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이야기 #7

2009. 3. 9. 21:13책 · 펌글 · 자료/문학

 

 

 

마당가에 꽃밭이 있다

 

 

화단이라는 한자말보다 ‘꽃밭’이라는 우리말이 훨씬 정겹다.

꽃밭은 말 그대로 꽃들이 사는 밭이다.

그 밭은 곡물이 자라는 실용적인 밭이 아니어서 실리는 덜하지만

마음이 피어나는 미학적인 밭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

 

 

꽃은 세상의 생명들이 보여주는 모습 가운데서 가장 화려한 것이다.

모든 생명이 가진 화려함의 극단에 꽃이 있다. 

그 꽃밭이 시골의 집집마다 마당가에 있다.

마당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마당가에 있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만약 꽃밭이 마당의 한가운데 있다고 상상해보라.

화려함의 절정이 중심이라는 또 다른 화려함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을 때

그 장소는 화려함의 태과로 인해 균형을 상실하고 만다.

그것은 너무 강렬하고 강력한 것이 중첩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꽃밭은 ‘가’에 있어야 제격이다.

그 화려함의 절정이 중심에서 먼 곳으로 옮겨 앉았을 때,

그 화려함의 양적 기운은 비로소 음적 기운의 후원과 그와의 만남아래서

그윽한 아름다움을 품위 있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시골집 마당가의 꽃밭은 은은한 아름다움의 세계이지

눈부신 유혹의 강렬한 세계가 아니다.

 

아무리 보아도 잔잔하고 평화로운 정의 세계가 거기에 있을 뿐

시골집 마당가의 꽃밭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흥분시키지 않는다. 

꽃밭이 마당가에 있음으로써

마당은 본래 지닌 너무 강한 탈속의 위험한 기운을 중화시킨다.

꽃들이 무지개 색으로 각각 피어나고 그들이 에로틱한 화분을 날림으로써

마당은 무채색의 적막한 실상을 넘어선,

현상계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그 안에 품게 되는 것이다.

 

 

 

 

 

 

 

 

 

꽃이 밥이 되지는 않는다.

집안에서 가장 비실용적인 것, 가장 쓸모없는 것이 꽃이고 꽃밭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당가에 꽃밭을 만들고 뒤란의 양지바른 언덕에도 꽃밭을 만든다. 

마당가의 꽃밭은

한 인간이 실용성을 넘어선 미적 영역과

그 삶이 없으면 온전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마당가의 꽃밭은 이 사나운 세상에서 순정한 예술세계와도 같다.

실용성과는 다른 곳에,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의 자리로 존재하는,

그래서 비루한 삶을 연기시켜 나아가게 하는

그림, 시, 음악, 춤 등과 같은 세계이다.

그래서일까,

마당가에 꽃밭이 가꾸어진 시골집은 가난하긴 해도

그렇게 우울한 궁기가 풍기지 않는다.

꽃들의 여유와 그 미적 고양감이

가난 속에 깃들기 쉬운 음울한 궁기를 거풍시켜버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시크릿가든 /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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