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르의 인생역전
전 배움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컸어요.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서예, 미술, 수학 등등.
제가 배울 수 있는 건 모조리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요.
제일 먼저 수업시간에 도착했고, 숙제도 정말 열심히 했고요.
선생님 말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저는 왜 최고가 되지 못할까요?
전 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했을까요?
저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죠.
그게 잘못이었나요?
제 꿈이 너무 큰가요?
그렇게 되기엔 제 노력이 부족한가요?
제가 그렇게 열심이었던 건, 제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이것저것 따질 여유 없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죠.
그래야 평범한 제가 조금이라도 눈에 띌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저의 첫 기억이 5살 때였으니까, 제가 17살 되는 그 해까지,
12년(제 인생의 절반이군요) 동안 전 무작정 앞만 보고 뛰었어요.
주위 사람이 답답할 만큼, 전 모범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어요.
휴, 그래요. 사실 저도 제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때가 있었죠.
그러다가 제 가속에 제동을 걸만한 사건이 생겼어요.
아,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요.
제가,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살던 제가, 명문고라고 불리던 학교에 떨어진 일이었어요.
시험 때 배탈이 났다느니, 그래서 마지막 시험을 제대로 못 치렀다느니, 하는 말 따위는,
사실 변명 이예요.
전 그냥 시험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죠.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저는, 시험장에서 그냥 뛰쳐나오고 싶었다고요.
저는 일산에서 성적으로 치면, 세 번째 순위의 고등학교에 가게 됐어요.
결국, 또 평범해지고 말았죠.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학교에, 평범한 집안에, 평범한 성적.
아, 평범하다는 건 정말 견디기 어려웠어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저에게, 평범함이란 세 글자는, 절 너무 억눌렀어요.
전 지쳐버렸어요. 더 이상 뛸 힘이 나질 않았어요.
예전 무작정 노력하던 습관의 반동으로, 대입시험을 치렀어요.
결국 평범한 학교에 입학하게 됐죠. 제 평범함을 쓸쓸히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중, 사고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일이 생겼어요.
캠퍼스에 처음 발을 붙이던 그날, 누군가 제게 책 한권을 쥐어줬어요.
책을 펴 보는 순간, 전 그 책을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어요.
자석에 이끌리듯, 전 ‘경희대 고황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전 그곳에서 신세계를 발견했어요.
사실, 교지편집부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처음엔 좀 실없어 보였어요.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자기는 오늘부터 빨대를 쓰지 않겠다고 하질 않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하질 않나.
죽어가는 소가 불쌍해서 오늘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느니,
종이로 가공된 나무가 불쌍해서 낙서를 하지 않겠다느니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느니.
그런 걸로 세상이 바뀌기나 하겠어요? 움찔하지도 않겠죠.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저의 손목을 잡아끌고, 힘없고 작은 사람들을 보여주었어요
(고황이 범상치 않다고 느낀 건 바로 그 때였죠).
버스를 타고 싶다고 힘겹게 외치던 장애인, 나를 그냥 인정해 달라고 소리치던 성소수자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노동자들…….
제가 정복하고 싶다고 느끼던 세상을 그 사람들은 어찌나 힘겹게 살아내고 있던지.
충격적이었죠.
평범하게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그들 모습을 보니, 제가 가진 평범함이 너무 큰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 평범함이 불공평하게 느껴졌어요. 적어도, 전 제 꿈을 위해서 제 의지대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겐 그 출발점이 너무 뒤에 있는 거잖아요.
그때부터였는지도 몰라요.
제가 기자라는 꿈을 가지게 된 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차분히 듣고,
그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저도 함께 외쳐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것.
그게 제가 이 세상에서 꼭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보이더군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내게 해주고,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그 사람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주는 ‘오마이뉴스’가 바로 그곳 이예요.
작은 사람들의 힘이 클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건 교지편집부였지만,
그걸 입증하고, 확신시켜준 건 ‘오마이뉴스’였어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은, 크고 거대한 힘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혁명은 작은 사람들의 힘으로도 이룰 수 있는 것임을 ‘오마이뉴스’가 확신시켜줬어요.
(아아, 그런 점에서 ‘오마이뉴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몇몇 훌륭한 탐사보도를 살펴보다가, 깨달은 것들이 있어요.
기자는 어느 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기자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전 어느 분야에도 재능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어떤 분야라도 관심을 갖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떤 일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는 점에서,
내가 기자가 되도 되겠구나, 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제 기자의 첫 발을 ‘오마이뉴스’에서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전 열정과 노력으로 보답할게요.
이런 제 프러포즈, 받아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