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뜹 미나르

2009. 2. 21. 13:55북인도

 

 

 

 

<꾸뜹>은 사람 이름이고 <미나르>는 탑이란 뜻이오.

이곳의 명칭이 <꾸뜹 미나르>가 된 것은 탑이 유명해서일 뿐이고,

여기 전체는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라고 하오. 

델리 시내 한복판에 있소이다.

이것 말고도 델리에는 무굴제국 2대 황제인<후마윤墓>가 또 있는데

사진으로 보니 <악바르墓>와 비슷합디다.

아래의 글 중엔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베낀 것이 더러 있는데,

문체를 보니 역시 어느 관광안내서에서 옮겨온 듯하오. 참조하시오.

여기선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소이다.

   

 

 

 

 

 

 

여기에 오는 인도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일 것이오.

전체를 둘러보진 않았지만 1만평쯤 되어보이오.

크지도 작지도 않소.

 

 

 

 

  

 

 

 

 

  

꾸뜹 미나르는 뉴 델리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곳이다.

델리의 정복자 꾸뜹 웃 딘 에이백(Qutab ud din aiback (? ~ 1210)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값진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의 힘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승전탑 꾸뜹 미나르와

인도 최초의 모스크인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등이 있다.

    

☜  돌판에다 분명히 Qutabu.d.din aiback 1191-1210 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왜 '?'라고 했을까?

 

 

 

 

 

 

 

 

 

 

  

 

 

 

  

 

이 여자들 그냥 보통 여염집 여자들이 아닌가 봅디다.

아주 예쁘게 생겼습디다.

인도 사람들은 자기네가 아주 잘 생긴 종족으로 생각합디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오.

인도영화가 왜 유명하지 않소?

배우가 되려고 하는 젊은애들이 수천만명인가 수억명이 된다고 합디다.

말하자면 아프리카 애들이 출세하는 길로 축구에 환장하는 것과 같소이다.

 

 

 

 

  

  

 

 

오파츠, 녹 슬지 않는 쇠기둥. 

Out of Place Artifacts의 약자인 오파츠(OOPATTS)는

현재의 과학으로도 해명이 불가능한 고대 출토물을 가르키는 말인데,

인도의 꾸뜹 미나르에도 이런 오파츠가 있다.

바로 꾸뜹 미나르에 있는 알 이슬람 모스크의 안뜰에 있는 쇠기둥이다.

 

이 쇠기둥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쇼카왕때 남쪽 어디선가 옮겨왔다고 하오.

 

   

 

 

 

   

  

 

  

 

쇠기둥이 제작된 시기는 약 4세기로 추정되는데 철의 함량이 조사에 따라 99.999%까지 나온다는 사실.

이 정도 순도를 자랑하는 철은 현대 과학기술로도 불가능하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신기한 점은 약 1,500년간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고 서 있는 이 쇠기둥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녹도 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철은 녹이 슨다는 기본 상식을 보기좋게 뒤엎은 셈이다.

이 또한 현대과학으로도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쇠기둥을 양손으로 안아 깍지를 끼우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너무 많은 인파가 깍지를 끼우려고 하는 통에 쇠 보호망으로 쳐져 있다.

  

 

 

 

 

 

  

 

   

 

 

페허가 된 것을 복원한 듯한데

더 이상은 복구가 어렵게 생겼습디다.

 

 

 

 

 

 

  

  

 

 

 

 

바로 이 탑이 포인트요. 

 

술탄국의 첫 군주이자 노예 왕조의 시조인 꾸뜹 웃 딘 에이백 세운 72.5m의 승전탑.

인도에서 가장 거대한 탑 중의 하나로, 힌두교에 대한 이슬람교의 승리를 기념하기위해 세워졌다.

원래에는 4층짜리 건물이었지만

1326년, 투글라크 왕조의 페로즈샤가 5층으로 새롭게 개축했다.

당시에는 지붕에 돔도 씌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1829년의 지진으로 무너져버렸다.

이후 영국의 잭 스미스 대령이 무굴양식의 새로운 돔을 얹었으나 

탑 모양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마 후 철거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하늘 높이 올라간 굴뚝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접근해서 보면 탑 외면에 돌을 깍아 정교하게 조각한 무늬 형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꾸뜹 미나르를 감상할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상까지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1982년 이전까지는 일반에게도 공개했지만

좁은 통로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압사사고가 빈번해 지금은 막아놓았기 떄문이다.  

참고로, 꾸뜹 미나르의 미나르는 탑을 뜻하는 미나레트에서 유래한 말.

원래는 이슬람교인들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장소로,

알라 호 악바르~'로 시작되는 이슬람 성가를 부르는 곳이다.

  

 

 

 

 

 

 

 

 

 

 

  

 

 

 

 

 

 

 

 

 

  

 

쟈들 멫 살이나 됐을 것 같소?

좌로부터 22, 27, 33, 36 이라 하오.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이슬람의 힘'이라는 뜻이 담긴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

당시 27개에 달하던 힌두사원을 파괴한 정복자 꾸뜹 웃 딘 에이백이

힌두교의 비쉬누신을 모시던 사원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힌두교 사원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도 재활용했다는 것.

이 떄문에 힌두사원의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북서쪽에는 무덤처럼 벽돌을 쌓아 올린

또 하나의 승전탑인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 탑이라고는 할 수 없는 형상인데,

건설을 계획했던 알라 웃 딘이 고작 1층만을 완성시키고 암살되어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기 떄문이다.」

 

☜  이게 아니라 1층인가 짓고나서 2층을 올리려고 하는데 지진이 났다고 하오.

     그래서 재수없다고 저짝으로 옮겨서 지은 것이라고 칸이 그럽디다.

 

  

 

 

 

  

 

현재 남아 있는 알라이 미나르 1층 부분은 둘레가 무려 25미터에 이른다.

참고로 꾸뜹 미나르 1층 지름은 15미터에 불과하다.

  

 

 

 

 

 

알리이 미나르 안쪽에는 꾸뜹 웃 딘 에이백의 후계자였던 일투트미쉬(Iltutmish)의 무덤도 있다.

인도 최초의 이슬람식 무덤으로, 주변에는 잔디도 심어져 있어 피로해진 다리를 쉬어 가기에 알맞다.

  

 

 

 

 

  

 

 

  

 

" 폐허가 주는 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꾸뜹 미나르이다."

 

 

 

 

 

 

 

 

 .   사진 뵈줄 일은  끝났소. 이제 담번에 썰 한번 풀고 인도 여행기를 마치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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