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YS DJ

2007. 7. 13. 08:16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지식의 충돌》에서 발췌

  

 

 

YS - 「세계화」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가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준비 못한 세계화 역시 우리에게 갑작스레 닥쳐왔다. 우리에게 세계화의 '불행'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애초 1994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어눌한 발음을 타고 모호한 얼굴을 한 채 한국에 들어왔다. 명색이 대통령이 뱉어낸 말이라 당시의 신문과 방송들도 국제화니 글로벌하니 하고 떠들어댔었다. 그러나 모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들어섰다는 선언과 함께였다. 그 뒤 문민정부의 집권이 끝나던 해인 1997년 12월 느닷없이 이른바 'IMF 사태'가 들이닥쳤다. 교과서에서나 붙박여있던 국제통화기금의 약자 IMF가 현실로 걸어 나와  전국민의 이마에 '주홍글씨'로 새겨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라는 지구촌의 새로운 강령과 규율이 한국에 언도한 낙인 같은 것이었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이 무너지자 세계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냉전 시스템을 대체한 세계화 시스템 이었다. 이매뉴엘 윌러스틴의 어법을 빌리자면,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자기교정의 일환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식자층이나 지도층은 대통령의 불분명한 발음만큼이나 세계화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인식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세계화'란 말 자체가 1994년 APEC 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의 강력한 개방 요구를 받고 난 뒤 우리 사회에 출현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방화'의 의미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한국은 1990년대 초부터 상품시장의 개방과 더불어 자본시장의 개방 압력에 직면해 있었지만, 개방을 위한 시스템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개방'이란 곧 세계화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음에도 국내 시장은 세계화라는 새로운 문법에 둔감했던 것이다.

세계화의 논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모양새로 귀착될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물론 우리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IMF 사태로 대변되는 세계화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아득한 추락의 경험과 등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바닥에 떨어졌던 경험'만큼이나 지금 한국 경제를 가늠하는 '원년'으로 정초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화 시스템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가, 그래서 IMF 사태로부터 얼마나 멀리 달아났는가, 하는 것들이 한국 경제를 재는 새로운 잣대가 되었다.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일종의 심리적 마이너스 통장을 속내에 지닌 채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IMF 사태에 비춰놓고 눈금을 잰다.

이렇듯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세계는 지금 세계화 안에서 축조되고 있으며 우리의 삶 또한 그에 따라 주조되고 있다. 그것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떠나 이미 '저질러'지고 있는 세계화는 벌써 몇몇 나라들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고, 그 때문에 누구누구는 손해를 보고 또 어떤 세력들은 거기에서 실제로 이득을 보고 있다. 요컨대 이제 세계화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볼 만한 데이터들이 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각각 상반된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와 『세계화의 덫』를 대차대조의 양변에 올려놓고 함께 읽어보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화」 - DJ 

다음은 '부의 진화'이다. 이 책에서 세계화 시대의 부의 진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일단 재미난 사례 하나로부터 얘기를 풀어가보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며 집무를 시작했던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맨 처음 만났던 사람이 '초강대 전자투자가' 조지 소로스였다. 그랬던 김 전대통령이 집권기간 내내 입에 달고 다니던 말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IMF의 지시를 받으며 세계화 체제의 터빈 속으로 끌려 들어갈 즈음에 그가 했던 이 두 행위를 합치면 세계화의 핵심 논리 하나가 어엿이 만들어진다. <전자투자가-국가(대통령)-유일 선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논리적 합성이 그것이다. IMF의 '암시'에 따른 행위였든 자발적 행위였든 간에, 김 전대통령의 행위에 의해 구성되는 이 논리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제시된 세계화 체제의 핵심논리 중 하나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전자투자가의 규모는 기술, 금융, 정보, 민주화 덕분에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왔다. 이들의 규모는 이제 너무나 거대해져서 각국 정부를 제치고, 기업과 국가를 가릴 것 없이 성장의 주요 자금원으로 부상했다.

결국 오늘날의 세계화 체제에서 번성하고자 하는 나라는 황금구속복을 입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전자투자가와 접속이 되어야만 한다. 전자투자가는 황금구속복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유스런 자유시장의 규칙을 좋아하는데, 황금 구속복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금 구속복을 입고 있고, 또 이를 단정하게 유지하는 나라에는 전자투자가가 몰려들고, 이 나라는 이들의 자금을 이용해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황금 구속복을 입지 않은 나라는 전자투자가에 의해 징벌을 받는다. 전자투자가가 그 나라를 기피하거나 또는 그 나라에 들여놓았던 자금을 빼내는 방법으로 징벌이 가해지는 것이다. (…) 오늘날 세계화 체제의 핵심은 바로 이 전자투자가와 국가 그리고 황금 구속복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여기서  '구속복'이란 유일 선택으로서의 '세계화 체제'를, '황금'이란 그러한 세계화 체제가 가져다줄 '부'를 뜻한다. 따라서 '황금 구속복'은 우리는 지금 세계화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고, 지금 상태에서는 그러는 것만이 번영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두 겹의 함축을 갖는 용어이다. 이것의 개념적 재단이나 조합은 저자 스스로 했겠지만, 당초 '마거릿 대처-하이에크'와 '로널드 레이건-밀턴 프리드먼'이 이 세계에 입힐 의복으로 재단한 이 황금 구속복을 저자는 "세계화 시대를 규정짓는 정치경제적 의복"이라 풀이하고 있다.


"세계화 체제의 핵심은 바로 이 전자투자가와 국가 그리고 황금구속복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부분이다. 즉 <전자투자가-국가-황금구속복>의 상호작용이 세계화 체제의 핵심이라는 것인데, 이는 <조지 소로스-김대중 대통령-유일 선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정확히 대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