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8. 20:26ㆍ책 · 펌글 · 자료/역사
유대인들을 비록 사악한 종족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건국의 과정에서 보인 단결력과 策略만큼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쾌거임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人(아랍인)의 처지가 안타깝게 되긴 했는데 어쩌겠는가?
동물이고 식물이고 할 것 없이 힘 없는 놈은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이 만고불변의 법칙인 것을.
그런데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저 인면수심의 잔혹성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 종교로부터일까 아니면 타고난 유전자일까?
참으로 놀라운 악마의 집요함이다.
히틀러는 무슨 생각으로 홀로코스트의 총대를 멧을까?
- 알래스카-
1945년 2차대전이 끝나자 시온주의자들은 다시금 대대적으로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이 사업에 세계 시온주의자들의 조직과 자금이 집중되었다.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있던 팔레스타인에서 시온주의자들은 무장조직을 동원해 불법이주를 금지한 영국에 맞서 투쟁을 벌였고,
풍부한 자금으로 대형 화물선과 상선들을 구입해 서유럽으로부터 유대인을 옮기는 대대적인 밀항작전을 펼쳤다.
이 시기에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엑소더스 1947'이다.
1947년 7월 12일, 4515명의 유대인을 태운 미국 국적의 워필드號가 팔레스타인을 향해 프랑스의 마르세유 외항을 출발했으나
엿새 뒤 팔레스타인 해안에서 40km 떨어진 해안에서 영국 해군에 나포되어 하이파로 예인되었다.
대개 키프로스의 수용소로 보내졌지만 4500여명을 처리할 수 없었던 영국은 프랑스로 돌려보냈으나 프랑스의 협조를 얻지 못해
결국 영국의 점령지였던 독일 함부르크 난민 수용소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모티브로 1958년 미국의 유대인 작가 레온 우리스가 『엑소더스』(Exodus)란 소설을 발표했다.
이『엑소더스』는 1960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영광의 탈출」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소설은 출간되기 전부터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유대인이며 할리우드 MGM의 경영주인 도어 샤리가 권유했던 것이었다.
소설과 영화는 실제 사건과는 사뭇 다르게 각색되었다.
워필드호와 유대인 승객은 별일없이 프랑스를 거쳐 독일의 수용소로 돌아갔지만,
영화의 엑소더스호는 자살폭파 위협과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과 동정을 받았으며
이에 영국이 굴복함으로써 하이파에 닺을 내린다.
이스라엘 건국 12년만에 등장한 이 영화는 기념비적인 영화가 되었는데,
할리우드는 이전까지 우회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시온주의 옹호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컨대 1956년의「십계」 1959년의「벤허」가 유대주의 영화였다면「영광의 탈출」은 진정한 시온주의 영화였다.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진정한 승자는 주연인 폴 뉴먼도 아니었고 감독인 오토 플레밍거도 아닌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영광의 탈출」로 전 세계 대중에게 건국과정에서 범했던 죄악에 대해 면죄부를 얻었으며,
시온주의의 할리우드적 교과서를 마련할 수 있었다.
「십계」는 이집트이 노예가 된 유대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출애굽 스토리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권리와 현대판 출애굽인 이스라엘의 탄생을 간접 옹호한다.
「벤허」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다는 데에 앞장섰던 유대인들에게 면죄부를 선사함으로써
기독교와 유대인의 숙명적인 악연을 청산하는 데에 주력한다.
「영광의 탈출」은 그로부터 2000년을 뛰어넘어 출애굽을 재현하지만 더 이상 유대주의의 성서적 신화에 매달리지 않는다.
엑소더스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과 무관한 '시온주의자들의 엑소더스'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구약의 가나안을 향해 탈출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왜 오늘의 가나안이 팔레스타인 땅인지 설명하는 데에 결코 성서나 종교지리학을 동원하지 않는다.
대신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을 주겠다고 한 영국의 약속(발포어 선언)을 다양한 형태로 반복하고 반복한다.
이 영화가 영국을 파렴치한으로 취급하여 경멸하고 투쟁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설하고,
그런데 이건 아주 노골적인 왜곡이다.
1948년 전쟁 이후 12년이 지난 후인 1960년 상황을 보자면,
이미 이스라엘과 아랍은 1956년 전쟁을 치른 터였다.
1947년 유엔 분할안에서 팔레스타인 영토의 53%를 얻었던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78%를 차지했고,
1956년 전쟁에서는 동예루살렘을 합병하고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까지 손에 넣었다.
그런 1960년에 '아랍인과 유대인이 더불어 평화롭게 살 날'을 다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탐욕스럽게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던 이스라엘에 헌정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부적절함을 넘어
현실을 극단적으로 왜곡하고 있음은 1967년 이집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3차 중동전쟁이 증명했다.
일부 교양있는 관객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 할 것이다.
"그럼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들은?"
역시 같은 책에서 발췌한 것임.
.
.
2009. 10. 23. 덧붙임.
지금 소개한 이 책은 유재현의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기행'《샬롬과 쌀람》라는 책이구요,
요즘은《팔레스타인 현대사》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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