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4. 20:09ㆍ詩.
모스크바에서 찍은 사진
박노해 시인께 띄우는 편지
늦여름 오후의 햇살이 따갑습니다.
지금 이 시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서거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상하고 계신지요?
아니면 상임이사로 계신 ‘나눔 문화’ 운동본부에서 활동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요?
아니면 어디 허름한 선술집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계신지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든 지금 당신의 마음속은 아마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분은 당신을 영어(囹圄)의 공간에서 세상 속으로 다시 돌려놓은 분이었으니까요.
1998년 8월 15일이었지요.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을 한 지 8년 만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지요.
그때의 특별사면에 최종적으로 서명하신 분이 바로 엊그제 영면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셨습니다.
당시의 대통령이 그분이 아니었다면, 혹여 강고한 보수주의자가 권좌에 앉아 있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이지요.
저는 그때 시인께서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의 당당함을 보면서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대학 시절, 박노해라는 이름을 자주 불렀습니다.
저 80년대, 시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을 했던 젊은이들이 대개 그러했지만,
저는 유난히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중얼거리던 ‘노동의 새벽’의 한 구절 :
‘어쩔 수 없지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칠은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차가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이 노래는 1980년대 스타일의 권주가이자 투쟁가였습니다.
아니, 우리의 분노와 열정을 일깨워준 청춘의 노래였습니다.
저는 지금 지나간 옛 얘기를 회억하자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난 시절의 얘기를 꺼내든 것은 오늘의 우리 시단 형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시단에서는 수백 종의 문예지가 속간되고 수만 명의 시인이 존재하고 있지만,
당신과 같이 노동(운동)의 가치를 순도 높은 언어-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노동이나 노동시는 추억이라 말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네그리가 ‘삶은 노동’이라고 했듯이 노동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히 노동시도 한 시대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 보편적 장르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시대의 이름으로, 시단의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봅니다.
그렇다고 80년대 스타일의 철 지난 노동시를 되살리자는 철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적 합성을 담보한 노동시의 진화를 위해서 당신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직 노동 착취, 최저 임금, 비정규직, 산업 재해, 여성 노동, 외국인 노동 등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자본에 의한 노동의 소외는 갈수록 교묘해져 갑니다.
페미니즘 시가 없는 사회가 평등한 사회이듯이 노동시가 불필요한 사회가 공평한 사회라는 것을 잘 압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당신의 시를 기다립니다.
물론 당신의 시적 침묵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한번 유명세를 타면 치열한 시심을 망각한 채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속화되고 마는 일부 시인들의 못난 습성을
당신은 훌쩍 뛰어 넘어섰습니다.
당신은 시를 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시인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됐습니다.
당신이 열혈로 추구했던 노동과 혁명의 언어가 이 시대의 새로운 버전으로 진화할 때가 되었습니다.
58년 개띠인 당신의 절필(?)은 너무 이릅니다.
이제 침묵에서 깨어나십시오. 긴 밤 지새우고 신새벽 쓰린 속에 털어 넣는 소주 같은 당신의 시를 기다립니다.
‘문화 나눔’ 속에서 ‘시 나눔’도 실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는 당신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보내는 간절한 원고청탁서입니다!)
<이형권 문학평론가·>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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