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그리고 알래스카 인디언.

2008. 3. 14. 12:27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1823년,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존 마셜J. Marshall 이 눈에 띄는 판결문을 하나 썼다.

(* J. Marshall - 미국의 법학자이자 정치가. 미국 헌법의 틀을 만들었고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연 대법원 판사로 재직했다.)

 

사람들이 대체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그는 무척 솔직하게 접근했다.

미국정부,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유럽식 미국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 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청교도들과 식민 지배자들이 여기에 상륙했을 때 이 대륙에 아무도 안 살고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원래 살던 사람들, 즉 인디언들이 이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늘날 연방 정부는 미국 땅의 33퍼센트는 협정에 의해 양도받은 적이 없고 따라서 불법적으로 전유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리고 원주민이 아닌 우리는 어떻게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해 마셜은 이렇게 말했다. 존슨 대 매킨토시 소송 재판의 판결내용이었다.

 

"발견한 것으로 자격이 생긴다. 그 자격은 점유로써 완성될 수 있다."

"사람 사는 땅을 발견해서 정복지로 바꾼다는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인다 해도,

처음부터 그 원칙이 주장되었고 그후로 계속 유지되어왔다면,

그 원칙 아래에서 나라가 세워졌고 유지되어 왔다면,

그 공동체 대다수의 재산이 그것에서 나온 것 이라면,

그 원칙이 토지 소유의 법이 된다.

그것은 의문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을 번역하면 이렇다.

정복이 공동체의 기초가 되었다면, 그것이 없이는 공동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 정복은 의문시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천부 인권에 반한다 하더라도, 또 문명 국가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제도에 필수적인 것이어서 그것 아래에서 나라가 자리 잡아왔다면,

그리고 인권과 관습 양쪽의 실질적인 조건에 맞게 적응해왔다면,

그것은 이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법정에 의해 거부되어서도 안 된다."  

"개인들의 자석인 견해나 억측이 어떠하든, 정복으로 인해 부여된 자격을 정복자의 법정이 부인할 수는 없다."

 

이것도 번역해보자. 

제도 전체가 부정의에 기초하고 있으면 대법원은 이 부정의를 법률로 만드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좀더 의역을 하자면 이렇다.

인디언 한명 죽이는 것은 증오범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 전체를 빼앗는 것은 "이성의 지지를 받는 것이고, 법원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 데릭 젠슨의 '거짓된 진실' 중에서  p 23~>

  



 

   

 

1968년, 알래스카 북극권의 프루도 만에서 세계 최대급 유전이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유전 개발의 파도는 어느새 북극권 야생생물 보호구역까지 밀려와 있었다.

그 유전 개발은 미국 전역에 대대적인 자연보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현대 문병을 유지시키는 생명선인 에너지와 소중한 자연의 관계라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논쟁의 핵심 사안은 유전 개발이 카리부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또한 그 상황은 카리부 사냥에 의존하는 내륙 에스키모와 아사바스칸 인디언의 생활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발견과 망각이 거듭되어온 알래스카에서도 원주민이란 존재는 늘 잊혀지고 소외되어왔다.

유전개발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가 되자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알래스카는 과연 누구의 땅인가, 라는 소박한 의문을 던졌다.

이 움직임은 알래스카의 미래를 크게 바꾸었다.

 

1971년에 성립된 법안은 오랫동안 애매하게 내려오던 알래스카의 토지문제에 한 가지 결론을 내놓았다.

알래스카는 국가, 주, 그리고 원주민 사이에서 분활되고, 지도 위에는 그물눈처럼 경계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보다 심각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원주민은 이 법안으로 알래스카 전역에 미치던 토착적인 권리를 잃고,

10억 달러의 보증금과 16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지정받았다.

사유재산으로 지정된 이 땅은 원주민들로 조직된 각 지역법인이 운영한다. 즉, 원주민 모두가 주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내용을 가진 이 법안은, 본래 전통적인 수렵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분배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내도록 규정해놓았기 때문에,

사실은 개발사업이라도 벌이지 않으면 토지를 유지, 건사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사업 경험이 없는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법인조직은 대개 경영이 악화되었다.

 

또 마을공동체의 구조도 변하고 있다.

원주민들에게는 애초에 땅을 소유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땅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렵생활 속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막연하고 경계선이 없는 세계였다.

 

새로운 법안에 따라 거액의 자금과 땅이 원주민 법인조직에게 주어지고 미국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었지만,

원주민들의 중심을 이루는 생활은 변함없이 수렵이었다.

그들은 땅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주위에 그어진 그물눈 같은 경계선에 커다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들 소유로 지정된 땅 위에 카리부 떼가 지나간다.

그러나 어느 날에는 경계선 밖을 지나갈지도 모른다.

만약 그곳이 국립공원이라면 원주민들은 카리부를 찾아 경계선을 넘어갈수가 없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고가 자연의 불확실한 순환주기에 대하여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라는 사유재산과 땅에 그어진 경계선은 그들의 유연한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이 었다.

카리부가 광대한 땅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간 개념을 가진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중에서 p 58~ 62>

 

  

 

 

 

 

  

 

래스카 원주민이 안고 있는 알코올중독 문제는 그 뿌리가 깊다.

이상할 정도로 높은 자살률, 폭력, 가정 붕괴……. 많건 적건 그 모든 것에 알코올이 관계되어 있다.  

전통적인 삶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구 문화 사이에서 흔들리며 정체성을 잃고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그들에게,

알코올은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는 배출구 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나로서는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약간 망설여진다.

자칫 알래스카원주민 사회 전체에 어두운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소소한 일상생활을 꾸려가며 사는 수많은 에스키모와 인디언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15세에서 25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열 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는 것,

실제 자살률도 같은 연령대의 백인에 비해 10배나 많다는 …….

이는 못 본 척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문제였다.

 

 

1985년 3월 21일, 유콘 강 유역의 에스키모 마을 알라카나크.

그날 한 젊은이가 마을 밖 툰트라로 걸어가 제 가슴에 직접 총탄을 쏘았다.

'내내 이래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겨우 찾았다…….'라는 글을 휘갈겨 써놓고…….

 

루이스 에드먼, 스물두 살.

루이는 증거 없는 절도 혐의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겨우 찾아낸 이유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일까?

갈겨쓴 글은 이렇게 계속된다.

'장래는 캄캄하다.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나는 점점 쓸모가 없어져간다.

아등바등 발버둥쳐서 따라가려고 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아이가?"

고교 시절, 루이스는 그 마을에서 가장 우수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고교를 졸업한 루이스는 마을을 떠나 페어뱅크스의 알래스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인구 550명밖에 안되는 알라카나크 마을에서 16개월간에 걸쳐 펼쳐진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젊은이들의 자살이 이 작은 에스키모 마을에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나간다.

 

멜빈 토니 23세, 10월 22일

스티븐 캄메로프 19세, 1월 22일

줄리 오글린 21세, 3월 18일

카렌 조지 17세, 5월 18일

벤자민 에드먼드 21세, 5월 22일

티모시 스타니슬라스 25세, 6월 25일

앨버트 하리 29세, 6월 25일

 

1년 4개월 동안 한 마을의 젊은이 8명이 잇달아 생명을 끊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짜고짜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그 젊은이들에게도 저마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첩되는 회색지대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

  

<同書 p 8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