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22. 10:48ㆍ책 · 펌글 · 자료/문학
無盡山下川 / 다함없이 흐르는 산 아래 시내
普供山中侶 / 산속의 스님에게 보시를 하네
各持一瓢來 / 각자 바가지 하나 지니고 와서
總得全月去 / 모두가 온 달빛을 담아 가누나
이태준이 ‘무서록’에서 추사 김정희의 작품으로 소개하며, 염불처럼 자꾸 외고 싶다고 한 시다.
(추사의 문집에는 없음)
입에 달고 싶다고 했으니 시에 대한 것으론 최고의 찬사이다.
이 시의 그 무엇이 이태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1, 2구에서 시내가 수행자들에게 베푸는 것은 물이다.
그런데 4구에서 스님들이 가져가는 것은 달이다.
이 짧은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있다.
또 물이 목적이라면 한 사람이 큰 물통을 가져오면 될 일인데,
각자 모두 바가지를 가지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강(千江)에 새겨진 달(불법)을 얻으려 용맹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
여기서 달은 소망과 염원의 표상이다.
산중 승려들에게도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고,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
이들이 밤중에 제각각 바가지를 들고 와서 달을 담아가는 것은,
내면에 감추어진 상처와 그리움을 달래는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니 먹 산수화 같은 시의 풍경에서 삶이 생동한다.
‘시인의 언어는 기대지 않는다’(허만하)고 했다.
김정희는 일일이 말하지 않고도, 수행자의 엄정한 모습 속에 감추어진 인간적 면모를 드러냈다.
이태준이 사랑한 것은 탈속의 청정함과 인간의 번민이 공존하는 풍경이고,
경물만을 그려 마음은 절로 드러나게 한 솜씨이다.
산중 수행자의 번민처럼, 표면과 내면 사이에는 합치되지 않는 틈이 있다.
- 경향신문. 08. 03. 22. 이승수 교수 -
글쎄요? 그걸 인간적인 면모라고 봐야 할까요?
여기서 '물을 뜨려다가 달을 떴다'는 것은 득도의 경지를 말하는 것 같구요,
'다함없이 흐르는 산 아래 시내가 스님에게 보시하네'는
자연의 조화와 유구함을 잘만 관찰하면 그 속에 모든 가르침이 있다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각자 바가지 하나 지니고 와서 모두가 온 달빛을 담아 가누나'는
'오는 길은 달라도 궁극에는 모두가 하나로 귀일한다', '진리는 하나다', 라는,,
저는 깨달음의 일면을 얘기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를 달빛이 교교하다고 하여 '수행하는 스님에게도 감상적인 일면이 있다'고 보는 것은,
세속적인 문인의 시각에서 다소 넘겨짚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고요만이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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