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09. 8. 22. 12:24발칸반도/북유럽 러시아

 

 

 

1.

  

 

요한묵시록에 따르면 세계가 멸망하는 날에는 일곱 개의 봉인이 뜯어지고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어 온갖 재앙이 닥쳐온다.

신약성경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사람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세계의 멸망을 상상했다.

장엄하고 비장한 문체로 서술된 요한묵시록은 이후 세계의 멸망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대재앙의 모습은

그러한 엄숙함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모습으로 닥쳐올지도 모른다.

북극 해저에서 메탄가스가 분출되는 현상이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방귀의 성분인 바로 그 메탄가스 말이다.

북극이 방귀를 뀌고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노르웨이 인근 해협에서 하이드레이트 형태로 응고된 메탄이 기화해 강력한 기포가 발생한 사실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적당한 양의 물속에 드라이아이스 덩어리를 넣으면 하얀 기포가 생겨난다.

하이드레이트 형태로 응고되었던 이산화탄소가 기화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메탄가스 자체가 이산화탄소보다 20배 강력한 온실가스일 뿐 아니라,

물속에서 산소와 결합하면서 해양의 산성도를 높인다는 데 있다.

이것은 해양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용존산소량이 급감할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돌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갑자기 발견된 것은 메탄이 응고되어 있던 수심 400m 지역의 수온이 1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 및 기온 상승을 경고할 때 ‘온난화 회의주의자’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적은 온도 변화로는 지구의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올 수 없다고.

하지만 이 관측 결과는 사태의 진행이 그보다 훨씬 복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저지른 사소한 행동이 더 큰 결과를 불러오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극이 방귀를 뀌기 시작하면, 즉 북극해 일대의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기화해 용해되거나 대기 중으로 분출되기 시작하면,

온난화의 속도는 인류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그것이 분출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타격이다.

게다가 해수에 메탄이 용해되면서 해양의 산성도가 높아지고, 동시에 해수 온도가 상승한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해수의 온도가 1도 상승한 결과

본래 안정적이었던 해저 400m의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기화하기 시작했다.

즉 메탄 분출은 그 자체가 또 다른 메탄 분출을 불러온다.


북극이 방귀를 뀌는 날, 인류뿐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의 존속을 근심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논의는 대체로 그것이 인간의 활동에 의해 촉발되느냐 아니냐에 집중되어 있었다.

‘온난화 회의주의자’들은 지구의 온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식의

논지를 즐겨 펼쳐왔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그런 팔자 좋은 논의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모든’ 생물이 멸종할 수 있을 만한 온난화가 야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북극 해저에 녹아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녹을 정도의 온도 변화만 제공해도 충분하다.

고작 그만큼의 온도 변화만으로도 대기권과 해양의 온도 균형은 뒤엉켜버릴 수 있다.

한 번 비탈길로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천사가 봉인을 뜯고 나팔을 부는 광경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북극이 젖소처럼 방귀를 뀌게 될 것이다. 지독한 메탄가스가 부글거리며 해수면 위로 솟구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묘사하건 그 결과는 같다.

 “그리하여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생명이 있는 바다 피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게 되는 것이다.

묵시록적 결말의 도래를 막기 위해, 인류는 지구에 대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만 한다.

<노정태 전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