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7. 21:19ㆍ중국
구향동굴
구향동굴(九鄕洞窟)은 일반 가이드 책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낯선 곳이다. 심지어 중국인들 조차도 잘 모르는, 미지의 곳이다. 이곳은 곤명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의 석림을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여러 풍경구들 중의 하나다. 석림으로 가다가 석림을 30킬로미터 남겨 놓고 버스를 이용해 1시간 정도 산속길을 따라 가면 구향동굴로 갈 수 있다. 이들 중의 하나가 구향풍경구이고 이곳에 바로 구향동굴이 있다. 구향동굴로 가는 길에는 운남 여러 민족들의 촌락이 많이 눈에 띠고, 양중해라고 하는 큰 호수가 있다.
양중해라는 곳은 좀처럼 바다를 볼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이 바다를 보고싶은 마음에 바다 해자를 붙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특히 안개낀 날에 더 멋있다는 이곳 부근에는 대규모의 화력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구향동굴은 발견 후 관광지로 개발해 놓은 게 채 5년이 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너무 인공적이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잔잔한 협곡에서 10인승 배로 레프팅 하는 곳이 나오고 간단히 레프팅을 하고 나서는 동굴로 들어가면 된다. 레프팅을 하는 이 협곡은 총 길이가 약 600m로 왕복 약 20분이 소요된다.
레프팅을 마치고 되돌아와 다시 작은 길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높이 80m의 절벽이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동굴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추울 정도로 시원한 동굴 안에는 종유석과 석순들이 연출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곧이어 이곳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선녀동이 나오는데, 선녀궁(神女宮)은 선가(仙家)가 거주하던 동굴부로 원명은 선인동(仙人洞)이다. 이곳은 선량한 선녀가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그 선녀의 모습이 지금은 석화로 굳어져 있다고 한다.
동굴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300개의 계단이 있고, 가마꾼들이 있어서 흥정해 이용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출구 앞에는 리프트가 있어서 스키처럼 타고 출구로 나오면 되는데, 신미한 동굴과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재미있다.
입장료 : 50원(元) 리프트 : 15원(元)
석림
곤명에서 남쪽으로 120㎞ 정도 떨어진 석림 이족자치현(彛族自治縣) 내에 위치해 있다. 면적이 350㎢ 이며,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이다. 돌기둥이 나무 줄기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는 것이 삼림모양을 이루고 있다. 웅장한 석림은 전형적인 열대 석회암지형으로, 현재 해발 2천m 높이이다. 원래 이 곳은 해수면같이 평평했으나, 약 백만 년 전부터 솟아 오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이 일대의 기후 또한 열대에서 온대로 변했다.
석림풍경구는 대소석림(大小石林), 내고석림(乃古石林), 지운동(芝云洞), 장호(長湖), 대첩수폭포(大疊水瀑布), 월호(月湖), 기풍동(奇風洞) 7개의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그 중에서도 대소석림은 석림 관광의 중심으로, "대석림(大石林)"과 "소석림(小石林)"으로 나눠 구분되기도 한다. 이 곳은 개발이 비교적 일찍 시작되어서 시설이 발달되어 있어서 여행객들이 가장 찾는 곳이다. 주마간산으로 훑어보는 데에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청성산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洞天福地(동천복지)"와 "人間仙境(인간선경)" 이라 불리는 청성산은 도강언시에서 남서쪽으로 15km, 성도에서 70km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전체가 수목이 무성하며 산길 양쪽을 따라 고목이 하늘까지 높이 치솟아 있어 녹음이 땅을 덮고, 사계절이 항상 푸르러 푸른성을 뜻하는 청성(靑城)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청성산은 전산(前山)과 후산(後山)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산은 경치가 아름답고 문화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후산은 자연경관이 신비하면서 아름다워 신선도원과 같은 원시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청성산은 중국 도교의 발원지 중 한곳으로 동한 말기 도교의 한 일종인 천사도(天師道)를 창시한 장도릉(張道陵)이 이곳에서 포교를 시작했으며 도교의 명산으로 유명하다.청성산의 주요 풍경명승지는 건복궁(建福宮), 천연도화(天然圖畵), 천사동(天師洞). 상청궁(上淸宮) 등이다.
건복궁은 청성산 관광의 시작지점으로 당대에 건축되었으며 규모가 매우 크고 비범한 기세를 지니고 있다. 현재는 두개의 전(殿)과 3개의 뜰(院/원)만이 남아있다.
