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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불빛

by 알래스카 Ⅱ 2008. 7. 3.

 

 


 

 

 

 

 

 

지금으로부터 이십년도 더 된 어느 여름에,
비몽사몽 가위눌림에서 벗어나 앉아
아직 혼곤한 낮잠에 취한 상태로 땀을 닦으며
우물에 빠진 것같은 절망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허기진 속을 채우듯 막연히,
그리고 막무가내로 길을 떠났었다.

 

지도 한장에 의지하여 국도를 이리저리 헤메다 안동으로 갔고
관광나온 촌뜨기 같은 모양새로 댐을 기웃거려도 보다가
어두워지자 급한 볼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은,
급히 갈데라도 있는 것같은 초조감으로
발길을 돌려 영주로 향했었다.

 

딱히 작정하고 나섰던 건 아니었지만
해가 기우니 내가 가야할 곳인 듯하고
마당에 환히 불밝히고 기다려주는 가족이라도 있는 듯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같다. 

 

 

 

 

 

 

 

 

   

 

그린듯 고운 초승달은 멀고
참으로 길고도 외로운 여정이었는데
그때 길동무 해주었던 여러 음악들을 들으면
시제를 되돌려 쓸쓸했던 그때 그 기분으로 단박에 데려다 놓으니
신기하다.
그룹<아바>의 노래와 <겨울나그네> <죽음과소녀>
<지고이네르바이젠>의 애달픈 선율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인적마저 끊어진 산골길을
하염없이 달리는데
외로움의 허기와 갈증에서 벗어나려다
더한 외로움의 늪으로 빠진듯한 낭패감으로 곤혹스러웠고
무엇보다 심각한 건 두려움이었다.
아니, 차라리 공포였다.

 

룸밀러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내가 아는 모든 귀신이야기가 기억나고
거울에는 보이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어느 운전자의 이야기도 생각나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뻣뻣한 자세 그대로 달려야 했다.

 

이정표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어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건지,
공중에 떠가고 있는 건지 착각마저 들었고,
칠월의 더위로 베어나온 땀인지
두려움의 식은땀인지 모를 끈끈한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내 무모함을 탓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멀지 않은 앞에서
금속성 불빛이 번쩍하고 라이트에 반사되었고
아, 도깨비 불빛이구나... 벼라별 생각들이 다 떠올라
오금이 저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다가가는데,
자전거를 옆에 세워놓은 취객이 아스팔트를 베개삼아
자고 있는게 아닌가
불빛에 반사된 자전거가 없었다면
내가 머리를 밟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쳐 진저리를 쳤었다.

 

드디어 영주에 도착했으나
낯설어 서성이다 내친김에 그냥 가자... 하곤 다시 길을 나섰으니
이는 내 고향이 가까워 온다는,
나를 기다려줄 것같은 그곳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우쭐거림 섞인 오기였던 것 같다.
동행해 오던 공포와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새삼스럽지 않았고
무엇보다 낯가림 심한 내가 겪을
비루한 하룻밤의 곤혹스런 서성임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마주쳐 교차하는 차도 있었고
그럴때마다 예절 바른 아이처럼
불빛을 낯추는 목례를 보내기도 하며
밤새 지키듯 따라와주던 초승달도 쳐다보며
정든 외로움을 친구처럼 부둥켜안고 달리는데
멀리 뒤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오고 룸밀러로 확인되는 순간
내 옆을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택시였다.
나도 모르게 화들짝 불에 덴듯 놀래며 경적을 짧게 울렸고
택시는 멈칫하더니 이내 제갈길을 튀어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꽁지가 빠지게 달라붙었고
그때부터 한밤의 경주가 시작되었으니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집념만으로는
낯선 길에 나선 초보인 나로서는 역부족이었고
해서, 커브에서 처진 거리를 직선에선 밟고 하며
헐떡이며 꽁지에 불 붙은듯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심술맞은 택시는 겨우 따라잡은 거리를
비웃듯 팽개치고 멀리멀리 달아나 버렸고
나는 팔자타령하며 택시의 인정머리 없는 심보를
혼자 궁시렁이며 성토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앞에 웬 불빛이 있었는데
아까 그택시,
인정머리 없어 맹렬히 성토당하던 그 택시가 아닌가...?
내가 가까이 가자 출발했고
눈물겹게도 에스코트하는 기사같이
일정거리를 유지해주는 감동의 휴먼드라마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직업인데... 방해될까 너무 쳐지지않게 속도를 내며
이번의 여행이 내게 주는 의미와 당위를 생각해보고
지기와의 조우를 기대하는 여유도 부리며
어떻게 보답해야 할런지 방법도 생각했다.

 

거의 고향 가까이 도착한 어느 마을에서
택시는 작별을 고하는 가벼운 경적소리 내고는
옆길로 방향를 틀었고
나는 기습이라도 당한양 어쩔바를 모르다
경적으로 화답하며 감사 인사를 했었으니
친절한 택시와의 짧고도 소중했던,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인연이다.  

 

 

 

 

 

 

 

 

 

 

 

 

 

사치스럽지 않은 소박한 불빛 껌벅이며
내 자란 고향은 나를 기다려주었고
내일 그와의 조우를 위하여 피로를 씻어낼 요량으로
비린 바다 내음에 취하여
무사한 귀향을 안내해준 택시와의 인연을 생각하며
비로소 깊고도 혼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두운 사위에서 부유하던 지난함을 헤치고,
지루한 횡설수설을 끝내고,
오독없이 소통 가능하여 직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에
비로소 닻을 내릴 수 있게,
불빛 비추어 거리를 좁혀 안내해 주시는
이곳에서 만난 여러님들 떠올리면
무사한 귀향에 가슴 쓸어내렸던
그때의 여행이 왜 생각나는지 모를 일이다.

 

 

..............

 

 

 

  

 

 

 
Zigeunerweisen,Op.20


Kerstin Feltz,Cello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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