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5. 21:06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며칠전 고향에 사시는 仲父님께서
서울의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췌장암 진단결과가 나왔으며
전체로 전이되어 이미 늦었고,
의사의 퇴원 권유를 받았다며
사촌동생이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伯父님은 몇년전 이미 세상을 뜨셨고
지금은 고모님 한분과 중부님과 내아버지
이렇게 삼남매가 생존해 계시는데,
입원한 중부님은 고향에서 과수원과 소 몇마리와
밭농사를 지으시며 평생을 사셨던 분이다.
생노병사는 자연의 순리라지만
안타까움 앞에서 말문을 열어 위로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심란스런 생각과 함께
중부님과 고향.. 유년의 기억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내 자란 곳보다 더한 오지로 발령 받은 아버지는
나를 큰댁에 맡겨놓고
어머니와 동생들만 데리고 이사를 하셨다.
큰집을 둘러싸고 있던
감나무와 복숭아 나무와 대추나무들...
새벽이면 '툭' 하고 홍시 떨어지는 소리에
눈 비비며 뛰어나가 흙 털어내고 입에 넣던 달콤했던 그 맛...
모심기 하는 날이면 새참 나르는 사촌언니들 따라
논두렁을 뛰다 발견한 올챙이를 잡아 병에 넣어키우고
추수하는 날에는 누런 들판에 후르륵 날아오르는 메뚜기 쫏던
어릴적 기억들..
그러나 땅거미 내려앉고 집집마다 저녁 짓는 연기 피어오를때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함께한 동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갑자기 외톨이 되어 어디로 가야할지 마음을 잡지 못해
어두워지도록 허기를 참으며
짐 싣고 떠난 그 길가에 망연히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엄마 내음.....
신작로 가장자리에 도열해 있던 포플라 나무의
바람에 사각이는 수선스러움이
어둠의 두려움을 덜어주곤 했다.
어렸을때의 그 아픈 기억들은
중년을 훨씬 넘긴 지금까지도 가끔 꿈에 나타나
울다 깨어나게 만들며 나를 괴롭히곤 하는데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별 앞에 극도의 공포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학을 맞아 막내이모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했다.
뽀얀 먼지 날리며 하루 두번 다니던 영주 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중간에 내려서 삼십리 산속 길을 걸어야 했다.
스무살 남짓의 아리따운 이모의
삼단같이 치렁이던 머리과 연두색 원피스는
한여름 물오른 신록에 처연히 빛났고
<통고산>에서 발원된 시린 냇물을 끼고 끝없이 걷던 길가엔
머루와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마중나온
급사일 보던 '섭'이란 총각아저씨가
수줍어 하며 이모에게 건네주던 한 바가지나 되던
머루와 산딸기들 탓에 산속에 소풍이나 온듯 즐거웠고
징검다리 건널때 내밀던 섭이 아저씨의 손을
이모는 마지못해 잡았고,
건너고 나선 얼굴을 붉히며
잠시동안 서로 말을 하지않아
어색해 하던 두사람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드디어 흰색 페인트 선명한 학교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이마 붙이듯 서있는 초가와
양철지붕한 집들이 눈에 들어오고
학교옆 사택 마당에서 손차양을 만든 아버지가 보이고
마당에서 모이 쫏는 닭들과 함께 놀던 동생들도
부엌에서 닭 삶던 엄마가 행주에 손을 닦으며
뛰어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밤중이면 내 키만큼 쌓아놓던 한겨울 폭설은,
완강하게 오염을 반사시켜 눈부셨고
지바고의 러시아 설경보다 내게는 더 아름답게 각인되있다.
섣달 그믐 깊은밤의 모진 바람은
동네 앞으로 휘돌아 나가는 냇가를
' 쨍 ' 소리나게 얼어붙게 했고
그 소리에 오소소 소름 돋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무서워도 했다.
명절때면, 장이 서는 <옥방>이란 동네까지
아이들의 설빔이나 제수거리를 장만하러
삼십리 눈길을 마다 않고 다니던
동네 사람들의 유유자적 살아가던 예절 바른 모습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지금은 길이 잘 닦여 차가 맘대로 드나들게 되어
옛날의 정취가 사라진 곳이다.
울진에서 영주가는 길에 <불영사> 못미쳐
오른쪽으로 <광천교>가는 길이 나있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소광>이란 동네가 나온다.
몇년전 여름, 아이를 데리고 소광을 찾았었다.
머루와 산딸기에 손을 물들이던 그 길을 천천히 달리며
기억해내려 했지만
내 기억속의 그곳은 따로 있었고 지금의 달라진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아이가 6학년이다.
어느새 이만큼 자랐는지 내 어릴적 느꼈던
상실과 그리움의 허기를 이해할 나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괜한 조바심에
자는 아이 볼과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며 안스러워 하다
결국 아이의 잠투정 섞인 짜증을 듣고서야
며칠 계속된 상념의 편린 들에서 헤어날수 있었다...
...........
(이천삼년 어느날에..)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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