건복궁 앞에는 맑은 개천이 흐르며 사방에 고목들이 짙푸르게 무성하다. 왼편에 명경부(明慶府)왕비 유적이 있다. 천연도화는 청 광서(光緖)년간에 지어진 누각으로 건복궁에서 서쪽으로 1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이곳은 푸른 암벽이 벽을 두르듯 서있고 운무가 피어오르는 사이에 푸른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껴 옛부터 천연도화(天然圖畵)라는 이름이 붙게되었다.
천연도화에서 서쪽으로 2km떨어진 곳에 있는 도교사당인 천사동(天師洞)에는 천사도를 창시한 장도릉과 그의 30대 손인 허정(虛靖)의 상이 가운데 서있다. 천사동의 현존하고 있는 사당은 청말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웅장하며 건축물의 조각들이 정교하다.
주전(主殿)인 삼황전(三皇殿)에는 당나라때의 삼황(三皇/중국 고전중의 세 임금. 복희.신농.여와를 이르는 말) 석각이 있으며 전내에는 현존하는 역대 석목비각(石木碑刻)중 가장 유명한 당 현종의 명을 적은 비(碑)와 악비(岳飛)가 직접 쓴 제갈량 전후출사표 등이 있다. 상청궁은 진(晉)대에 처음 지어졌으며 현재의 사당건물은 청(淸) 동치(同治)년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마애석각이 여럿 남아 있다.
대리고성은 엽유성(葉楡城), 자금성(紫禁城), 중화진(中和鎭) 등으로도 불리는 명(明)나라 홍무(洪武)제 15년에 건설된 대리의 오래된 지역으로 창산(蒼山)을 뒤로 하고 이해(耳海)호수와 접해있는 곳이다.
성 밖으로는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성 안으로는 동서남북으로 길이 뻗어 있다. 대리고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도시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인 형태였다. 지금은 그 흔적만 군데군데에 남아 있지만, 대리라고 크게 쓰여진 남북의 문은 남아서 대리고성으로서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남북으로 뻗은 길 옆으로 청색의 기와집들을 볼 수 있고, 집마다 가꿔진 크고 작은 화원들을 볼 수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유난히 꽃을 좋아해서 화원을 가꾸는 경우가 많으며, 이곳의 대리산차화(大理山茶花), 팥배나무꽃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대리고성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 해도 대리 자체가 워낙 작은 도시라서 고성의 남문에서 북문까지 도보로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고성의 아늑함을 간직한 곳이니 만큼, 천천히 여유있게 꽃 향기가 가득한 성 곳곳, 골목골목을 누비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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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원통사
원통산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원통사는 곤명시내에서 가장 큰 불교 사찰로 운남성 불교협회가 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당대에 지어진 이 사찰은 곤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찰 중의 하나이다.
이미 1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동시에 곤명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사찰 안에는 청 광서(光緖) 연간에 세워진 좌불상이 있고, 대전(大殿) 중앙에는 두 개의 10m 높이의 원주가 있는데, 각각 한 마리의 화려한 용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곤명시 시민들이
불교 활동을 하는 주요 사찰 중 하나로 매년 음력 초하루 와 보름이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金殿
.금전은 곤명에서 동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명봉산 위에 위치한 도교사원으로 소나무로 우거진 산을 걸어 오르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금전에 닿을 수 있다.원내에 들어가면 태화궁의 대문 위에 쓰여진 현판이 걸려져 있는데 이곳의 일년 사계절 봄과같이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의미한다.
사원의 대문은 링링문이라 칭하며 문의 양쪽 기둥에는 이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찬양하는 글과 도가 사상을 새겨 놓은 대련이 있다.1602년 명대에 지어진 이 도교사원은 무당산에 있는 도교사원의 구리로 만든 건축물을 모방하여 지어, 기와와 기둥, 대들보, 문, 동상 등 모두가 약 200통 가량의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국가중점 보호문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국의 사대 동전 중 하나로, 보존이 가장 잘된 동전이기도 하다.
대관루
곤명시 서쪽, 곤명호를 사이에 두고 서산과 마주하고 있는 대관루공원은 근화포(近華浦), 누외루(樓外樓), 화원(花園) 등의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명나라때 정원이 생기고 이어 청대에 누각이 건조되었는데, 주변의 서산과 곤명호 등과 함께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시인과 문장가들이 이곳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들이 남긴 시와 문장들은 지금도 대관루에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청나라때의 문장가인 손염옹(孫髥翁)이 남긴 180자의 문장인데, 곤명호의 풍치와 운남의 역사에 대해 남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4계절 꽃 전시회가 열려 매 정월달과 8월이면 난구경을 하러 온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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