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2008. 2. 15. 16:20책 · 펌글 · 자료/문학

   

 

 

 

 

 

오늘 새벽에 맞아 죽는 줄 알았어요.

우리 집 사모님이 방망이를 꺼내더니 절 사정없이 패는 거예요.

못살아 못살아 하면서 마구 두들겼어요.

잠자는 아저씨를 흘겨보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아주 요절을 내놨어요.

그렇게 패고는 절반을 쭉 찢어서 부엌으로 가지고 가더군요.

어젯밤처럼 아저씨가 고주망태가 돼 들어온 날은 꼭 그래요.

애꿎은 우리 형제들 셀 수 없이 맞았어요.

아직도 온몸이 욱신거리네요.

사모님이 아가씨였을 땐 이렇게 우악스럽지 않았대요.

아저씨 말을 들으니, 생맥줏집에서 노가리 살살 찢어주는 사모님 손이 예뻐서 결혼했다는 거예요.

아저씨는 우리를 되게 예뻐해요.

큰형은 명주실 옷 입혀 차에 태우고 다니고요, 현관 문설주 위에는 작은형을 올려놓고 매일 봐요.

강원도 다녀올 땐 한 두름씩 사가지고 오지요. 아저씨의 아버지도 우리를 좋아했어요.

아저씨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대요.

그래서 제사상에 올려놓고 저한테 절까지 하나 봐요.

도련님도 우리가 좋대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엄청 얻어터졌는데 몸이 개운한 거 있죠.

피부도 보들보들해졌고요.

그러고 보니 사모님도 저를 미워하지는 않나 봐요.

우리 조상님의 고향은 동해인데 저는 베링해에서 자랐어요.

이름은 ‘태’이고 성은 ‘명’이에요. 명태.

그런데 소식 듣자 하니 동해에서는 우리 형제들을 볼 수 없다네요.

2000년부터 그렇대요. 다들 어디 간 거죠.

 

  

 
글 / 안충기·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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