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얘긴데
이현상의 고향이라는 금산 군북면 근처에 있는 절엘 갔을 때다.
그 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손님들로 절 안팎이 북적였는데,
저쪽 우물가에서 혼자 서서 손가락을 요렁조렁하며 누굴 기다리 듯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손끝에 언뜻 화투장이 보이길래 이내 그 손짓이 무얼 뜻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일부러 잔뜩 호기심을 과장되게 내보이며 다가갔다.
그러자 그 사람도 시간이나 보낼 요량으로,
잘 보란듯이 손 끝에 쥐고있던 흑싸리 껍데기와 홍싸리 껍데기 두 장을 뵈줬다 없앴다 하는데,
도무지 코 앞에 빤히 쳐다보고 있어도 손놀림을 종잡을 수가 없는거다.
"아씨, 한번 소매를 걷고 해보시유!"
맨 팔뚝에 보여줘도 마찬가지다.
금방 쥐었던 화투장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데 마술이 따로 없었다.
"아씨, 그거 좀 갈쳐주고 가슈!"
"흐흐흐, 내가 이거 배우는데 얼마를 쳐들인줄 아는감?
배울 수도 없지만 배워서도 안뒤야. 보아하니 학생인 것 같은디..."
내가 계속 관심을 보이는 터에 저도 약속 시간이 아직 남았는지
힐끔힐끔 산 밑을 내려다 보며 노름과 관련한 얘기를 훈화(訓話)랍시고 썰을 풀어내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얘기가 딱 하나 있다.
절대로 노름을 해서 돈을 벌은 사람은 없단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외가 딱 한 사람 있는데, 금산 읍내에 살고있는,
- 지금도 그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다. '신기주'라는 사람이다. -
그 사람만이 유일하게 노름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큰 판에서 한 몫 다부지게 챙기고 난 후에 정말로 완전히 손을 씻었다는데
그때 딴 돈으로 금방(金房)을 차리더니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단다.
장사도 건실하게 해서 이제는 누구도 손가락질 않는, 금산에서도 내노라는 떳떳한 유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노름판에 '신기주패'까지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금산'하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큰 노름판일텐데 틀림없이 전국 톱랭커였을 것이다.
마술을 뵈주던 그 사나이도 금방을 차릴 꿈에 젖어 있었던 모양인데......,
비광에 대한 얘기 (펌)
우산을 쓴 사람은 일본 3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風)인데
우리 나라로 말하면 한석봉이나 김정희쯤 되겠죠 공연히 짜증이 났답니다. 내가 글을잘 써서 뭐하나?" 한 마리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어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있었던 것이지요. 오르려고 안간 힘을 다했지만 비에 젖은 버드나무는 미끄러워서 헛탕만 쳤어요. 내가 여기서 포기를 하면 개구리만도 못하겠구나. 참 부끄럽다!' 마침내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되었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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