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에게
우리 무쇠가 입교한 게 어느새 닷새가 지났네?
워뗘? 길게 느껴지냐?
너도 이젠 세상 이치를 어렴풋이 깨달을 것이다만
어찌 생각해 보니 네가 들어가서 2주 보낸다는 게
마치 며칠 전에 너와 함께 다녀왔던 터키여행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이 삼 일은 낯가림들 하면서 내숭 좀 떨고
그러다 닷새쯤 되면 여행이고 뭐고 집 생각 나고 그러잖티?
글치만 어떻더냐? 여행이 끝날 물게가 되면
다들 미련이 남아서 일정 짧음에 아쉬워하면서
서로간에 헤어지기를 서운해 하지 않더냐?
매사에는 첫 단추라는 게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타트를 깔끔하게 잘 끊어야한다 그런 말이지.
근데 그 첫 단추란 게 뭐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이겠냐?
그저 일에 맞섬에 있어서 피하려거나 통빡 굴릴 생각일랑 말고
정정당당하게 사내답게 정면돌파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전후좌우 모든이들에게 근면성실함으로만 대한다면 만사가 형통되는거란다.
뭔 상장 귀절 같이 들리겠다만 타에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게 뽄때를 한번 보이거라.
참, 밥은 먹을만 하디?
먼저 체력시험 볼 땐가 왜 나랑 같이 구내식당에서 먹었쟎니?
지금도 그때랑 똑같이 나오냐?
글믄 큰일인데, 나두 못먹겠던데.
하긴 맨날 뜀박질하고 그러면 아무거고 잘 먹히긴 하겠다만.
또 그렇다한들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까지꺼 그것도 타에 귀감이 되도록 막 씹어삼키는거지 뭐.
잘지내라.
안약 잘 챙겨 누코.
참, 너 장이 예민한 편인데 배변계통에 뭔 문제는 없었냐?
약 같은게 필요하면 눈치보지 말고 얘기해라. 조치를 취해주겠지.
우린 너희와 소통할 길이 없는 줄만 알았다.
좀 전에 니 엄마가 말해주더구나.
해서 급히 한줄 써 보낸다.
낼이구 모래구 틈나는대로 위문편지 넣어주마.
(어째 감방에 들어간 놈 사식 넣어주겠단 말 같구나.)
또 보자.
우리 무쇠~ 쪼옥~!!!!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정말 다들 안녕하신지 궁금하네요.
집 쪽에서도 제 걱정 많이 하실거라 생각하지만 저 역시도 별일 없을까 자주 생각하고는 합니다.
역시 구정 때 가지 못한게 아쉽네요.
제 근황을 말하자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의 주된 패턴은 6시 기상 후 구보, 식사, OT, 점심먹고 제식 훈련 후 또 구보, 그리고
저녁 먹고 기타 활동 후 점호 입니다.
정말 규칙적이기 이를 데 없는 생활입니다.
첫 이틀 정도는 적응하느라 고생 좀 했지만 지금은 아침에 저절로 눈이 뜨일 정도니 꽤나
적응됐다고 봐야겠죠.
(어투가 왔다갔다 하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아버지께서 걱정하셨던 밥 문제 역시 괜찮습니다. 하루종일 몸을 써대서 그런지 몰라도
왠만하면 전부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작은 외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에는 비할 수 없다고 전해주세요.
몸이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걱정하고 계실텐데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운동신경은 약간 부족하더라도 내구력은 좋지 않습니까?
남들 다 죽어가는 구보 전 웃으면서 산책하듯 뜁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아무데도 없고 몸도 오히려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애들하고도 무척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 괜찮은 놈들이고 그 중에서도 저희방 애들은
전부 에이스들이라 생활하는데 불편 없고 이상적인 단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고 나서 솔직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교육단 선배들은 끊임없이 윽박지르고 얼차려 주고 하니 편하다는 게 이상한 거겠죠.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히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뒹굴고 하는 와중에 생전 처음 보는 놈들과 동기애도 쌓이고
무엇보다 제가 내적으로 약간이나마 성숙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경찰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한 가득입니다.
