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8. 23:29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할아버지는 환갑 되시기 전에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83세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 돌아가실때가 제 중학교 2학년 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80세 넘게 사시는 분이 극히 드물었으니까 할머닌 많이 장수하셨던 거지요.
그리고 그땐 60세 환갑만 되면 노인네 취급을 하고 또 그렇게 대접받길 원했더랬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닌 사 반세기 동안이나 동네 최고령 노인으로 사신 겁니다.^^
불과 이 삼십 년 전 일인데도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있지요.
우리가 작은집이니까 당연히 할머닌 양구 큰집에서 사셨는데,
저는 할머니에 대해서, 승질 더럽고, 오바 잘하고, 욕을 무지 잘하셨다는 기억밖엔 없습니다.
욕을 해도, '이누머 새끼"가 아니라 "요노메 세끼"로 옴팡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얼굴 화끈거릴정도로 제겐 잊지 못할 일이 한가지가 있는데__,,
옛날에는 버스를 타면 <안내양>이라고 있었잖습니까?
그 전에는 <차장>이라고 불렀었구요. 또 그 이전에는 <조수>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먼 거리를 갈 때는 물론 지금처럼 차표를 사서 탔지만 가까운 거리는 그냥 올라타서 돈을 냈습니다.
차장이 돈 받으러 옵니다.
당시엔 '경로할인' 같은 것은 없었고, 취학전 아동에 대해서만 반 값이던가 꽁짜던가 했습니다.
할머니랑 버스 탈 때가 아마 국민학교 3, 4학년 쯤 됐을텐데요,
늘 버스를 타기 전에 할머니가 제게 다짐을 놓습니다.
넌 여섯살인가 일곱살이라는 겁니다.
다 이 할미가 알아서 할테니 넌 아뭇소리도 내지 말라는 겁니다.
"얘, 너 진짜 일곱살이니?"
" ........ "
"아니, 할머닌 가만 계세욧! "
"얘, 너 말도 못하니? 날 똑바로 쳐다보구 말해봐바!"
(약이 바싹 올랐습니다.)
" ........ "
그래도 결국엔 우리 할머니가 이깁니다.
그렇다고 뭐 차비 깎았다고 득의양양해 하시고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겁니다.
몇 번 그런 뒤론,
할머니랑 어디 다녀오라고 하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습니다.
'혼비백산'이란 말 뜻 아시지요? 혼(魂)이 날아가고 백(魄)이 흩어지는 겁니다.
제 기억에 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이러쿠 저러쿠 따지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야 성격이 누지니까 그렇다 할 수도 있는데,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한 승질 다부지게 하시는 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큰아버지까지도 할머니한테 뎀비기는 커녕 꼼짝도 못했습니다.
모자지간라고 뭐 달랐겠습니까? 버스 식으로 했겠지요.
아무튼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극진하게 효도만 받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존나게 무식하게 나가면 다 통합니다.
그 핏줄 어디로 가겠습니까?
.
.
.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니까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으셨고
양구 큰아버지는 할머니를 닮으셨네요.
'이런 저런 내 얘기들 > 내 얘기..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탠드바 (0) | 2009.11.21 |
---|---|
이거저거 (0) | 2009.11.21 |
배호. (0) | 2009.11.16 |
동치미-김칫국물 국수 (0) | 2009.10.17 |
어머니 된장 (0) | 2009.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