노숙자병이요.

2년에 한번씩 사라집니다.

벌써 그렇게 집을 나가 버릇한지가 대 여섯 번은 됩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사라져서는 

1년정도 지나서 제 발로 돌아오기도 하고,

형제들이 수소문해서 노숙자 숙소에서 억지로 데려오기도 합니다.

 

돌아오고 나면 아버지가 막 꾸짖고 그랬죠.

농사일은 뭐가 되며, 처자식에게는 뭔 꼴이고,

도대체 명색이 장손이 돼서 조상 제사도 안 모시고 뭐하는 짓이냐구요.

그러면 걱정끼쳐 드려서 죄송하고 면목 없다고 말합니다.

또 다시는 가출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도 다짐합니다. 

자기도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답니다.

그런데 낯모르는 세상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훌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유를 알자고 병원을 갔었던 모양인데… 우울증이라고 하더랍니다.

병명을 얻고 나서는 큰소리칩니다.

가출하는 것이 자기의 못된 버릇 때문이 아니라 ‘병이다’ 라는 것이겠죠.   

금년에 형님 나이가 칠십인가 칠십 하나인가 될 겁니다.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지요. 걷지도 못하게 착 꼬부러졌거든요.

 

제가 패키지 여행을 가보면 열흘을 넘기니까 힘들고 시들해집디다.

그래서야 뭔 의미의 여행이 되겠습니까.

젊은 시절에 한 달쯤 일정으로 배낭여행을 경험해보는 것은 괜찮겠지만

장기간의 배낭여행을 '여러번' 한다는 것은 이해도 안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행이란 게, 그게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지나서

반 년씩, 그것도 매년 그렇게 한다면 얘기가 다르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습니까.

그리고 생각을 깊이 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콘텐츠가 무한한 사람이 어딧습니까?  

작년인가 김남희가 남미 가서 보내온 여행기를 신문에서 몇 꼭지 봤는데,

《국토종단》이나 《산디아고》같은 재미는 더 못 느끼겠더군요.

앞으론 저와 같은 독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려울 겁니다.

아마 김남희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것인데, 본인도 안타깝겠죠.

 

근래에는 배낭여행기 쓰시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도서관엘 가보면 꽂혀있는 책들이 무지 많습니다.

특히 인도나 티벳, 남미, 중국 오지 같은 데...... 유럽도 많고..... 

저들은 뭔 생각을 하며 걷나?

오늘 저녁은 어디 가서 먹고 자고 하나, 그 생각을 할까?

여행기에 쓸 얘깃거리를 구상하면서 걷나?

남들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본전 생각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면서 묻고 답하면서 걸을 수 있을까?

내가 왜 이 여행을 하며,

이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언지…….

 

노숙자들 중에는 멀쩡한 가정이 있는 사람도 꽤 있답니다.

제 큰집 큰형님 같은 사람이겠죠.

그렇게 아무렇게나 지내는 방식이 편하대요.   

처음 그 대열에 합류할 때에는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칠까봐서,

쭈삣거려지고 챙피하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간의 적응기가 지나면 정말로 아무렇치도 않아지고,

노숙생활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도 상관 없대요,

그리고 한번 맛 들이면 그 맛을 못 잊는다는군요.  

아무튼 집보다 백 번 천 번 편하고 좋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라는 것이 꼭 안식처 · 보금자리는 아니라는 뜻이 되는 셈입니다.

 

절벽에 매달려서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앗쌀하게 손을 탁 놓을 때의 그 기분,,

오르가즘이란 게 그런 느낌 아닐런지요. 

'눈치보지 않는 노숙'이란 것도,

모든 인습과 격식과 책임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절벽에서 손 놔 버리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어떤 때는 노숙자라는 것이, (노숙자를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근원에 대해서 질문하고 실험을 하는 철학적 행위로도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여행중독’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지기도 해요.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이  패키지 관광객들에게, 자부심 넘쳐서 이런 말을 잘합니다.

‘관광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듣고 견문을 넓히는 외적 여행에 그치지만,

자기들의 여행은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적 여행이다’ 고 말입니다. 

김남희처럼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여행하는 분들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걸으면서 자신과의 대화로 얻어지는 것과,

서울역 지하도에서 신문지 덮고 자는 생활을 1년 하는 것하고,

어느 길에서 얻어지는 성취가 더 크겠냐고요.

진짜로 몹시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