이 2주간의 교육, 다소 괴롭더라도 정말 저에게 있어 심신 모두에 큰 도움이 되고 있고
가장 중요한 추억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안 그런 척해도 가족들 모두 정말 보고 싶습니다.
5일 후 입학식에서 멋진 제복입고 제 자신 역시 멋있어진 모습으로 찾아뵙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2007년 2월 25일 막내 무쇠 올림
다시 무쇠에게
먼저 비틀렸다던 무릎은 어때? 괜찮으냐?
쓰지 않고 있을 땐 잘 못느끼지만 많이 뛰거나 굽히고 할려면
다시 통증이 올텐데... 어찌 잘 견뎌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는구나.
참 설날은 뭐하고 지냈는고? 평소와 다름 없이 교육받았냐?
짐작컨대 입교한 바로 뒤니깐 오히려 더 돌렸을 것 같은데... 맞쟈? 내 군대 경험상으론 그렇다.
우리 집안 설 쇠는 스타일이야 늘 매한가지 아니것냐?
그런데 무쇠 너 한 명밖에 빠진 사람이 없는데도 웬지 휑하게 느껴지더라.
가만보니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네 엄마나 형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등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하더구나.
헌데 이번 설에 화제는 단연 네 형 돌쇠 얘기였었단다.
뭔 얘긴가 알제?
무쇠가 제 형 잠바가 탐이 났는데 차마 그거까지 벗어주고 가라고는 못하겠더란
얘기를 했더니 다들 뒤집어지더라....ㅎㅎ
참, 네 형 얼굴은 그런대로 많이 좋아졌다.
곧 입교하고 군대가고 해야 할 놈들이 왜 스키를 타러가냐 가기를.
더구나 며칠 전에 세준이 팔 뿌러지는 것 까지 곁에서 지켜본 놈들이.
칠복인 살이 더 찐 모양이다.
목줄 맬때 왜 네번째 구멍에 꼈었잖냐? 헌데 이젠 세번째로 옮겼다.
그 놈도 네가 없어진 눈치는 채는 것 같더라. 낮엔 좀 시무룩해 하고
내가 없으면 너희들 방에서는 눕지를 않더구나.
그나저나 이번 입학식에 칠복일 데려가면 좋을텐데
아무렴 학교에서 허용해 주질 않겠지?
그런데 입학식날이 아직도 확정되진 않은 모양이더라. 통보를 해주겠단 걸 보니.
대충 군대 간 애들 면회할 때 처럼 진행할 모양이던데?
공식행사가 13시쯤 끝나고나면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게해준다더라. 서너시간 줄란가?
태평동 할머니를 포함한 우리 식구야 물론 다 갈텐데,
최소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도 따라 나서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무쇠가 제복을 입고 대견하게 입학식을 하는데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이제 적응교육 마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힘내라. 지금까지 잘 해온 것 처럼.
참, 너는 사진 찍는다고 무리하게 디밀지 말거라. 사고 나겠더라.
다시 편지 넣어 줄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다만 잘 지내거라.
입학식 일정을 알려주면 다시 너와 미리 연락을 하긴 해야겠구나.
오늘도 고단하겠다. 푹 쉬거라.
2월. 22일.
밤이 늦었다.
돌쇠야,
오늘이 며칠짼고?
거즈반 열흘이 다 돼가는구나.
그래 할만은 하디?
그래도 날씨가 어지간해서
훈련받기에 크게 어려움은 없어 보이긴 하다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후다닥 댈라면 정신이 없을게다.
기상나팔 소리랑 취침나팔 소리가 서럽게 들리지는 않디?
아버지도 옛날에 23연대 나왔다.
