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4. 20:14ㆍ詩.
송아지는 저마다
먼산바래기
할말이 잇는데두
고개 숙이구
입을 다물구
새김질 싸각싸각
하다 멈추다
그래두 어머니가
못잊어라구
못잊어라구
가다가 엄매-
놀다가두 엄매-
산에 둥실
구름이가구
구름이오구
송아지는 영 영
먼산바래기
- 이상의 ‘목장’ -
시인 이상(1910~37)
시인 이상(1910~37)이 쓴 동시 한 편이 최초로 발굴됐다.
지금까지 이상이 동시를 썼다는 사실은 알려진 적이 없다.
월간 문학사상은 11월호에서 ‘가톨릭 小年(소년)’ 1936년 5월호(제2호)에 수록된 이상의 동시 ‘목장’을 찾아 공개했다.
‘가톨릭 小年’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 연길교구가 1936~38년 28개호에 걸쳐 발간한 어린이 잡지다.
수도회가 올해 한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해 그 중 25개호를 국내에 공개하면서 이상의 동시가 발견됐다.
‘목장’이란 제목의 동시는 총 7연 17행. 이상은 작가로서 줄곧 써왔던 필명 ‘이상’을 쓰지 않고
본명인 김해경에서 성을 뺀 ‘해경’이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는 잡지 표지와 지면 삽화도 그렸다.
당시 이상은 절친했던 화가 구본웅의 부친 구자혁이 경영했던 출판 인쇄소 ‘창문사’에서 근무했다.
‘가톨릭 小年’ 편집진이 창문사에 편집·인쇄를 의뢰하면서 연을 맺게 돼 시와 그림을 청탁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 ‘목장’이 실린 뒤 2개월 지나 나온 7월호 ‘독자실’란에는 ‘해경’이 누군지를 묻는 독자의 질문이 실렸는데,
편집실은 “김해경 선생님이 바로 이상 선생님입니다. 시인으로 이름 높으시고 또 그림으로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많큼
이모저모로 유명하신 선생님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문학사상 주간인 권영민 서울대 교수는 “이상 문학 속에 빈 칸으로 남아 있던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가톨릭 小年’은 식민지시대 한국 아동문학 전개 양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잡지 대부분은 곧 영인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한편 윤동주 시인의 동시 ‘눈’ ‘개’ ‘이불’ 세 편이 그동안 개별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공개를 통해 ‘눈 三題’로 묶인 하나의 작품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윤동주는 36~37년 ‘가톨릭 小年’에 일곱편의 동시를 실었다.
그 중 37년 4월호에 세 편을 묶은 ‘눈 三題’가 게재됐다.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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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詩人의 童詩 모음
만돌이
조개껍질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언니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여긴여긴 북쪽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 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다물소리
윤동주 - 1935년에 최초로 쓴 작품. <동시>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재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한 개를 뿌렸습니다.
-딱-
두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세 개째 뿌렸습니다.
-딱-
네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 하고 선생님한테
흰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돌재기:자갈
**허양:거뜬히
창 구 멍
바람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뒤자취 보고 싶어서
춤을 발라 뚫어놓은 작은 창구멍
아롱다롱 아침해 비쳐옵니다
눈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이끝으로 뚫러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1939)
귀뚜라미와 나와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반딧불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아기의 새벽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아기가 젖 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아기가 젓달라 보채어
새벽이 된다.
겨울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래미
달랑달랑
얼어요.
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개 갑북갑북.
산울림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 · · · · ·
밤은
많기도 하다.
할아버지
왜 떡이 쓴데도
자꾸 달다고 해요.
사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채로 송치까지
다- 나눠 먹었어요.
반딧불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 주으려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편 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읍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오줌싸개 지도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참새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론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 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걸.
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산 울 림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굴뚝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 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한 커리:한 켤레,한 가지
밤
외양간 당나귀
아앙 앙 외마디 울음 울고,
당나귀 소리에
으-아 아 아기 소스라쳐 깨고,
등잔에 불을 달아요.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한 키 담아 주고,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한 모금 먹이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들어요.
버선본
어머니!
누나 쓰다 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더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버선본 만드는걸.
어머니!
내가 쓰다 버린 몽당연필은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더니
천 위에다 버선본 놓고
침 발라 점을 찍곤
내 버선 만드는걸.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윤동주 동시집『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푸른책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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