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 '육군자도' '용슬재도'

2011. 12. 20. 10:03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중국 산수화(남종문인화) 최고의 명작’이라는 예찬의육군자도」

 

 

 

 

 

'아내는 죽고, 자식들은 흩어지고, 그리고 홀로 남게 된 정처없는 방랑자는 고향의 친척집에 돌아와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예찬이 죽은 뒤 강남의 사대부들 사이에는 그의 그림 소장 여부로 그 사람의 교양 수준을 가늠하곤 했다 한다.

훗날 예찬은 오진, 왕몽, 황공망과 더불어 원나라의 4대가로 불려졌다. 
예찬의 그림을 흔히 '일품(逸品)'이라 한다.

일품이란 속기로부터 초월한, 맑은 순정한 정신의 경지가 일정한 틀과 격식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된 작품을 일컫는다.

맑은 정신의 표현인 일품은 번쇄한 것을 싫어한다. 청나라의 화가 운격은 일품의 경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림은 간이함을 귀히 여긴다. 간이함이 더욱 오묘한 경지에 들게 되면 세속의 티끌과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다만 고고함과 깨끗함만이 남는다."

이는 그 누구보다 예찬의 그림에 합당한 말이다.
그림의 가치를 평가하는 초기의 품등론에서는 신품, 묘품, 능품의 단계가 있었다.

여기에서 일품은 예외적인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송대 이후 일품은 신품 위에 위치하는 최고의 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일품에는 인위적인 꾸밈을 싫어하고 세속을 벗어난 은일과 자연의 소박함을 추구하는 노장의 미의식이 바탕이 되고 있다.

도교의 신봉자이자 선비인 예찬은 이러한 철학의 세례를 받은 문인화가다. 그의 일품은 이후 문인화의 한 전형이 된다.'

 

글 출처. 이성희, 동양명화감상

 

 

 

 

      예찬의 대표작이라는「용슬재도(容膝齋圖), 종이에 먹, 74.7×35.5㎝,

 


 

 

 

 

제가 블로그라는 걸 처음 알고나서 데뷰한 작품(?)이 그림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제가 쓴 글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쓴 것을 그대로 옮겨온 거였습니다.

혜원의 '사시장춘(四時長春)'이었지요. ^^;;

그 다음이 추사의 '세한도',

그 다음이 또 오주석 해설의 김홍도 '씨름'.

 

 

그때 세한도를 베껴다 놨더니,

누군가 와서 왜 다른 사람의 것을 무단도용했냐고 시비 붙더군요.

참나, 허접한 게시물 하나 베껴다 놓고 망신만 당했죠.

그러는 판에다 이웃블로거 한 분은 그 게시물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혹평하고 갑디다.

아니다 싶어서 두말 없이 게시물을 지워버리고는 유흥준의 <완당평전1.2.3>을 찾아 읽었습니다.

신입인사 제대로 치뤘네요. ㅎㅎㅎ

 

 

그러니까 바로 그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책을 보고, 그림(감상)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美',  '그림 속에 노닐다',

위에 말한 유흥준의 저서와  최순우의 '배흘림 기둥에 서서'

그리고 '우키요에의 美'……

처음엔 한국화 만 봤지요. 중국화는 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서양화는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의 여행기를 읽다가 보니

우피치 미술관인가에서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바로 카라바조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카라바조가 저를 서양화로 인도해준 셈입니다.

 

 

얘기가 옆길로 샜네요. 자, 다시 세한도로 돌아갑시다.

제가 세한도와 관련된 글을 많이 읽어본 편입니다. 

일부러 찾아 읽을 필요도 없더군요, 워낙에 많이 널려 있으니까요.

전부가 다 상찬· 감탄해 붙이는 감상문, 해설글들 뿐입니다.

나무 몇 그루에 달랑 집 한 채뿐인 그림에, 뭔 수사가 그리 많은지.

"의심할 것도 없이「동양 문인화」의 최고 걸작!"

저는 세한도를 보며 한(寒)까지는 느끼겠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영영 그 경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겠구나......

 

 

지금 위엣 그림 <육군자도>는 '중국 문인화의 최고작'이라고 하고,

아랫 그림 <용슬재도>는 '예찬의 대표작'이라고 하네요.

어떤 그림이 낫습니까?

객꾼들이 도장이랑 글씨를 마구 어질러놔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우열을 가려야한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겠습니까? 

 

 

그런데 동양 문인화도 그렇고, 우리 산수화도 그렇고,

해설한 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고고한 선비의 정신세계'라는 말들을 많이 씁니다.

우리는 지금 '미술작품'을 보고 있는 거잖아요.

작가의 정신세계니 이력은 나중 일이고,

일단은 작품의 구도나 기교 같은 걸로 봐서 아름답냐 어떠냐가 우선인데,

이건 뭐  문인화라 하면, 누구의 어느 작품이든 간에 “고고한 선비의 정신세계” 부터 시작을 하니

참 당혹스럽다 못해 허황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격의 완숙도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두께를 더 하겠지요.

그래서인지 동양화는 노년에 그린 그림을 더 쳐준다고 하더군요.

추사도 제주도 유배 이전과 이후를 보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 점이 서양화와 다른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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