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Ⅱ}

2009. 2. 24. 12:42북인도

 

 

  

 

 

 

 

 

 

사람과 소가 어떻게 저리 뒤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얘기부터 해보자.

이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내 추측일 뿐이니 새겨듣진 마시길-,,

 

인도에서는 소(牛)가 신성시 된다'라는 말은 내가 보기에 맞는 말이 아니다.

'신성시'가 아니라 '소와 사람이 동격(同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사람이 소(牛)이고, 소(牛)가 사람이다. 

이러한 것은 윤회사상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텐데,

내가 전생에 소였을 수도 있고, 다음 生에 소로 태어날 수도 있으니, 그래서 나와 소가 동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소(牛)만이냐? 

거리에 돌아다니는 짐승을 보면 돼지도 있고 개도 있고 염소도 있다.

물론 어느 동물로의 윤회도 가능하지만, 유독히 소에 대해서만 특별대우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유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농경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라는 견해가 하나 있을뿐이더라.  

 

인도도 소가죽이나 낙타가죽 등의 가죽산업이 있으니, 모든 소를 매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가죽을 벗기는 것은 아웃카스트 불가촉천민이 한다. 

인도 카스트제도가 많이 변모했다곤 해도 이 업종만큼은 지금도 그럴 것이다.

아무튼 신성시 되는 갠지즈 강에서 사람과 더불어 소를 수장하는 것을 보면, 소가 개 돼지와 달리

특별대우를 받는 것만은 사실이다.  

 

 

  

힌두교나 불교나 윤회와 해탈을 궁극으로 보는 종교인데,

힌두교는 윤회쪽에, 불교는 해탈쪽에다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탈'의 경지, 즉 윤회를 벗어난다는 말은 이해하기도, 믿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감이 쉽게 오는, 다음 생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길을 택하게 될텐데,

그 점이 인도에서 힌두교가 불교를 누르고 번성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그게 더 현실성 있지 않나?

 

그렇다면 '윤회'란 것은 과연 믿을 수 있는 거냐? 

저들이 굳게 믿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내가 알기로도 증거가 무수히 많다고 들었다.

티벳에서 달라이라마 선출하는 과정을 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반반, 내 식으로 믿는다.

 

 

 

 

 

 

 

 

아웃카스트, 즉 불가촉천민이란, 말 그대로 카스트에서 아웃된 사람이란 뜻이다.

윤회니 뭐니 하는 인간 세상사완 관계가 낫싱(nothing)이란 말이다.

윤회란 다음 生에 번갈아가면서 사람으로도, 짐승으로도 태어난다는 말 아니냐.

그런데 아웃카스트는 그마져도 없다는 말이다.

 

갠지즈강변에서 화장(火葬)을 할 때 상주나 친인척들이 둘레를 일곱번인가 돈다고 했는데

그것은 다음 生에서도 다시, 적어도 일곱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축원이라는 것이다. 

아웃카스트는 그럴 필요조차도 없다. 대상이 아니니까.

윤회를 철썩같이 믿는 힌두교문화 속에서 이 얼마나 더 참혹한 말이냐? 

 

 

 

문제는 지금도 불가촉천민이 있느냐인데, 내 생각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더라.

가이드 미스터 칸의 얘기로는 특별한 경우에만

 - 결혼할 때와 식사할 때에만, 그것도 시골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뿐-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고 남의 일 얘기하듯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나렌드라 자다브《신도 버린 사람들》에도 이런 귀절이 있다.


「 3,500년이 넘은 계급제도는 아직도 인도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도시에서 카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계급제도는 이젠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믈이지요."라고.  

   시골에 가면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웬걸요. 다른 마을은 어떤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사라진지 오래랍니다."

   그럼에도 신문의 가정생활면에는 뿌리 깊은 카스트의 믿음이 맨얼굴을 드러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도의 <카스트 유습>이 세계인의 조롱거리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 터이다.

그러나 수천년간 누려오던 지위를 아루 아침에 포기할 수 있겠냐?

물론 종교적 신성함으로 가장했던 카스트가 이제는 사회 경제적인 기득권으로 바뀌긴 했다.

요즘에 와서는 신분상승이나 하층민으로의 추락, 또는 신분간의 뒤섞임이 비일비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카스트 전통의 피라미드 구조는 겉모양만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적선(積善)에 대한 인식인데-,,

우리는 보통 적선을 하면 그냥 선행 한번 했구나 하고 넘어가고 마는데, 

인도 사람들은 그게 아니더라.

황제 샤자한이 타지마할 지을 무렵에 이런 저런 구실로 백성들한테 크게 한 턱을 쏜 모양인데 

꽤나 떠벌리더라. 미스터 칸도 그 대목을 설명하는데 진지하더라니.

인도에서 사온 책에도 보니까 품목까지 세세하게 썼더라.

 

그런걸 보면 그냥 흘려서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적선을 한 대상 인원과 금액을 분명히 밝히는 폼이 마치 누적 점수를 매기는 것 같다. 

다시 윤회 얘기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예컨대 누적점수가 100점이면 내세에 브라만으로 태어나고, 90점이면 크샤트리아,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샤자한은 틀림없이 뭣' 이상으로 태어났을 거라는 의미이다. 

황제로 지낸 사람이 소 돼지로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강조하는 것 아니겠나.

 

 

 

  

 

더 쓸라니까 이젠 힘듭니다.

미진하지만, 이걸로 인도여행기는 마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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