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15. 20:07ㆍ발칸반도/북유럽 러시아
1703년 5월 27일.
이 도시의 탄생은 실로 무한한 매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전에 이루어진 바 없는 위대한 업적들의 전당이 되었다.
뾰뜨르 대제는 이 곳의 안 좋은 자연적 상황에 도전장이라도 내듯,
마치 안개로 엮은 듯 흐물흐물한 토양 위에 러시아의 파라다이스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새 도읍의 건설은,
사람들로부터 실로 이집트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노동력을 요구하는,
엄청날 정도로 거대한 노동력의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수천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고,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페테르부르그의 운명 속에 음울하고 비극적인 것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모른다.
페테르부르그는 300년을 존재해오면서, 역사적 재앙 및 자연적 재앙을 수없이 겪어 왔다.
페테르부르그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고 예측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페테르부르그에 풍부한 표현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도시는 갑자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럴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신통력을 갖고 있다.
페테르부르그에서 가장 신비하고 환상적인 시기는 바로 유명한 백야(白夜)시기로서,
이는 5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지속된다.
이때 페테르부르그는 마치 마법이라도 부리듯 매혹을 발하므로
이에 비한다면 잦은 비와 축축한 안개와 겨울의 짧은 낮과 가을의 긴 저녁은 용서될 만한 것이다.
"수많은 시인들이 우리 북국의 밤을 찬양하며 묘사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공중에 퍼지는 장미의 향기나 현의 떨림이 그러하듯, 말로써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한낮의 무더위가 지나간 후, 새털구름이 연출하는 인광(燐光)과
진홍빛 노을 밑에서 숨을 돌리는 네바 강 위로 드리워지는 생명과,
심오한 의미로 가득한 가득찬 신비의 침묵을 표현하기란 그 어떤 시인에게도 역부족일 것이다.
하늘을 수놓는 마치 카멜레온의 피부에서인 양, 수정의 각진 표면들에서인 양, 스펙트럼에서인 양,
강 표면에서 반사되어 보이는 오묘한 색감을 표현하는 일은 어던 화가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대지에서 상승하는, 또한 하늘에서 반사되어 다시금 대지로 하강하는 느낌들이 깊이 배어있는 소리들을
지상의 언어를 빌어 표현하는 일 앞에서는 그 어떤 음악가도 두 손을 들 것이다."
"이 도시를 보라! 이 강을 보라! 이런 도시는 다시는 없다!
짧은 동안이나마 페테르부르그를 떠나서 세계의 고도(古都)들을 가보라.
낡은 파리, 뿌옇게 그을린 런던을 보고 나면,
페테르부르그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보라 이 일관성을!
각 부분들이 모여서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지 아니한가!
건물의 아름다움, 그 세련됨은 어떠한가!
전체적으로 볼때 강물과 건물이 어우러져 이루는 아기자기함이 장관이다"
뾰뜨르가 세운 이 도시는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도시이다.
널찍널찍한 육지 면적, 녜바 강과 운하들의 고른 선들이 페테르부르그의 기본적인 형상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이 곳에는 개별적인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웅장한 인공적 풍경이 창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뾰뜨르 대제는 학술원을 세울 생각으로 페테르부르그로 외국 학자들을 불러들였다.
독일에서 온 학자들이 주를 이뤘다.
그는 외국 학자들에게 학술연구를 장려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학계로 끌어들이도록 하였다.
뿐만아니라 유럽의 화가들, 건축예술가들, 조각가들을 러시아로 초빙하여,
녜바 강변의 습지에 유럽 미술의 묘목이 접목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페테르부르그의 부분이 되어갔으며,
페테르부르그는 이것들을 성공적으로 소화하였다.
독일인들, 스웨덴인들, 네델란드인들, 프랑스인들, 이태리인들, 영국인들이
처음에는 각각 따로 군집을 이루어 거류하다가 점차적으로 민족간, 언어간, 지역간 경계가 사라졌다.
얼마 있지 않아 이 도시에는 새로운 민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페테르부르그人'으로서, 러시아화된 외국인들과 본래의 러시아인이 단일을 이룬 것이다.
- 이번에 <페테르부르그>에서 사 온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현지 가이드 '태이민'씨의 친구랍니다. -
.
"자 이제 <페쩨르부르그>시내로~~~"
방사성의 계획도시라서 지금 진입하는 외곽지역은 신시가지이고,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구시가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있습니다.
뽀볘듸(승전)광장 기념비.
레닌그라드 방위군 동상. (1974년 스뻬란스키 작품)
이 개선문은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전한 기념으로 세운 거랍니다.
대충 이 지점부터가 구시가지입니다.
헐. 골때리지요? 한식집입니다.
음식은 그래도 괜찮았어요. 야매로 장사하나?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가 어딘줄 아십니까?
모스크바랍니다.
내리 5년인가를 1위를 했는데, 이번에 동경한테 뺐겼다데요.
여기 페테르부르그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관광객들, 폼나는 호텔에 얼씬 못합니다.
그렇긴하지만 이 식당은 좀 너무했네요.
까잔스끼 사원 (카잔 성당)
네브스끼 대로에 있는 까잔스끼 사원은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 합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모방했다는군요. 1810년에 지었답니다.
이곳에서 꾸뚜조브 장군을 장사지내고 묻었답니다. 앞에 있는 광장 한가운데에 장군의 동상도 있습니다.
회랑이 특이합니다. 러시아 최고의 조각가와 화가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수십년간 무신론(無神論)에 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어서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가
근래에 들어와서 다시 러시아 정교 사원으로 이용된다고 합니다.
카잔이란 이름은 사람 이름이 아니고 카잔이란 곳에서 성모성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랍니다.
그 성화에 키스를 하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줄을 나래비로 선다더군요.
내부는 소박하지만 웅장합니다. 촬영은 못하게 합니다.
"카잔 성당에 카잔의 성모는 없습니다. 성모상은 러시아 혁명 전에 도단을 당해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붉은 혁명이 발생하고, 국외로 반출된 성모상은 바티칸의 손에 들어가고,
러시아 정교회와 바티칸의 화해의 상징으로 얼마 전에 러시아 타타르스탄 카잔의 성당에 모셨다고 합니다."
(출처http://blog.naver.com/simonrim/50049315096 )
여기도 교통난 주차난이 만만치 않아보입니다.
전부 수입차라는군요.
성 삼위일체 다리 랍니다.
러시아정교는 성호를 그을때 오른쪽을 먼저 찍습니다.
왼쪽은 재수없는 쪽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이번에 저렇게 낯뜨거운 장면을 많이 봤습니다. 러시아가 유독 더합니다.
여자애들이 적극적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선택관광이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유람선 관광(60유로)이고, 또 하나는 국립무용단의 공연(150 유로)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공연을 보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유람선을 타겠다는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5명밖에 안돼서 둘 다 나가리가 됐습니다.
이삭 성당 (이싸아끼예브스끼 사원)
길 건너편입니다. 이삭성당 가까이에서는 전경을 담을 수 없더군요.
여기는 나중에 다시 와서 자세히 봅니다.
정말 해군인지 소매치기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놈입니다.
니콜라이 1세 동상과 이싸아끼예브스까야 (이삭) 광장입니다.
이삭성당은 앞 뒷면이 똑같이 생겼습니다.
舊 해군성 건물. 이싸아끼예브스까야 (이삭) 광장 맞은 편에 있습니다.
둘레에 원로원 종무원, 유명한 대저택 등 볼만한 건축이 많습니다.
이 광장도 이삭성당을 설계한 사람이 했답니다.
- 이어서 상트 페테르부르그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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