부대막사가 불교 법당 근처였던 것 같은데, 맞냐?
11월 19일에 입대를 하다보니
너도 보다시피 거기가 얼마나 진흙땅이냐.
그러니 아침엔 꽝꽝 얼었다가 낮에는 녹아서 진창이 되고
저녁엔 다시 얼어붙으니
훈련으로 젖은 몸이 어찌 됐겠냐.
참말로 환장하겠더라.
훈련장에서 돌아오는 길이 마침 동네 골목을 통과할 때는 왜 그리 심란한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불빛 창너머에 도란거리는 가족들의 정겨운 목소리,
챙피하게도 울컥하기 까지 하더라.
우리 돌쇠가 겪고 있을 어려움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나라 모든 젊은이들. 너나 없는 통과의례인 것을.
사실 어찌 돌아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우선 생각이고 번민이고가 없질 않니?
무식한 말로 그냥 몸으로만 때우면 되는 거잖아.
시간만 지나가면 되니 얼마나 단순하고 속 편한 생활이냔 말이다.
고민이래봤자 그야말로 원초적인 고민 아니더냐.
세상 살면서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볼 기회는 군대 훈련소 뿐이란다.
지금 대학 다니며 취직공부하는 애들에게 물어봐라.
불안에 떨며 공부하는게 좋겠냐 아니면
취업 보장받고 몸 좀 굴리는 길을 택할거냐고.
모르긴해도 100이면 100 모두가 훈련소로 달려갈 것이다.
그 스트레스란 게 얼마나 큰 것인지는 너도 짐작이 갈게다.
알다시피 무쇠는 지난 수요일에 나왔다가 어제 저녁 기차로 돌아갔다.
제 입학식에 형인 네가 안 왔던 것이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더라.
학교 들르고 친구들도 만나고,
컴퓨터 몇번 매달리고 하다보니 금새 닷새가 지나가더라.
그래도 이젠 어려운 고비는 넘겼는지
그런대로 지낼만 하다더구나.
교복만 입으면 금새 표정이 굳어지는 게 군기가 바짝 들었더라.
훈련만 없다 뿐이지 분위기는 군대나 매 한가지겠지.
거 봐라, 무쇠도 시간만 지나면 그렇게 옛날 얘기하듯 하는 때가 오지 않더냐.
우리 돌쇠도 얼마만 참고 견디면
'지금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이 되는 날이 오는 거란다.
힘들때일 수록 화이팅 외치며 오히려 그 생활을 즐길 방도를 찾아보렴.
어디 아픈덴 없냐?
안약은 잘 넣고 있고?
문제 있을땐 미련하게 참지 말고 조치를 취해달라고 부탁해라.
요즘 군대야 뭘 무서워서 말 못하겠니?
오늘 훈련소 홈피에 너희 사진 떴더라.
정표랑 친구들 사진이 아주 잘 나왔더구나.
학교친구들이 모두 함께 있냐?
정표야 잘하고 있을테고,
외롭지 않은 것만해도 그게 어디냐?
누가 카메라 갖고 다니면 얼릉 잽싸게 디밀거라.
그래야 우리 돌쇠 얼굴 한번 더 보지.
뭐든지 소극적인 놈이 더 힘든거란다.
일단 닥치면 적극적으로 치고 나간다는 생각을 해야만 일도 안 힘들고
즐거운 거다.
동료들과도 두루 친하게 잘 지내도록 해라.
이 참에 성격도 좀 씩씩하게 고쳐보도록 하고.
밥은 먹을만 하지?
요즘은 왠간한 가정집 보다 훨씬 낫다던데
사실이 그러냐?
밥맛 좋쟈? 먹구 싶은 것도 많쟈?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고 낼 모래쯤 소식 더 전해주마.
아자! 아자! 우리 정표 돌쇠 홧팅이다!
3월 26일 저녁6시.
그리고보니 돌쇠한테 아버지가 처음 편지 써보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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