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3. 11:54ㆍ책 · 펌글 · 자료/문학
지난주 ‘반가통’(半可通) 능력을 얘기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할 수 있는 능력.
다치바나 다카시가 “저널리즘 세계의 기본”이라고 말한 능력이다.
한 선배는 “무식한 거 드러내놓고 자랑이냐”고 구박이다.
자랑 아니다.
‘전가통’(全可通)을 곁눈질하는 ‘반가통’의 고민이다.
매주 책을 소개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하지만 이게 기자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독서에 대한 강박관념은 우리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떤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고 그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이번주에 나온 책 한 권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여름언덕).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가르치는 피에르 바야르.
그런데 이 분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다.
“대학에서 이야기하는 책들 대부분은 펼쳐보지도 않았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가 제목처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비법을 전수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삼는 건 독서에 대한 사회적 금기다.
우리 사회에서 독서는 신성한 것이고,
어떤 책을 읽지 않거나 대충 읽는 것은 눈 밖에 나는 일이다.
그렇게 읽었다고 말하는 것도 눈총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무엇이 독서이고 무엇이 비(非)독서인가.
사실 우리는 읽은 책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읽었다고 생각하는 책은 다른 사람들의 책들과 무관한
우리의 상상에 의해 다시 손질된 텍스트 조각들의 잡다한 축적”이라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독서란 개별 책을 넘어 책과 책 사이의 관계,
책과 독자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총체적 독서’다.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수동적인 독자로 머물지 말라는 것이다.
책이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다.
독서란 창조적 행위이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통찰력 있게 말하는 것 또한 진정한 창조 활동이다.
사실 텍스트를 외우거나 그 내용을 전부 알아야 한다는 속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상상력을 잃고 있는가.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대충 뒤적거려본 책’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이 책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어느 정도 읽어야 할까.
〈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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