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1

2008. 1. 15. 20:09책 · 펌글 · 자료/문학

 

 

 

  

 

 

비가 조금씩 내리는 길을 달려 집으로 왔습니다.

보고픈 마음 때문인지 늘 내가 먼저 그대를 찾지만,

아까처럼 당신의 전화를 받을 때나 편지를 받을 때 나의 마음은

대단히 기뻐서 마음의 모든 근심을 다 잊은 듯합니다.

 

절실한, 혹은 애타는 모든 것은 운명의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결국 그것이 나에게 하나의 숙명이 되기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 필요하겠지요.

선택에 이르는 고달픈 과정 역시 우리가 제의처럼 거쳐야 하는 것이겠지요.

비껴갈 수도 있는 그대를 나는 어느 한 순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비밀의 숲이 언제까지 우리를 가려줄 수 있을까요.

서로에게 향하는 간절한 눈짓을 우리가 얼마만큼 감출 수 있을까요.

언젠가 우리는 비밀의 숲을 나서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 순간 한 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그 소중한 순간의 연속으로 채워진 역사 속에 우리가 서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나의 베아트리체, 아직 나는 내 그리움의 도정을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막 새로이 열리려는 길 앞에 서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의 끝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대에게 그리움을 전할 때마다 나는,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과 더불어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갈등과 싸움까지도 함께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나의 진실이 그대를 향해 그대로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대와의 대화 속에 아파할 수밖에 없는 단어들을 떠올리더라도

마음을 감추지 않고 내보이고, 그것들을 이겨나가고 싶은 것이 나의 진심입니다.

내가 그대를 나의 베아트리체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그러한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기쁨과 아픔은,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에게 열려진 것이어서

정녕 그리운 그대는 나에게 그러한 모든 것들입니다.

내 사랑의 서약은 이 세상 사는 날까지 그대를 그리워하겠다는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의 세례가 우리 머리 위에 쏟아지기를 꿈꾸며

나는 내일 만날 당신을 이 순간에도 그리워합니다.

 

 

 

- 허금주 시인에게 보낸 편지. 발신인 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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