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이야기 #6

2009. 3. 9. 13:06책 · 펌글 · 자료/문학

 

  

 

마당에 비가 내리다

   

 

 

아파트나 도심의 빌딩에서는 비의 全身을 볼 수 없다.

그저 베란다나 창문을 통하여

출처도 없이 떨어지는 비의 옆구리나 허리께만

파편처럼 스치듯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물은 그 전모를 볼 수 있을 때

그 앎과 느낌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리고 온전한 이해 속에서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비도 마찬가지이다.

그 뿌리까지 전신을 만날 때 우리는 비에 대하여 잘 알고 제대로 느끼며

그 만남을 더욱 완전히 할 수 있다.

 

 

마당은 비의 전모와 만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마당으로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땅까지 이어지는 수직인 그의 몸 전체를,

그리고 천상과 지상을 잇는 그의 거대한 생명의 흐름길 전체를,

한계 없이 고스란히 보고 느끼게 한다.

나눠지거나 잘리지 않은 무봉인 통째로의 비,

그런 비를 만날 수 있게 한다.

 

 

출처가 하늘인 마당의 비는 그 마당이 착지의 종점이다.

비가 착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마치 목적지나 본향에 무사히 닿은 사람을 보았을 때처럼

일단 안심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파트나 빌딩의 고층에서 비의 옆구리나 허리께만 파편처럼 허공 속에서 보고

그 시작도 마침도 알기를 단념해야 할 때,

그 해결되지 않는 결여감이나 공허감과 다른 것이다.

 

 

마루에 앉아,

또는 단층인 가옥의 방 안에 앉아,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당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

마음이 뿌리를 내리듯 가라앉는다.

비의 하강성과 수렴성도 그 원인이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 비가 땅에 무사히 닿았다는 착지의 느낌이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리라.

잘 도착한 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떠난 이가 목적지에 잘 도착했는지,

학교에 간 아이가 늦지 않게 학교 마당을 밟았는지,

궁금해 하며 전화를 걸어보고 안부를 물어본다.

 

 

 

 

 

 

 

 

도회의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 위로 내리는 비는 반사된다.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반향성 때문이다.

거기서 비는 깊은 만남에 성공하지 못한 자처럼

스미지 못하고 부서지듯 튕겨져 오른다.

그래서 도회에 내리는 비는 소란스럽고

비와 지면은 자꾸 인연이 없다는 듯이 서로 겉돈다.

그에 비하면 시골집 흙 마당 위로 내리는 비는 서로를 끌어안는다.

흙은 비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비는 환영하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듯 종적을 감춘다.

 

 

비 가운데 제일 생명감으로 충일한 비는 봄비이다.

봄의 절정인 춘분이나 곡우 때쯤 봄비가 그야말로 봄비답게 내릴 때, 마당을 바라보면

그 마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이 싱싱해진다.

그 몸에 부피가 생기고,

얼굴도 소년의 혈색처럼 피어나고,

기운도 새싹처럼 화사해진다.

봄비를 맞이하여 봄의 흙 마당도 봄이 되는 것이다.

 

 

마당은 워낙 넓은 존재인지라,

그것이 어느 계절의 어떤 비이든지 간에

웬만하면 모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다.

마당은 튼실한 수평의 삶을,

모든 존재의 바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비를 몰고 태풍이 심하게 며칠씩 몰아치거나

호우 경보를 내릴 만큼 강한 소나기가 밤낮으로 퍼부을 땐,

마당도 어쩌지 못하고 핼쑥해진다.

누군가에게 몸의 살을 다 빌려주고 난 사람처럼

척추와 이뿌리가 드러난 채 마당도 수척한 표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당이 떠내려가지는 않는다.

몸 전체가 뿌리인 마당은 끝까지 제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면,

태풍도, 소나기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듯이 사라지고

마당은 천천히 제 몸을 바르게 추스른다.

집 주인은 수척해진 마당을 안쓰러워하며,

삽으로 흙을 떠다 그의 몸에서 금이 가고 핼쑥한 데마다 덮어주고 보살펴준다.

집주인이 그의 몸을 보살필 때는

무슨 일인가 화가 나서 식구들에게 무섭게 소리도 지르던 주인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마냥 선한 모성의 부모처럼 덕스러워진다.

그는 마당이 이전처럼 도톰하게 살이 오르고

수평으로 균형을 잡도록 그의 몸 전체를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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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비가 내리고 나면

마당의 낮은 곳에 괴어 있던 아주 작은 물웅덩이도 거울이 되어 빛나는 것이 흥미롭다.

그 속으로 갠 하늘이 비치고

비가 개인 틈을 타서 멀리 날아가는 새의 날개도 비친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얼굴도 비치고 우리의 마음도 일렁인다.

마당의 작은 물웅덩이는 그때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호수와 같아진다.

 

 

도회에만 내리는 비는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그를 흠씬 받아주는 흙 마당에 내려앉아보고 싶은 것이다.

세련된 도회인의 마을보다

옷에 흙이 묻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지극히 털털한 시골 사람들의 마을에 가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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