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탈린 Ⅲ

2009. 8. 14. 11:22발칸반도/북유럽 러시아

 

 

 

 

"탈린, 마지막 사진입니다."

 

 

 

 

 

 

 

 

 

 

 

 

 

 

 

 

 

 

  

 

15크룬 = 1유로 = 1800원.

  

 

 

 

 

예쁘지요? 얘네들도 아몬드 팔러나온 애들입니다.

 

 

 

 

 

저 포스터처럼, 남자는 의자에 앉아있고 그 앞에서 쫙 빠진 여자가 스트립쇼를 해주는 겁니다.

399크룬이면 26유로, 우리 돈으로 46,000원.     

 

 

 

 

신시가지 분위기가 활기차 보이지가 않습니다.

  

 

 

 

 

 

 

 

 

 

도미니칸 수도원 (?)  

 

 

 

 

 

 

 

 

 

 

 

1. 발트3국

 

발트3국은 수세기 동안 주변 강대국들에게 지배당하다가 1917~18년부터 독립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0년 소련에 귀속되었다. 라트비아인과 리투아니아인은 인도유럽어족의 발트어파에 속하는 언어를 쓰며, 에스토니아인은 리보니아인과 함께 핀우고르족에 속한다.

발트 해 주변지역에 처음에는 에스토니아인·리보니아인·라트비아인·리투아니아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이 정착했다. 13세기에 에스토니아 북부가 덴마크 지배하에 들어갔고, 오늘날의 라트비아와 달리 에스토니아 남부에 해당하는 리보니아가 독일계 검(劍)의 형제기사단(나중에 튜튼 기사단과 통합)에게 정복당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리투아니아는 이웃 나라들과 달리 강력한 통일국가로 발전해 14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발트 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드네프르 강 너머와 남쪽으로 흑해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1386년 리투아니아를 다스리던 요가일라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왕가 간에 비공식적인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점차로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를 지배하게 되어 1569년 양국은 공식 연방이 되었다.  
16세기에 튜튼 기사단이 몰락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 각국은 리보니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었으며 결국 18세기말경에 러시아가 발트 영토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독일군과 소련군을 몰아내고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후 발트 3국은 의회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정치구조와 경제를 근대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부들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독재주의 세력이 리투아니아(1926)·에스토니아(1934)·라트비아(1934)에서 각각 정권을 잡았으며, 1940년에 소련에 합병되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구성했다.
발트 3국은 소련의 정치경제체제에 통합되긴 했지만 소련 내에서 가장 유럽적이면서 가장 번영한 지역을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실행된 소련 정부의 자유화 정책으로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고 러시아인들의 지배에 대한 반감이 새로워졌으며, 그결과 1991년 소련의 쿠데타 실패 후 발트 3국은 주권을 선언하고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나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2. 탈린

 

탈린은 핀란드 만(灣)에 속한 탈린 만에 면해 있다. BC 1000년경부터 AD 10~11세기에 요새화된 정착지가 이곳에 있었으며, 12세기에 도시가 세워졌다. 1219년 데인족이 이곳을 점령하여 툼페아 구릉에 새 요새를 세웠다. 1285년 한자 동맹에 가입한 후로는 교역이 발달했다. 1346년 튜튼 기사단에게 팔렸다가 1561년 기사단이 해체되면서 스웨덴으로 넘어갔다. 1710년 표트르 대제에게 점령되어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가 1918년 독립국 에스토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1940년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고, 1941~44년에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크게 파괴당했다.

1940, 1944~49년 2차례에 걸쳐 탈린에 살던 에스토니아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증거도 없는 반역죄, 독일군에 협력한 죄, 집단화 반대 등의 죄목으로 소련군에 의해 추방당하거나 투옥되었다. 추방된 사람들은 대부분 스웨덴이나 북아메리카에 정착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이곳의 동료들과 계속 접촉했다. 그결과 러시아인들이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이 도시로 이주하여 인구의 35%(1970)를 차지한 반면, 토착 에스토니아인은 56%로 감소했다.  
탈린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유적이 툼페아 구릉과 성벽에 둘러싸인 옛 하부 시가지에 복원되거나 방치된 채 많이 남아 있다. 13세기의 툼 교회, 고딕 양식의 올레비스테 교회와 니굴리스테 교회, 1410년에 세워진 길드 대청사, 14세기의 라투스, 옛 성의 상당 부분 등이 그 예이다.  
오늘날의 탈린은 상업 및 어업 항구이며, 공업 중심지이다. 조선업과 기계제작업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 걸친 기계공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소비재가 생산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문화 중심지로서 과학 아카데미, 종합기술대학, 미술대학, 사범대학, 음악학교 등이 있으며, 극장과 박물관도 여럿 있다. 인구 130여만 중에서 3분의 1이 탈린에 산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단 하룻 동안으로 어찌 탈린을 다 돌아보겠습니까만, 그런대로 흡족하게 관광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씻고 자고, 아침 일찍 러시아로 떠납니다. 러시아 국경을 넘는 문제가 간단치 않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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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꺼냈던 <체스키 크롬로프>얘기를 해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탈린>은 <체스키 크롬로프>의 적수가 되질 못합니다.

지금 위에 있는 지도는 호텔 로비에 걸려있던 걸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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