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알래스카 인디언 [2]
2008. 6. 24. 06:46ㆍ책 · 펌글 · 자료/역사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전, 남아프리카는 안정되고 조화롭고 오래된 공동체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그 중에는 산(San) 족도 있는데, 그들은 거의 200만 년 전부터 대대로 그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지속한 인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코이코이 족도 있었는데 네덜란드 이주자들은 경멸의 의미를 담아 그들을 호텐토크 족(말 더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불렀다. 또 반투 어족이라고 묶이는 언어권의 여러 종족들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에 온 유럽 탐험가와 이주민들의 악행이 더 샘했는지, 다른 모든 곳의 유럽인들이 저지른 짓의 되풀이였을 뿐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들은 왓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했을뿐 자신들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 지금의 케이프타운 부근에 교역소를 세우고 매년 확장해갔다. 그곳의 사령관이었던 얀 반 리벡은 "네덜란드에 들어갔어도 그런 식으로 할수있었겠느냐" 는 질문에 마셜보다 160여 년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전쟁으로 칼에 의해 정당하게 획득한 것이고 그것을 계속 보유하려는 것뿐이다." 코이코이 족이 계속해서 항의했지만, 그는 "그들에게 진정 우리를 몰아낼 용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의 정복에 대한 대가로 그들은 더 많은 땅을 잃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코이코이 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겨나 노예로 전락했고 종국에는 멸족에 이르렀다. 산 족도 살던 땅에서 �겨났다. 반투 족은?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곳이 반투 족 영토였다. ........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과 제도. 남아프리카에서는 17세기 전부터 소수의 백인을 정치. 경제적으로 차별했으며, 이러한 인종차별주의는 1948년 국민당의 단독 정부 수립 후 제도로서 확충. 강화되었다)는 범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법, 이었다. ......... 고용주들은 노동자가 다이아몬드를 몰래 숨겨 나갈까 봐 걱정스러웠고 패스 법은 자유로운 노동 시장 형성을 막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용 기간 동안 회사의 '컴파운드'(울타리를 친 원주민 노무자의 주택 지구) 에 아프리카인 노동자들을 가두어두기 시작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죄수 노동에 기원을 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몇 년씩이나 되는 계약 기간 동안 가족과 모든 외부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접촉 불가 규칙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사람들은 선교사들 뿐이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마음에 간단한 기독교 윤리 두 가지를 심어주라는 명을 받았다. 그것은 '복종의 미덕과 노동의 고귀함이었다.' .......... 법률은 그후로 더 많이 제정되고 통과되었다. ........ 그 법들의 목적은 "이 불쌍한 어린이들을 나태와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이 세상으로 나가서 노동의 고귀함이 깃든 어떤 것을 찾을 수 잇도록 부드러운 자극 같은 것을 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기위해 '주인과 노예 법안' 을 발의했는데, 그 법안은 일반적으로 '자기 검둥이 때리기 법'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 퍼즐의 마지막 조각으로, "특별 보류지를 제외한 토지의 소유권이 백인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영원히 확립하는 정책이다. 남아도는 젊은 인력이 게을리 땅에 웅크려 있는 대신 임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토지 소유주가 아닌 백인 남자들이 모두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이로써,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탈취와 절멸, 전국적 규모의 인종분리가 일어난후 - 광산은 필요한 노동자들을 얻었다. - <데릭 젠슨의 거짓된 진실 p29~32> 발췌. 가혹한 자연 속에서 수렵으로 살아온 알래스카 원주민(에스키모, 아사바스칸 인디언, 알류트)들은 지난 1백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현대화라는 파도를 겪었다. 그 땅에 처음 찾아온 사람들... 모피업자, 선교사, 교육자... ,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이 땅에 고스란히 가지고 왔다. .............. 화폐경제가 침투하고, 전통의 샤머니즘이 추방되고, 학교에서는 새로 영어를 가르치고, 토착 언어를 말하면 비누로 입을 씻어야 하는 시절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동화정책이라고는 해도, 태곳적부터 그들의 삶을 엮어주고 서로를 맺어주었던 보이지 않는 끈은 가차없이 잘려 나갔다. 그 보이지 않는 끈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화의 세례는 에스키모 가족에서 남자의 지위를 시나브로 약화시켰다. ................ 생활이 편해지는 한편에서 남정네들은 점차 자신감과 긍지를 잃어갔을 것이다. ......... 마을 젊은이들 사이에 불러일으킨 물질문화에 대한 동경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렇다고 수렵생활이 전부였던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 속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유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서 드러난다. ........... 현실 사회에서 그 꿈을 실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백인사회에서는 알력을 겪어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도 능력을 살릴 일터를 찾지 못하는 현실. 그 결과 교육을 받고서도 사회에서 탈락해가는 젊은이가 적지 않은 것이다. 알래스카 원주민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현재의 학교 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이야말로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패러독스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순 속에서도 알래스카 원주민 사이에서는 지금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에스키모, 아사바스칸인디언, 알류트... , 서로 다른 부족들이 손을 잡고 문제점을 직시하고 조금씩 일어서려 하고 있다.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은 미미한 움직임일지도 모르지만, 한 줄기 희망인 것이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p91~97> 발췌함. ............ 침탈이 어떤 정책을 업고 어떤 수순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관철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적나라한 사례를 두권의 책에서 보았다. 선교사란 미소짓는 가면을 앞세우고 등뒤에 칼을 감춘 그들의 가공할 폭력이 있어 소외와 배제가 생성됐으며, 오늘, 이땅에서 벌이는 광란의 1%의 작태와 별개가 아니기에 함께 생각해보고자 발췌해 올린다. 근대화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층의 절대빈곤과, 그 빈곤의 대물림 또한 이와 유사하다. 오늘, 원주민을 밀어내는 뉴타운을 공약한 한날집단에게 몰표를 안겨준 천박한 이기또한 이들과의 야합이란 점에서 시민의 각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지킬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책 · 펌글 · 자료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로코스트 (0) | 2008.07.18 |
---|---|
샬롬과 쌀람 (0) | 2008.07.17 |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문화재 (0) | 2008.06.23 |
[스크랩] 에르네스토 체 케바라 ( Ernesto Che Guevara, 1928 ~ 1967 ) (0) | 2008.05.28 |
처칠과 유머 (0) | 2008.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